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블린 스튜어트 하디(evelyn stuart hardy),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날카로운 칼날이 몸을 뚫는 것처럼 고통스럽겠지만, 사람들이 네 모습을 보면 황홀해서 넋이 나갈 거야. 하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고통을 참아야 하지. 그래도 괜찮다면 도와주마."
보트에 공짜로 탈 수 있는 기회
어릴 때 나는, 차로 달려 30분이면 곧장 바다에 닿을 수 있는 지역에 살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동그란 튜브 두 개와 네모난 워터 베드 하나를 불어 네 식구가 물놀이를 갔다(우리 식구는 그 시절 이후로 더 늘어났다). 해수욕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바탕 뒤집어 보겠다는 듯 집채처럼 밀려오는 동해의 파도와 달리, 서해의 파도는 잔잔한 산들바람처럼 여러 번 일렁이며 몸을 기분 좋게 간질였다. 누워서 하늘을 보는 일도 좋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어름은,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신기한 무언가가 시작되기라도 할 것처럼 신비로웠다. 눈을 감고 누우면, 눈꺼풀이 비치는 어둠 속에서 물비늘이 파도를 넘듯 반짝였다.
"코로나로 못 했던 오픈워터 대회도 이제 슬슬 나오나 봅니다."
두목님이 '삼척 이사부장군배 전국 바다수영대회' 포스터를 동호회 단톡방에 게재했다. 4월이었다.
"한번 가볼까?"
"모여라!"
이미 대회에 참여해 봤던 동호회 분들은 포스터가 올라온 지 채 수 분도 지나지 않아 기대감을 드러냈다. 나처럼 동호회에 갓 들어온 수린이들도 덩달아, 저 가고 싶어요, 저도 가고 싶어요, 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비경쟁 1km 짝핀 경험 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꼴랑 1km 핀 끼고 하는 거라 금방 가요."
까치도 한마디 거들었다.
"참고로 오픈워터 대회는 항상 일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특히 바다 대회는 파도 영향. 대회 당일 취소된 적 많음."
한참을 눈으로 채팅 창을 읽어 내리며 잠자코 구경만 했다. 나는 세상 제일가는 겁쟁이니까. 어릴 때는 튜브를 탔지만, 이제 더 이상은 탈 수 없다. 바다야, 예전에 내가 자주 말 걸었던 것 기억하니? 내가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줄래?!
"초보도 가능하겠죠?"
나와 함께 동호회 초보반에서 수영하는 자매 언니들 중 동생 분이 내가 하고 싶던 질문을 던졌다.
"첨에 물속이 잘 안 보여서 무서울 수 있는데 걍 하다 보면 괜찮을 거예요. 너무 무서울 때 손 번쩍 들면 보트가 태워줌."
오! 라이프가드가 있단 말이지?!
"그럼 0.5km만 수영하고 보트 타면 재밌겠네요. 보트 탐난다아!"
가까스로 꺼낸 이 말은 진심이었다. 수태기(수영 권태기)에 빠져 수영장 레인 두 바퀴를 초과해 도는 일이 좀처럼 없던 시기라, 1km나 헤엄치기에는 너무나도 벅찰 것 같았다. 수영장으로 따지면 20바퀴를 돌아야 하는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만큼을 쉬지 않고 돌아본 적이 없는걸! 그렇지만 500m만 수영하고, 손 흔들어서 구명보트에 타면 또 그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보트에 한 번도 못 타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