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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20. 2020

이탈리아, 여기서 한 달만 살고 싶어

#9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가 궁금했다

우리 혹은 나만 몰랐던 이탈리아의 꼭꼭 숨겨진 명소..!!



   그 언덕 위에 올라서자마자 눈이 화들짝 놀라는 풍경..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이탈리아에 이런 곳도 있었네.. 싶은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우리가 피렌체서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우리가 이탈리아에 둥지를 틀 목적으로 삼은 도시는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였다. 그곳은 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였던 것이다. 르네상스를 수놓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행복했다. 행복했었다. 



지구별의 문화예술을 통째로 박재해둔 나라와 도시에서 여생을 보낸다면 살아온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일편단심 이탈리아행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던 것이다. 운명은 우리 편이었다.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끝낸 즉시 차근차근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한 어느 날.. 


하니와 나는 한남동에 위치한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마침내 이탈리아행 비자를 발급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두 차례나 이탈리아를 오고 갔다.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만드느라 그 먼길을 오갔던 것. 그리고 우리는 이탈리아를 통째로 손안에 넣은 듯 기뻐하며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래는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가 궁금했다 연재 포스트

#1 이탈리아, 장화 뒤축이 궁금했다
#2 한 달만 살고 싶은 꼭꼭 숨겨진 명소
#3 국민생선 고등어 밀당 기술 이랬다
#4 하니가 찍어준 인증숏
#5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 가는 길
#6 못 보고 죽으면 억울할 뻔
#7 메두사의 마법과 아드리아해
#8 그 솔밭에 가면 행복해진다
#9 이탈리아, 여기서 한 달만 살고 싶어



이탈리아, 여기서 한 달만 살고 싶어




이때부터 피렌체는 우리에게 너무 좁은 도시였다. 골목골목 미켈란젤로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날새는 줄 몰랐다. 아르노강을 몇 번이나 넘나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피렌체에 푹 빠져 살았다. 우피치 미술관과 피티 미술관은 물론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상이 있는 갈레리아 델라 아까데미아(Galleria dell'Accademia)를 둘러보며 문화예술의 허기와 갈증을 대부분 털어내기도 했다. 


우리는 말끝마다 피렌체로 오길 잘했다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그리고 가까운 토스카나 주의 명소를 찾아다녔다. 꿈만 같았다. 그러나 무엇이든 무슨 일이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랄까. 피렌체서 사는 동안 우리는 점점 관광객이 붐비는 도시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르노 강가로 산책을 떠나는가 하면,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 피에솔레를 둘러보기도 했다. 피렌체의 정체성이 우리 앞에 대부분 발가벗긴 다음이었다. 그때 만난 예술가가 하니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 라노떼(Luigi lanotte)였다. 


그는 삐앗싸 데이 치옴피(Piazza dei Ciompi)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려둔 그림은 관광객들이 구입해 갔다. 우리가 그를 만난 건 그곳에서 가까운 피렌체의 재래시장 산타 암부로지오(Mercato di Sant’Ambrogio)로 가던 길이었다. 하니의 눈높이에 걸맞은 그림이 그로부터 발현된 것이다. 



그리고 하니의 즉각적인 제안이 이루어졌다. 하니는 "당신의 화풍을 따라 배울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는 즉시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고향 바를레타에서 수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초 하니는 한국으로 일시 귀국을 했고 그림 수업 준비를 위해 나는 바를레타로 루이지와 함께 내려와 집을 구했다, 그 일이 지난 9일 기준 1주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하니는 금년 초 2월 23일, 대한민국을 힘들게 만들던 코로니 비루스로부터 탈출(?)해 바를레타로 오게 됐다. 그런데 웬걸.. 이탈리아에서는 하니의 입국일로부터 머지않은 시간에 비루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도둑을 피하니 강도를 만난 격이랄까.. 



이때부터 우리는 적지 않은 갈등에 시달려야 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비루스의 표적이 된다면 공든 탑이 무너질 게 틀림없었으므로 여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니를 한국으로 다시 보내고 싶었지만 특별 항공편에 편승할 수도 없었다. 이탈리아의 모든 교통이 통제되고 있던 터였다. 


이때부터 세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방콕을 하며 대략 두 달여를 자가격리당하며 호시탐탐 외출을 노렸다. 그 시간은 마치 수년을 기다린 것처럼 오랜 세월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을 피해 바닷가 언덕 위로 바람을 쇠러 나갔는데 그곳에서 아드리아해 수평선 너머로 늘 바라보이던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그곳은 이탈리아의 지도를 장화에 비교할 때 뒤꿈치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르가노 국립공원이 위치한 곳이었다. 이때부터 하니와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곳에 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때였지만 비루스 사태가 계속되면 엄두도 내지 못할 곳이자, 비록 가깝긴 하다고 하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할만한 곳이 못됐다. 그럴수록 궁금증은 더해 집으로 돌아오면 구글어스를 펴놓고 그곳 지형을 살피곤 했다. 그때가 대략 지난 5월 초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다시 꿈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자동차 구입에 나섰다. 이 매장 저곳을 다니며 우리 형편에 적합한 자동차를 물색한 끝에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애마를 구입한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가 궁금했다'가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7월 6일 오후 스피아지아 디 까스뗄로(Spiaggia di Castello)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눈이 휘동그래지는 것이다. 지구별의 수많은 해변과 백사장과 해수욕장 등을 평생 눈팅해 온 나의 눈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둔 아름다운 장소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시련을 요구하며 마침내 속살을 드러내 보인 것이랄까. 


언덕 위에 잠시 주차를 해 놓고 아드리아해와 백사장을 굽어보니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전혀 새로운 도시 새로운 세상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바닷가 저 멀리 하얀 성처럼 보이는 곳이 가르가노 국립공원의 끄트머리이자 우리가 말하는 장화 뒤꿈치 끄트머리였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 도시의 이름이 뷔에스떼..!! 우리 혹은 나만 몰랐던 이탈리아의 꼭꼭 숨겨진 명소가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니는 이곳에서 딱 한 달만 살고 싶어 했다. 만약 하니의 그림 수업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짐을 꾸리거나 잠시 머물 공간을 찾아 나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드리아해를 향해 꿈을 꾸는 도시.. 아무도 모르게 꿈을 꾸며 살아온 도시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해님과 달님이 번갈아가며 비추는 알록달록한 빛 아래서 동화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하니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게 틀림없다. <계속>



Il Nostro Viaggio_Spiaggia di Castello, Vieste
il 19 Lugl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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