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COVID-19, 2020년 4월 4일 오후 5시 49분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와 부부의 거리두기..?!!
-Il bollettino al 04 Aprile.
어제(Il bollettino al 03 marzo.) 이탈리아 꼬로나비루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및 치료자 수 Coronavirus in Italia: 119,827(+4,585) casi, 14,681(+766) morti, 19,758(+1,480) i guariti
-2020년 4월 4일 오후 5시 49분(현지시각) 현재, 이탈리아 꼬로나비루스(COVID-19) 누적 확진자 수는 124,632명(+4,805)으로 집계되어 소폭 줄어들었다. 그러나 사망자 수는 15,362명으로 집계되어 전날보다 85명이나 줄었다. 치료자 수는 20,996명으로 집계되었다. (출처: www.corriere.it )
이 같은 통계 수치는 이틀 전 혹은 사흘 전에 비에 미약하나마 희망을 느끼게 하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치료자 수가 조금 더 줄어들고 확진자 수가 조금 더 늘긴 했지만, 고무적인 것은 사망자 수가 85명이나 대폭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이 하룻만에 일어났다.
*자료 출처: COVID-19 CORONAVIRUS PANDEMIC
위 꼬뷔드-19 팬데믹 도표를 참조하면 그동안 우려했던 결과가 현실로 드러난 하루였다. 미국이 확진자 수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스페인이 마침내 이탈리아를 제치고 2위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그 뒤를 쫓고 있는 안타까운 양상이다.
특히 스페인과 프랑스의 약진은 유럽을 통째로 삼킬 듯 처참한 통계치를 쓰고 있다. 이 같은 수치가 올림픽 메달과 닮은 기분 좋은 수치가 아니라 공포스러운 수치이자, 전혀 넘보지 말아야 할 기록인데.. 어쩌다 지구촌은 매일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꼬뷔드-19가 남기고 있는 작은 교훈
서기 2020년 4월 4일 오후(현지시각), 매일 확인하게 되는 통계 자료를 집계하다가 요즘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떠올렸다. 이런 일은 인류문화사가 시작된 이래 매우 낯선 풍경으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나마 거리두기는 용서할만하다. 방콕 혹은 집콕이 점점 더 길어지면서 24시간이 너무 길어진 것이다.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를 반복하면서 도대체 이게 할 짓인가 싶은 생각이 무시로 드는 것. 더군다나 매일 같이 싸돌아 다니다 방콕을 하자니 감옥생활이 따로 없다. 그것도 우리 스스로 '자가격리'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또 정부가 권고하는가 하면, 어떤 나라들은 강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너무도 낯선 풍경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거리를 두면 둘수록 전에 미처 깨닫지 못한 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주로 묻어(?) 다니던 습관에서 벗어나다 보니, 나(自我, ego)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포착된 것이랄까..
그동안은 주로 상대방 혹은 집단을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 날부터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전신을 비추는가 하면, 속까지 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잘 닦은 면경이 눈 앞에 짜잔~하고 나타난 것이다. 마치 도둑이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상황을 빌어먹을 비루스가 연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혹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의 행위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인간이 함부로 행한 환경오염 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작금의 비루스 사태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 나는 이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한 술 더 떠 그동안 잊고 살거나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행위를 떠올리고 있었다.
넘지 말아야 할 부부생활의 금도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다가.. 마침내 우리가 죽기 전에 살아보고 싶었던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볕 좋은 날 아내는 나의 안내에 따라 르네상스 시대의 향기가 폴폴 날리는 언덕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올리브나무 고목이 오래된 성곽 담벼락에 기댄 곳.
나지막한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뽀르따 산 지오르지오(Porta San Giorgio) 4거리에 이르고, 이때부터 좌측으로 돌아 아르노 강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피렌체의 전혀 다른 풍경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 길 이름은 뷔아 디 벨베데레(Via di belvedere)라는 곳으로 고즈넉하고 고풍스럽기 짝이 없다. 인적이 드문 이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명소'로 데이트 길로 안성맞춤인 것.
이틀 전,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편에 이렇게 끼적거려 두었다. 피렌체의 숨겨진 명소인 뷔아 디 벨베데레는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이맘때가 제격이다. 겨우내 숨죽이고 볕만 쬐던 올리브나무 고목들이 높은 성곽에 기대어 졸고 있는 곳. 그 곁으로 봄꽃들이 자지러지고 있었다.
나는 이 길을 여러 번 걷게 됐다. 혼자서 걸었으며 이곳을 찾은 새까만 후배들을 안내했고 우리 관광객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너무 좋아했다. 특히 높은 성곽과 잘 어우러진 올리브나무는 다른 데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명품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주로 외면받은 곳. 그곳에서 우리는 넘지 말아야 할 금도 혹은 벽이 어떤 것인지 넌지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금도(禁度)란 '넘어선 안 될 선'이나'지켜야 할 법도'를 말한다.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기 이전부터 세상은 늘 적당한 거리두기 혹은 금도를 지키고 있었다고나 할까.. 아내와 함께 데이트하던 이 길을 따라 높다란 성곽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외부인이 함부로 넘나 볼 수 없도록 조치를 해 둔 것이다.
이 같은 일은 비단 르네상스의 고도에서 뿐만 아니라,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 di Atene)까지 그리고 그 너머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 외부로부터 (적으로부터) 보호받아야 마땅할 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랄까.
살다 보니 부부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부부 사이에서도 금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부부 조차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 관습이지만, 큰누이가 족두리 쓰고 시집을 갈 당시만 해도 출가외인(出嫁外人)이란 말은 당연한 듯, 여성들의 삶을 한(恨)으로 포장한 매우 슬픈 문화였다. 여성이 시집을 가는 순간 남으로 변해 시집에 종속되는가 하면, 당신이 태어난 부모의 집을 친정이라 부르는 것.
여성이 무슨 상품인가. 도대체 친정이나 시댁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누이가 시집가던 날 장독대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괜히 슬펐다. 금이야 옥이야 기르던 딸내미가 어느 날 시집으로 간다길래.. 그 넘의 집은 도대체 어떤 집인지 몹씨도 궁금했던 것이다.
글쎄.. 그 넘의 집을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께서 큰누이에게 무시로 가르치던 교육에 포함되어있었다. 시집의 법도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며, 남편과 시댁에 대한 여성의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 그러니까 박서방 김서방 이서방 저서방 및 시댁이란 곳은 금쪽같이 키운 딸내미를 어느 날 통째로 덮썩 삼킨 꼴이라고나 할까. 이틀 전 우울했던 그 장면을 브런치 이웃 한 분이 덧글에 이렇게 썼다.
부부생활
부부생활
열흘을 잘 지내다 한마디에 삐걱될 때
남편의 깍두기 씹는 소리가 거슬릴 때
꼭 이 길일까.. 몇 날을 잠 못들 때
해 질 무렵 집을 벗어나고 싶을 때
어미와 아내의 책임에 찡기어
흘러가지도 건너가지도 못할 때
간절했던 것들을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려 날려 보낼 때... 그럴 때
제 친정어머니 말씀이 늘 뇌리를 맴돌곤 했습니다.
순간을 참으면 하루가 편하고
하루를 참으면 백날이 편안하며
공은 쌓은 대로 가고
죄는 지은대로 가며
물은 제 길로 간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은 오십에 해도 육십에 해도 늦지 않다.
어미의 길과 아내의 본분.
너의 길을 잊지 마라 잊지마라시던.....
글: 잠자는 물고기 <수제비와 글 제비> 중에서
아내와 함께 로즈마리노(Rosmarino) 꽃향기가 진동하는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오래된 성곽의 담벼락도 함께 따라왔다. 나는 살아가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금도를 곁에 두고 얼마나 많은 침탈을 행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 모르긴 해도 수도 없이 지지고 볶고 싸우며 나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을 것이다. 또 질세라 되갚아 주겠노라며 금도를 넘었을 것이다. 브런치 이웃의 훌륭한 어머니의 가르침 '부부생활'은 나의 거울이자 이 시대의 거울이 아닌가..
잠시 비루스 사태의 통계를 정리하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부부의 거리두기가 생각난 하루이다. 글은 길이가 아니라 울림이다. 울림 있는 글 앞에서 잠시 나를 돌아본다. 박서방 김서방 이서방 저서방에게 권고한다. 설령 금도를 넘었다 해도 끝까지 지켜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당신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남편 바라기에게 절대로 폭행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내가 젤 미워하는..!) 사랑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이 시대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L'oro della vita coniugale che non dovrebbe essere passato
il 04 April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