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명령, 지시와는 다른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요청
육아와 부탁이라... 왠지 전혀 관계없어 보이죠. 아이들에게 무슨 부탁을 해요? 육아를 사정사정하며 하란 말입니까?
비폭력대화의 네 번째 요소 부탁은, 양육자가 자신의 욕구에 기반해 요청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아 중에 이런 '부탁'을 이미 많이 하고 있어요.
장난감 다 가지고 놀았으면 치워 줄 수 있니?
밥 한 자리에 앉아 먹어주겠니?
얼른 옷 갈아입고 나와줄래?
어른을 보면 큰 소리로 인사해야지.
우선, 부탁해야 할 것과 훈육을 통해 알려주어야 할 것을 구분해야겠네요. 저희는 '아이 자신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훈육의 절대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이것들은 부탁이 아니라 행동으로 통제하거나 즉시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예시처럼 생활습관, 시간약속, 예의범절은 아이들의 발달단계와 각 가정의 육아관에 따라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약속으로 보고 엄격하게 체득하길 기대하는 양육자들과, '알아서 하면 좋지만, 못해도 그렇게 강요할 것까진 없는 일'로 생각하는 양육자로 나뉜달까요.
하지만 기관생활을 하거나 초등학교에 가면 생활습관, 시간약속, 예의범절이 공적인 문제로 바뀝니다. 과정은 어쨌건 반드시 배워야 하는 요소들인 거죠. 가야 하는 목적지는 같지만 과정이 어떤지에 따라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천양지차입니다.
만약 양육자가 명령과 지시로 가르친다면, 아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복종 혹은 저항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아이는 작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복종하기 위해 자기 욕구를 포기하거나, 저항했다가 '말 안 듣는 아이'로 낙인찍히기 쉬우니까요. 아이가 좌절할 수밖에 없는 판을 짜서 그 안에 몰아넣는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굳이 찾아보자면 양육자가 잠시 물리적으로 편안한 것 정도겠네요.
이 대목에서 '권위'라는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권위는 양육자의 명령과 지시에 아이가 복종한다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양육자를 신뢰하고 부여해 주어야 비로소 성립하는 개념이지요.
반면 부탁은 아이에게 선택지를 주고,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 아이가 스스로 배우고 책임지는 과정입니다. 만약 아이가 양육자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해서 좋은 경험을 했다면 그건 아이가 해낸 작은 성공이 됩니다. 반대로 양육자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결과가 안 좋았다면 그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이 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배웁니다. 아이가 양육자의 부탁을 거절했는데 결과가 누가 봐도 만족스럽다면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겠지요. 인정해 주면 됩니다. 괜히 복잡해 보이니 예를 들어볼까요?
요즘 같은 삼복더위 중에 아이가 복슬복슬 니트 옷을 입겠답니다.
명령/지시 : 안 돼. 더워. 그 옷 당장 내려놔.
부탁 : 그 옷을 입고 싶어? 요즘 날씨에 무척 더울 텐데 여름옷을 입는 게 어떻겠어?
아이가 양육자의 부탁을 듣는다면, 스스로 갈아입고 자신이 날씨에 맞게 옷을 결정했다는 작은 성공을 경험합니다. 만약 아이가 양육자의 부탁을 거절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입고 나간 지 5분 만에 땀이 줄줄 나고 피부가 빨갛게 올라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아이의 거절(날씨, 계절 모르겠고 나는 니트 옷을 입어야겠음)을 잘 듣고, 그 결과가 어떤지를 아이가 몸소 경험(땀 줄줄)하게 지켜보되, 다만 아이의 건강이나 안전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울타리를 넘지 않게 조용히 시원한 티셔츠를 내밀면 됩니다.
이때, '거 봐. 엄마가 뭐랬어! 그 옷 안 된다고 했잖아.'라면서 경찰관이자 판사로 변신하시면 안 됩니다. 빈정거림(고집부리고 입고 나오더니 거봐라 땀띠 났지.)이나 인정받고 싶어서 떠는 유난(엄마 말 들어서 나쁜 거 없다니까)까지 덧붙이지 않게 유의해야 합니다. (저도 자주 그럴 ㅃ... )
우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빈정거리고 유난 떠는 이유는 아이에게 예쁜 말로 부탁했지만 진짜 부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더 잘 알고, 내가 맞으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프레임 안에서 발화만 '부탁'으로 한 것이죠. 그래봤자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경찰관과 판사가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가 복종하지 않으면 곧바로 출동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되물어봐야 합니다. 아이의 실패를 지켜보는 게 두렵고 고통스러워서 미연에 가능성을 막고 있진 않은가, 아이의 실패를 구제해 주는 때에 느껴지는 효능감에 취해있지 않은가 하고요.
아이가 세상을 배워나갈 수 있게 돕는 안내자이자, 문제가 생기면 함께 수습하는 파트너가 돼 주세요. 이 마음으로 아이에게 부탁하고 거절을 들어주세요. 그래야 아이도 타인을 네 편 내 편이 아닌, 친구이자 조력자로 인지합니다. 타인과 함께 지내면서 필요한 것을 말로 부탁하고, 타인의 부탁 앞에 싫으면 거절할 줄 알고, 타인의 거절도 잘 듣는 사람으로 커나갑니다.
여기에 덧붙여,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부탁하는 방법도 연습해 두시면 좋아요. 흔히 이런 말들을 아이에게 하는데요,
깨끗하게 정리하자
빨리 나가야 하니까 얼른 입어
여기선 가만히 조용히 있어
깨끗하게, 빨리, 얼른, 가만히, 조용히 같은 표현은 모호하고 자의적입니다.
회사라고 생각해 볼게요. 상사가 제가 쓴 보고서를 휙 내 던지며 '잘 좀 써와 봐!'라고 한다면요? (이 정도면 직장 내 괴롭힘 수준이지요.)
'잘'은 뭐고, 또 언제까지 어떻게 써오라는 건가요?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때, 누구나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이 아이템은 빼고, 분량을 2/3로 줄여서 2시간 안에 이메일로 보내주세요.'라는 식으로요.
깨끗하게, 빨리, 얼른, 가만히, 조용히 같은 단어들은 아이가 듣기에 답답하고 어려울 수 있어요. 생각해 보면 어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끗하게 한다고 했는데 지저분하다고 하고, 빨리 한다고 했는데 늑장 부린다 하고. 얼마나 억울한가요.
비폭력대화는 듣는 사람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바로 알 수 있게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표현하길 권합니다. 위의 부탁들은 이렇게 고칠 수 있겠죠.
깨끗하게 정리하자 -> 와플 블록들을 노란 상자에 담아줘.
빨리 나가야 하니까 얼른 입어 -> 저 시계로 5분 뒤에 나갈 예정이야. 우선 바지에 다리 넣자.
여기선 가만히 조용히 있어 -> 아빠 다리에 딱 붙어서 10초 얼음! 10,9,8...
더불어 부탁은 앞뒤 없이 하기보다는 왜 해야 하는지 욕구에 기반할 때 더 잘 들립니다. 그 욕구가 양육자의 욕구일 때도 있고, 때로는 아이의 욕구일 수도 있지요. 맨 처음에 예로 들었던, 육아 중에 흔히 하는 부탁들을 살펴볼까요?
장난감 다 가지고 놀았으면 치워 줄 수 있니? - 얼른 치우고, 다른 놀이 같이 하고 싶어. 네가 네 물건을 잘 관리할 수 있길 원해.
밥 한 자리에 앉아 먹어주겠니? - 식사예절을 잘 지켜서 편안하고 쾌적하게 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얼른 옷 갈아입고 나와줄래? - 네 준비는 네가 스스로 해서 엄마도 여유롭고 싶어.
어른을 보면 큰 소리로 인사해야지. - 사회적 규칙을 배워서 네가 사람들과 잘 어우러져 살 수 있길 원해.
이렇게 다 말로 표현하라는 건 아닙니다. 어떤 부탁을 하는 이유(=욕구)에 뿌리를 두자는 거죠. 대신 양육자가 너 때문에 슬프니까 힘드니까…라며 그 감정의 원인을 아이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서로의 욕구를 바탕으로 부탁해 보세요. 생각보다 아이가 더 잘 수용하고 협조해서 놀라실 걸요? 강연 중에 만난 어떤 아이는, 엄마가 명령과 지시를 줄이고 부탁으로 바꿔서 말했더니 '진작에 그렇게 말했으면 제가 잘 알아들었을 텐데요 ‘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잘 들리게 부탁하고, 거절도 수용해 주세요. 아이의 실패를 함께 겪어나가 주세요. 그것이 아이도 살고 나도 사는 비폭력육아입니다.
*여름방학과 휴가로 다음 한 주 쉬고 8/9에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