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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24. 2020

설악산, 생애 최고의 단풍 속으로

-설악산을 가슴에 품고 다시 돌로미티로

금실로 수놓은 우리의 강과 산.. 금수강산(錦繡江山)..!!


   우리는 가끔씩 조국과 부모님에 대해 말을 한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과 선조님들이 대를 이어 살아왔던 곳. 우리의 운명은 부모님과 조국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우리의 의사나 의지로 시작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꿀 수 조차 없다. 그런 연유로 먼 나라 먼 여행길에 올라 견문을 넓힐 때마다 부모님과 선조님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때는 좋은 이유로 또 어떤 때는 반대의 이유가 등장하곤 했다. 이런 일은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 중에 하나이다.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은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되며, 비교 우위에 있는 대상에 대해 적지 않은 동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8월 8일부터 28일까지 19박 20일 동안 이어진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 여행에서도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 우리가 너무도 사랑했던 설악산은 물론 파타고니아까지 돌로미티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 하니에게 나의 생각을 물었더니 당신의 생각도 그러하다고 답했다. 우리는 돌로미티에 눈이 멀어있었던 것이며, 잠시 동안 설악산과 파타고니아를 잊어버리고 지냈던 것이다. 



설악산 생애 최고의 단풍 속으로




그러한 잠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돌로미티는 두 대상보다 우위에 있다기보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아름다운 산이었다. 설악산은 설악산,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는 피츠로이 그리고 돌로미티는 그저 돌로미티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이탈리아(남부)이므로, 설악산이나 피츠로이 보다 돌로미티로 더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돌로미티 여행을 끝마치고 우리는 여건이 하락된다면 돌로미티로 거처를 옮기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따라서 나의 브런치에 관련 내용을 끼적거렸더니 이웃 작가님이 충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우리의 주소지인 바를레타에 거처를 두고 가끔씩 다녀오는 게 더 바람직할 것 같다는 조언이었다. 하니와 나의 생각도 엇비슷했다.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호시탐탐 다시 돌로미티를 찾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23일, 현지시각) 그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하니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가 갑자기 휴가를 떠나는 일이 생겨 그림 수업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수업 공백 등으로 수업일정을 바꾸고 보니 곧 추석 명절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정을 조절하고 돌로미티로 다시 떠나자는데 급 동의를 했다. 



그다음.. 수업을 마친 오늘 하루 종일 돌로미티행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는 대로 사진첩을 열어 설악산에서 하니와 함께 만난 생애 최고의 단풍을 보며 가슴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사는 동안 뻔질나게 다녔던 설악산은 내외 설악은 물론 발도장을 찍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중 설악산 최고의 명소는 공룡능선이었으며 신선대였으나, 신선대에서 남긴 기록들은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채 발효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설악산 등 대한민국(남한)의 명산을 사시사철 다니는 동안 많은 풍광을 봐 왔다. 그러나 한반도 남북을 통틀어 말할 때 선조님들이 말한 금수강산 중에 '산'은 설악산이 으뜸이었다.


설악산이야 말로 금실로 수놓은 산이자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천하절경 명산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애국가가 연주될 때 운무가 낀 장관을 연출한 곳도 설악산이자 공룡능선이었다. 사진첩 속에는 우리가 지나쳤던 공룡능선의 봉우리가 뾰족하게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돌이켜 봐도 다시금 가슴이 설레는 곳.




그러나 산을 좋아하는 여러분들이 그 장소를 찾아 기록을 남기거나 아름다운 단풍을 찾아 떠났지만, 대체로 애국가의 울림만큼 큰 감동을 주진 못했을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내설악의 단풍 소식을 듣고 주중 혹은 주말에 짬을 내어 산을 오르면 그때쯤은 설악산의 단풍이 하산(?)을 시작한 이후이므로, 산 정상 혹은 공룡능선의 오솔길 주변에서 단풍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하늘은 우리를 가엽게 여기셨는지, 어느 날 우리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셨다. 어느 추석날 선조님 대신(?) 우리를 낳아준 조국 최고의 명산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눈 앞에 기적 같은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설악산(대청봉)은 해발고도 1,708미터의 산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한라산과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하니가 저만치 앞장서 걸으며 단풍 속으로 사라질 차비를 하고 있다. 동고동락..!


설악산(雪嶽山)의 어원은 추석 무렵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에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예전에는 추석 전후에 눈이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추석날 산행을 한 공룡능선은 눈 대신 옅은 운무가 끼어 단풍의 운치를 더했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가는 바람에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울긋불긋한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우리가 마등령 고개 정상에 이르렀을 때, 저만치서 몰려들어 앞을 가린 운무는 단풍을 당장에 쓸어 담을 기세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산중에 하니와 나.. 단둘뿐이었다. 



설악산을 가슴에 품고 다시 돌로미티로


평생 두고두고 잊지 못할 산행을 대략 16시간 동안 이어나간 것이다. 설악동에서 출발한 산행은 마등령 고개를 너머 공룡능선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희운각 산장에서 무너미 고갯길을 따라 천불동 계곡에서 다시 설악동까지.. 헤드랜턴에 의지한 채 계곡을 빠져나오니 저만치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초주검을 경험한 것이다. 사정이 대략 이러하면 두 번 다시 공룡능선으로 가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ㅜ



그런데.. 희한하지. 온몸의 관절이 분해된 듯한 고통이 사그라들면 다시 공룡능선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미쳐야 가능하지..ㅜ) 그곳이 금실로 수놓은 곳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덩어리를 박아둔들 다시 가고 싶을까.. 조국과 부모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리움은 더한 법이니, 생애 최고의 단풍 속으로 사라진 시간을 계수하면 또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겠는가..



우리가 돌로미티 여행을 다녀온 직후의 마음은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녀온 것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위 돌로미티 자료사진(첫 번째) 중간에 움푹 파인 계곡이 알따 바디아(Alta Badia)의 유명한 트래킹 코스 리푸지오 프랑코 까바싸 알 삐쉬아두(Il rifugio Franco Cavazza al Pisciadù)로 불리는 곳이다. 



하니와 둘이 이곳 정상을 다녀온 직후 초주검을 경험했는데 공룡능선에서 겪은 경험과 많이 달랐다. 초행길의 이 길은 매우 위험했다. 트래킹이 아니라 등반이었으며 하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 그때 단풍이 금실로 돌로미티를 수놓았으면 덜 힘들었거니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돌로미티는 우리를 낳아준 조국과 부모님과 다른 운명의 산이었다. 그 산중에는 사람들을 편안하고 신비롭게 만드는 야생화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멀리서 본 거대한 바위산은 겉으로는 무심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당신의 혼이 풀꽃을 통해 호흡하는 것을 곁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이 철철 넘쳐났다. 그 산이 우리를 다시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바를레타를 출발해 장도에 오를 것이다. 이번에는 초행길과 달리 낯선 길 보다 눈에 익은 고갯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고 느리게 느리게 발품을 팔며 돌로미티 속으로 깊이 발을 들여놓을 것 같다. 머리를 뉠 작은 공간만 허락된다면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는 재미에 젖어 살겠지..



우리가 다시 장도에 오를 때는 야영 준비물 등 생필품이 전부가 아니다.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가슴 깊이 새겨졌던 그리움 전부를 차곡차곡 잘 챙겨서 드 넓은 돌로미티에 모두 내려놓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은 돌로미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기보다 먼 나라에 와 있기 때문은 아닌지도 모를 일.. 



그러나.. 우리는 돌로미티를 떠나 바를레타로 돌아올 때부터 돌로미티를 가슴에서 내려놓은 적 없었다. 그와 동시에 하니와 함께 사랑했던 금수강산과 먼 나라 먼 여행지에서 동고동락하며 함께 바라봤던 산하들을 잊고 산적이 없다. 그곳은 우리의 또 다른 운명이자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 같은 것. 돌로미티로 가는 준비물을 챙기다가 잠시 뒤를 돌아봤다.  


Parco Nazionale del Monte Soraksan COREA
e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
il 24 Septt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K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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