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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발 Oct 19. 2024

'더 열심히'가 '더 잘'은 아니듯

'더 잘'한다고 해서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듯

에드먼드 듈락(Edmund Dulac),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1911)>



'아, 내가 당신의 생명을 구해 준 바로 그 소녀예요, 왕자님!... 당신은 저보다 그 처녀를 더 사랑하시죠?' 인어 공주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지만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운칠기삼과 진인사대천명은 한뜻


한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유전이라며, '노력'의 한계를 입증하는 연구가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MBC 프로그램 <공부가 머니?>에서는 공부의 경우, 노력의 영향력은 고작 4%이고 나머지는 생물학적 유전, 사회적 유전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럼 스포츠는 어떨까? 공부보다는 조금 나아서 18%의 노력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내가 물려받은 운동신경이라 함은, 정말 잘하는 사람과 너무 못하는 사람의 딱 중간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랄까? 16년 동안 학교에 다니며 학우들과 비교해 얻은 나름 정밀한 데이터다(그때 체력장에서는 딱 3등급을 받았다). 더 좋아하고 더 열심히 해도 더 이상은 늘지 않는 어떤 한계가 있으리란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던 때였다. 그런데 계속 제일 잘하는 레인에서 수영해도 될까?


동호회에 나가 보니, 나는 겨우 꼴찌 그룹을 면할 정도의 실력으로 줄 세워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 가면 나와 매일 아침 7시에 같은 레인에서 강습받는 1번이 초중급 회원들을 코칭했는데, 코치의 지시에 맞춰 천천히 자세를 교정해 본다는 마음으로 쫓아가보기로 했다. 수영장 연수반쯤 되면 뺑뺑이만 돌리지, 따로 자세 교정은 해주지 않아 답답하던 때였으므로. 나는 모든 영법을 마스터하기도 전에 조금 빠르다는 이유로 혼자서 월반을 몇 번 해왔기에 제대로 된 수영을 하고 있지 못했다. 딱 봐도 운동을 썩 잘할 것 같지 않은 외모를 지닌 나를 뒤로하고, 수력 7년 이상인 분들은 모두 내 앞에 섰다. 나는 새내기답게 행여 바로 앞 사람을 놓치기라도 할까 봐 눈만 그렁그렁하게 뜨고 맨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우리 강습 레인 2번에 서는 두목님은 이 동호회의 회장님이었다(상상도 못했다!). 나는 언니들과 수영하던 레인 1번에 서던 남자 어르신을 회장님이라 부르며 따르고 있었다. 락스 물 안에 두 회장님을 모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레인 2번이자 동호회 회장님인, 구릿빛 피부의 근육맨 산티아고에게는 '두목님'이라는 별칭을 지어주기로 했다(그는 지금도 내가 별명을 부를 때마다 조폭 같다며 썩 좋아하지 않는 눈치지만, 다른 회원 몇몇 분들도 이미 두목님이라 부르고 있다).


동호회는 2005년 처음 만들어졌고, 두목님은 가입 당시에 막내였다고 한다. 카리스마와 수영 실력과 포용력을 두루 갖춘 진정한 리더 스타일이다. 두목님과 우리 레인 1번의 나이 차이는 5~6살 정도이고, 실력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듯했다. 나랑 평일에 같이 수영하는 이 두 사람 말고도 동호회에는 은둔 고수들이 많았다. 상급 레인에서는 자유형 20바퀴로 몸을 가볍게(?!) 풀어내고 이후에는 모든 영법을 동원해 쉼 없는 뺑뺑이를 빠르게 돌았다. 지치는 기색도 없이. 50~60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은이들보다 날쌔게 물을 잡고, 차고, 타고, 미끄러지는 사람들. 이분들의 열정을 가만 보는 것만으로도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수영이 더더욱 좋아졌다.


의지가 박약한 사람처럼 수영하는 날 보며 두목님이 이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

"수영 더 잘하고 싶지 않아? 힘들어도 참고 해야 늘지. 쉬면 안 늘어."

그때의 나는 정말 수영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호기롭게 대답했다.

"저는 수영을 잘하기보다는 부상 없이 오래 안 지치고 하는 게 목표인데요?

"나랑 똑같네!"

수영 잘하시는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하고 따로 덧붙이지는 않았다. 지친 상태와 기분을 못 견뎌해서 그렇지,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 수영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아마 몰랐을 거다.



왕자를 더 사랑한 건 인어공주


바다에 빠진 왕자를 구한 것은 인어공주였다. 왕자는 이웃나라 공주가 자신을 구했다고 착각했지만. 전지적 인어공주 시점에서 보면 하늘 아래 왕자를 가장 사랑한 건 바로 인어공주였다. 그를 얻기 위해 목소리와 바닷속 안락한 삶을 저버리고 사람이 되어 육지에 발을 디뎠다. 안타깝게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열심히' 그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한다고 해서 '더 잘'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왕자는 이웃나라 공주를 신붓감으로 택하고, 인어공주에게 두 사람의 미래를 축복해 달라고 요청한다(망할 놈!).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꼭 그 간절함과 노력만큼의 크기를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운이 7이고 기가 3이라면, 결국 7이나마 해봐야 변명할 때 떳떳하기라도 하겠지. 그래서 운칠기삼(三)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한뜻이다. 일단은 최선을 다해보고나 운이나마 기대해 보자. 이단은 결론이 나고 난 이후에 생각하면 되겠지.


오늘도 2번의 별명을 왜 '까치'라 했는지는 밝히지 못했네? 으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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