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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30. 2020

달라진 아내의 얼굴

#7 아내의 도전_소묘 3단계 마무리

지난 한 달 동안 달라진 아내의 속 사람..!!



   사흘 전(27일 현지 시각)의 일이다. 그림 수업을 끝낸 아내는 나와 함께 바를레타의 재래시장 메르까또 디 산 니꼴라(Mercato di San Nicola)로 향했다. 시장에는 요즘 제철 과일과 채소가 차고 넘친다. 가격은 또 얼마나 쌌는지 웬만한 과일과 채소는 1킬로그램에 1유로 정도의 가격이다. 가격 대비 품질까지 뛰어나 아내는 너무 흡족해한다. 따라서 시장에 가는 날이면 손수레를 가져가야 양껏 담아올 수 있는 것.


시장으로 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날 아내의 그림 수업 소묘 3단계가 끝났기 때문이다. 바를레타에서 아내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 라노떼(Luigi Lanotte)의 지도를 받은 지 대략 한 달만에 소묘 3단계가 끝난 것이다. 따라서 작품 3점이 곧 액자에 담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날 루이지는 3단계 수업을 끝낸 아내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장면을 맨 아래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3단계 소묘 과정 중에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동시에 브런치에 담았다. 3단계 수업이 끝나자 아내는 아이들처럼 좋아했고 덩달아 나까지 기뻤다.


처음 이곳에서 그림 수업을 시작할 때 결과가 매우 궁금했다. 아내의 도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동시통역을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동시통역의 어려움은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루이지가 열심히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나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나의 목소리 크기는 점점 더 커진 것이다. 미안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잘하던 것도 잘 못하며 주눅이 들 텐데.. 그때마다 아내는 잘도 극복해 냈다. 아내가 조용히 집중할 수 있도록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동안, 아내에게 주어진 미션은 점점 더 또렷한 형체를 내 보였다. 1단계부터 시작된 소묘는 3단계에 접어들면서부터 약간은 난해했다. 소묘 과정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처음 접한 아내는 그때마다 "못할 거 같아"라며 고개를 저었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정말이지 대략 난감했다.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루이지는 그때마다 아내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는 "지금까지 잘 해왔기 때문에 3단계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말했다. 루이지가 옳았다. 루이지는 그때부터 우리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잘못된 부분을 정정하며 진행했다. 소묘 대상을 "그냥 베끼지 말고 그리는 법을 이해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가 가르치는 소묘는 피렌체의 예술학교의 소묘 과정을 그대로 따라 하는 과정으로, 대략 3년에서 5년 정도의 수업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내는 나이를 계산해 봤다. 3년에서 5년 동안 소묘를 계속해야 한다면.. 때려치워야 할까..ㅜ) 그는 이미 20년의 세월 동안 그림을 그려온 베테랑이지만, 아내는 기껏 해봤자 한국화단에서 배운 그림 실력이 전부였다. 그동안 잃어버린 세월만도 대략 15년.. 작품 전시회를 통해 작가로 등단해 봤자 결과는 하자 투성이었다. 아내가 바를레타로 온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루이지는 아내가 난감하며 절망의 표정을 보일 때마다 "기초과정이 소홀하면 사상루각"이라며 "천천히 과정을 밟아가면 된다"라고 말했다. 천천히 가는 세월이 3년 혹은 5년이라던 그 말을 잠시 잊고 산지 한 달만에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이다. 이틀 전 다시 4단계 소묘 과정이 시작되면서 아내는 비로소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곁에서 지켜본 아내의 손놀림은 물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다이빙을 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내는 "3년이 아니라 5년이라도 좋아. 죽을 때까지 그릴 거야"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루이지와 함께 보낸 지난 한 달이 선물한 자신감 때문이며, 소묘 과정 3단계가 끝나면서 아내의 표정이 달라진 것이다. 3단계에 그린 작품의 표정도 완벽했지만 새로운 도전이 나타날 때마다 용기를 내는 아내가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재래시장으로 향하는 아내의 뒷모습이 말괄량이의 걸음걸이처럼 가벼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동안 루이지의 지도는 세심하고 탁월했다. 멀리 한국에서 온 늦깎이 학생에게 당신만의 철학과 기법을 전수해 준 것이다. 나이는 한참 어린 아들 벌이지만 그의 그림 그리기 철학은 도통한 어른을 닮았다. 아내는 그의 철학을 존중하고 좋아했다. 그리고 아이들처럼 말 잘 듣는 학생으로 한 달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대략 한 달 후.. 3단계에 등장한 얼굴이 완전한 형체를 드러내면서 아내의 얼굴에 잠시 드리워졌던 그림자까지 사라졌다. 앞으로 전개될 4단계는 시작부터 달랐다. 미션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는 검투사처럼 눈이 번득이며 자신감이 넘친다. 그동안 잘 참고 견뎌낸 아내에게 감사한다. 아울러 루이지에게 감사한다. 이제 겨우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다.


LA SFIDA DI MIA MOGLIE_Studio LUIGI LANOTTE  
il 28 Giugn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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