벚꽃 예쁘기로 유명한 학교 새내기였고, 난생처음으로 분홍색 벚꽃이 너울거리는 세상을 만났다.
벚꽃이 팝콘처럼 팡팡 터진다는 대사가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를 본 친구는 두 눈 가득 아련함을 담고 봄과 연애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 친구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벚꽃은 잔인한 형벌이었다.
흩날리는 벚꽃잎을 손으로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우리는 캠퍼스 안에서 자주 걸음을 멈추고 꽃잎을 잡겠다며 허공에 대고 헛손질을 해댔다.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 그때까지도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것들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잘 몰랐고 보통 사람들보다 더디게 배워갔지만, 그래도 무언가 간질간질한 감각들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조별 과제를 핑계로 유원지에 함께 갔던 산적처럼 생긴 선배는, 벚꽃보다 사람이 더 많다며 시인처럼 얘기했다. 그 대조적인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가끔 그 말이 기억이 난다. 또, 왁스를 잔뜩 바른 선배의 머리에 꽂힌 벚꽃을 떼주겠다며 까치발을 들었던 것도 기억난다. 학과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짓궂었던 그 선배는 내가 꽃잎을 뗄 때까지 잠자코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벚꽃을 보는 장소는 따로 있다며 학교 꼭대기까지 데려가 준 선배도 있었다. 기껏해야 두 살 많은 그 선배는 뒷짐을 지고 걸으며 제법 성숙한 어른 흉내를 내었다.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았었다. 완벽하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너울거렸다. 잠깐이나마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 '순간'에 선배도 포함되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봄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사람들이 자꾸만 꽃 사진을 보내준다.
봄기운에 모든 감각이 말랑말랑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봄비가 내리던 어느 늦은 밤, 마스크도 쓰고 모자도 쓰고 우산도 쓰고 동네를 아주 잠깐 돌았다. 인적이 드물었고 빗소리가 선명했다. 올해의 상춘은 그냥 이렇게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슬펐다. 이 계절을 무사히 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랄 수밖에.
상춘, 이란 단어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두 가지는 건너뛰고, 세 번째 '상춘(傷春)'은 '봄에 마음이 들뜸'을 뜻한다. 봄에 다친 마음. 멋진 표현이다. 네 번째 '상춘(賞春)'은 '봄을 맞아 경치를 구경하며 즐김'을 뜻한다. 정극인의 <상춘곡>이 이 한자를 쓴다. 봄을 맛봄. 역시 멋지다. 꽃은 점점홍, 짙은 흙냄새,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몽글몽글한 감각, 시큼한 풀잎 맛, 가볍고 명랑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올해의 봄은 어떤 맛일까?
볼륨을 높이면 빗소리가 들린다.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