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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발 Oct 21. 2024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 대신 손발에 주눅이

신야 타카하시(Shinya Takahashi), 유타카 오노(Yutaka Ono) <인어공주(교원애니메이션명작)>



"자, 이제 네 혀를 다오." 마녀는 인어 공주의 혀를 싹둑 잘랐다. 이제 인어 공주는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다시는 노래를 부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손발에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삶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함을 느끼는 시기는 아주 잠깐만 유지된다. 머무르는 환경과 곁에 있는 사람들은 변하거나 떠난다. 속수무책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국면에 접어들고 국공립 수영장이 다시 문을 열면서 은둔 고수들이 수영장을 차츰 떠나기 시작했다. 1년 가까이 함께 수영하던 두목님도 처음 동호회가 시작된 구립 수영장으로 옮겨갔고, 다른 분들도 여기저기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우리 레인 인원은 갑자기 반토막 났다. 실력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뉘던 분들 중 가운데를 담당하던 모든 분들이 빠져나가, 가까스로 꼴찌를 면했던 나는 선두그룹과의 엄청난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지쳐가고 있었다.


레인 1번이자, 리더. 두목님이 비운 자리마저 채워 두 사람 몫을 하는 것은 까치였다. 두목님은 우리 레인 1번을 '까칠한 1번'이라고 불렀다. 그는 좀처럼 웃는 일이 없고, 항상 성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동호회 정모가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일제히 같은 포즈를 취하는 이들과 달리, 항상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응시하곤 했다. 사진 프레임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동호회원들은 그 얼굴을 뒤에서 '츤데레'라 불렀다. 성난 외모와는 달리, 동호회 초중급반을 코칭하는 것은 물론, 동호회원이든 같은 수영장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수영에 대해 물어보면 성심을 다해 알려줬다. 아, 물론 물어보지 않아도(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 성의껏 알려줬다. 


같은 레인을 쓰는 사람들은 자유수영을 할 때에도 같은 시각에 맞춰 나와 1번의 가이드에 맞춰 훈련한다. 일요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아침을 함께하며 나도 그의 덕을 자주 봤다. 다양하고 정교한 수영 테크닉을 알려준 것도 그였다. 그 시절 나는 '까칠한 1번'이 어찌어찌 수영을 알려줬다, 하고 동생에게 자주 얘기했다(동생도 수영인이다). 한참 듣던 동생이 물어본 적이 있다.

"까치가 뭐라고?"

"...."

이런 식으로 내 어눌한 발음에 왜곡된 채, 그는 '까치'가 됐다. 반가운 소식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2년 수력이 3년으로 늘었다고 해서 50m를 30초 컷으로 들어오는 까치와 속도를 맞출 수는 없었다. 자주 지치고, 그래서 자주 쉬는 나를 두고 까치는 너무도 답답해했다. 까치가 일러주는 대로 매일 아침 연습해도 바로 고쳐지지 않는 자세와 빨라지지 않는 속도. 나는 주눅 든 손발을 탓할 기운도 없이 수영에도 똑같이 지쳐가고 있었다. '또 쉬어?'와 '그러니까 안 늘지.'는 그가 내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었다. 나중에는 겸연쩍은 웃음도 짓지 못했다. 



인어공주가 수어나 글씨를 배웠다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물약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포기하고, 바닷속 용궁을 떠나 홀로 서는 단단한 결단력을 보여줬던 '능동'공주는 왕자를 만난 이후부터는 '수동'공주가 돼버린다. 그가 왕자를 구한 진짜 주인공이라고 말하지 않고, 얼마나 왕자를 사랑하는지도 표현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사랑하고 싶다는 각오와 희망을 담아 구애하지도 않는다. 만약 인어공주가 수어나 글씨를 배웠다면 어땠을까. 그는 자신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었을까?


한창 퇴사를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다.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암흑기를 가까스로 벗어났다고 판단했는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딱 하루만 잘 버텨보자!' 하고 다짐해야만 이부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다. 내일은 결코 돌볼 짬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수영을 하면서도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떨치지 못했다. 근심에는 무게가 있다. 마음이 무거우면 몸뚱이 또한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회사에서도, 수영장에서도 매번 제자리걸음이었다. 인어공주처럼 수동형으로 남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번에도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에 짜낸 것은 무엇이었는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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