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는데, 간지러웠다. 이중창과 블라인드를 뚫고 방으로 한껏 쏟아지는 햇살이 피부에 닿는 그런 간지러움이랑은 달랐다. 그러니까, 간지러운 감각은 눈에만 집중돼 있었다. 눈 비비지 말아야지, 그럼 안 돼. 손을 얼굴로 가져다가 도로 이불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목도 살짝 까끌한 듯하다. 이제 시작이구나! 송화가루가 빗물에 휩쓸려 흩어지며 아스팔트 위에 노란 띠를 그리는 계절, 민들레 홀씨가 우아하게 부유하며 시야를 뿌옇게 흐리는 계절, 알레르기의 계절.
마스크를 쓰고 마스크를 사러 가는 길(아니, 이게 무슨 아이러니람). 주말 당번 약국을 찾아 동네 공원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봄이 끝장난 자리마다 벌써 여름이 들어차고 있었다. 산수유랑 비슷한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가 1등, 진달래랑 개나리가 2등, 벚꽃이 3등, 라일락이 4등, 장미랑 철쭉이 5등.... 순번을 정해 꽃 폈다 진 자리마다 새 잎이 돋아나며 계절 갈이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계절은 아무래도 초록이 대세다. 유난히도 열심히 놓쳤던 올해 봄꽃이 지워진 자리마다 새파란 이파리가 매달려 너울거리고 있었다.
이팝나무 꽃. 쌀밥처럼 생긴 새하얀 꽃을 피워 이런 이름이 붙었다.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봄과 여름 사이는 흰꽃이 메운다. 조팝나무와 이팝나무가 그렁그렁 하얀 꽃을 매달았고, 아카시아도 신나게 흰꽃을 피워댔다. 마스크를 뚫고 코끝까지 와 닿는 아찔한 아카시아 향에 이끌려 그 자리에 그대로 붙박인다. 코를 벌름거리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기로 했다. 아차, 그런데 어딜 가던 중이었더라?
모든 성장에는 저마다의 계절이 있지요.
할 애시비(Hal Ashby) 감독의 영화 <챈스(Being There, 1979)>에는 정원일만 할 줄 아는 바보 챈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정원에는 사계절이 찾아오죠. 먼저 봄과 여름이 오고 다음엔 가을과 겨울이 오죠."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이 평범한 상식이 때로는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아무도 3월에 핀 생강나무 꽃을 보며 너무 이르다 나무라지 않고, 그 누구도 5월에 핀 아카시아꽃을 보며 너무 늦다 타박하지 않는다. 이 계절이 지나면 어김없이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고, 국화도 향기를 흩뿌릴 테다. 당신과 나의 꽃도 계절과 색깔과 향기가 저마다 다를 수밖에는 없다. 당연하다.
일조량을 가늠하며 꽃 필 시기를 재는 꽃나무처럼 계절을 감각하는 오늘. 빗물에 씻긴 나뭇잎이 싱그러워 한동안 시선을 빼앗겼다가,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린다. 퍽이나 얄미울 만큼 나를 괴롭히는 이 계절을, 차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 더욱 괴롭다.
마스크 사러 나가는 길이 꽃길, 아니 숲길.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