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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Aug 09. 2024

정말 아이에게 화난 건가요?

욱하는 양육자, 상처받는 아이

육아에 대한 콘텐츠에 '화'라는 단어가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욱'이 있네요. 양육자는 자신의 화를 소리 지르거나 심지어 때리는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빈정거리거나 무시하고 외면하는, 수동적인 형태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육아하면서 화를 안 낼... 좀 덜 낼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이 주제를 다뤄보려고 해요.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가 봅니다. (구글 'stop yelling' 검색 이미지 갈무리)


제목을 되묻습니다.

정말 아이에게 '화'난 건가요?


화가 난 건가요? 그 감정이 정말 '화'일까요? 혹시 '화'로 뭉뚱그려진 다른 감정은 아닐까요? 육아가 너무 고돼서 지쳤을 수도 있고요.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서 안타깝거나 무기력하거나 슬픈 상태일 수도 있죠. 그런데 마침 그때 아이가 어지르거나, 안 자거나, 음식을 쏟거나, 소리를 지르면 우리의 그 감정에 불이 붙어 폭발합니다. 화로 표현해서 다 태워버리고 나면 재만 남아서 정말 감정이 뭐였는지 알 수 없어요. 


화나서 소리를 지를 것 같을 때 멈추고 진짜 감정을 찾아보세요. (자기도 모르게 폭발해서 멈추기 어렵다는 분도 계신데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수준이 아니라면 대부분 열이 차오르고, 이러다 한번 폭발할 것 같다는 느낌이 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말로 표현해 보세요. 가령, 이렇게요.

휴~ 엄마가 지금 많이 지쳤어.
와, 정말 힘드네!
아빠도 방법을 잘 모르겠어서 답답해.
아! 아빠 너무 속상하다.

빠지듯이 푸슉~ 화가 내려가는 느끼실 있을 겁니다.


만약 부모가 '화'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면, 아이들도 화 내지는 짜증으로 자신의 감정을 뭉뚱그리는 법을 배웁니다. 피로, 낙심, 슬픔, 무기력, 안타까움... 이렇게 감정이 선명하면 나아질 방법을 같이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 짱나!' 한 마디로는 그럴 수가 없지요. 본질이 뭔지 알 수 없으니 아이나 양육자나 도리가 없어집니다.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봅니다. 

정말 '아이'에게 화난 건가요?


저희 집에도 화를 잘 내는 양육자가 한 명 삽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아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나 무기력한 상황에 화가 난 경우가 많았어요. 체력이 바닥나서 힘에 부치거나, 일정이 꼬이거나, 동료 양육자(=바로 저)에 대한 원망이 들 때 화를 잘 내더라고요. 저 역시 (아이들에게 비 호의적인) 다른 어른들이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감정이 아이에게 대물림되지 않게 유의합니다.


혹시 다른 곳에서 쌓인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내고 있진 않나요? 대목에서 결혼할 때 한 하객 분에게 들었던 덕담이 떠오릅니다.

밖에서 지고 와서 안에서 이기려고 들지 마.
그것처럼 비겁하고 못난 게 없어.


가정을 마지막 보루 삼아, 부부가 서로 돌보고 져주라는 의미 같았어요. 이 원리가 아이와 양육자 사이에서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아이든 양육자든 집 밖에서 뺨 맞고 집 안에서 화풀이하는 일은 없어야겠죠. 더구나 어른인 양육자가 여러 가지 면에서 약자인 아이에게 밖에서 생긴 화를 쏟아붓는다면 아이는 정말 외롭고 두렵고 막막할 겁니다.

 

이 패턴을 아이가 학습하는 상상을 해볼까요? 사춘기가 되어 성적고민, 학교생활, 친구관계처럼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양육자(대부분의 경우 엄마)에게 다 풀려고 할 겁니다. 원인이 양육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서 다루기도 어렵고, 감정쓰레기를 직격탄으로 맞으니 양육자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화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되, 아이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면 도움이 됩니다. 

이 상황이 너무 부당한 것 같아서 엄마가 화가 나 (너한테, 너 때문이 아니라)
여기서 너랑 즐겁게 보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
엄마가 회사에서 좀 화나는 일이 있었어.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감정이 정확히 '화'고 원인도 정확히 '아이'인 경우엔 어떻게 하나요?


비폭력대화에서는 감정의 원인이 외부 상황이나 타인이 아닌, 나의 욕구에 있다고 말합니다. 감정이 정확히 '화'라면 내가 원하는 무엇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나의 편안함, 여유, 건강, 휴식, 자기 돌봄, 상호성, 이해, 배려, 존중, 순탄함, 예측가능성... 내 욕구 안에 답이 있습니다. 그러면 '너 때문에 화나!'가 아니라 '엄마는 OO을 원해. 그게 채워지지 않아서 화가 나'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아이를 내 화의 근원이자 대상으로 생각해서 그 화를 그대로 표현하면 아이는 놀라거나 얼어붙거나 더 큰 화로 화답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뇌에 크고 작은 트라우마의 흔적이 남지요. 하지만 양육자가 자신의 감정을 분명히 알고, 적절하게 표현하면 아이는 조절능력을 그대로 배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놀랍게도 아이가 나의 욕구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돌보려 합니다. 심지어 말하기 전의 아이도요. 그리고 좀 더 자라 아이가 말을 하게 되면 차분해지면서 '엄마, 내가 도와줄까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건가 귀를 의심했어요.)


아이를 화의 대상으로 삼지 마세요. 많은 양육자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고 후회하는 실수입니다. 대신 멈추고 스스로 물어보세요. 

- 이게 '정말 화'인가?

- 이게 정말 '아이 때문'인가?

그리고 위에서 연습한 대로 아이에게 표현해 주세요. 아이는 내가 사랑하는 엄마아빠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궁금하고 돕고 싶어 할 거예요. 이 경험이 자기자비와 공감능력의 뿌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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