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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26. 2023

안될 줄 알면서도

마흔의 욕구

수레국화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분명 본 건 푸른색 꽃잎의 그 꽃이었다. 언덕길에  버스가 느리게 움직이자 초록으로 덮인 언덕 위에 푸른 점처럼 수레국화 무리가 보였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눈에 담는 것도 순간이었다.  멀어지는 꽃밭을 보려고 고개를 끝까지 돌렸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달리는 버스 차창너머 아카시나무 무리를 보았다.

나무에 치렁치렁 핀 꽃들은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 듯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이미 충분하게 소진한 몸을 한 나처럼  나무도 꽃을 툭 떨구고 싶어 하는 듯했다.


무거운 겉옷을 벗어던지고 홀가분한 차림이 좋은 요즘이다.

축 쳐진 꽃송이를 달고 있는 나무를 보며 버릴 때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대를 걸었던 시간도 지고 있는 꽃잎처럼 빛을 잃었고, 흥분했던 순간도 어느덧 른 기대로 옮겨간다. 시도를 할수록 실패도 그만큼 겪고 있다.

 마흔이 넘었다고 가점이 있거나, 특권도 없었다.


'그래 안될 줄 알았어.'



수레국화를 다시 보니 반가웠지만, 또 수레국화 뒤로 숨고 싶었다. 몇 해전 중랑천 빈공터에 푸르게 넘실거렸던 수레국화꽃밭을 참 사랑했다. 야생의 들판에서 만난 작은 정원을 내내 잊지 못한다.


꼬박 3년 나는 똑같은 꽃밭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가꾸지도 않는데, 봄에 태어난 내 아이들처럼 수레국화는 매년 봄 비슷한 풍경이었다. 연인을 만나러 가듯 꽃밭을 찾아가는 은 하나도 지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나는 마흔 살이 되었다.



 수레국화처럼 매년 다르지만 똑같은 일들을 해왔다.

꽃밭에 깊이 숨어 들어가 진실된 삶이 무엇인지, 매일 같은 옷을 입 똑같은 날처럼 지내면서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숨고 싶은 걸까?'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잊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수레국화 꽃밭에서 다짐한 건 마흔의 시작한 홀로서기였.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싶었다.


마흔의 시작은 걸음마를 막 시작해서 이리저리 발을 끌고 걸어가는 아이 같았다.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하는 것마다 실수투성이 같은 나를 거울로 마주 보듯 매일 만나야 했다.



 또 수레국화꽃밭이다.

수레국화가 필 무렵 꽃은 어디서든 날 기다렸다는 나타났다. 올해도 금방 세수한 듯 막피어난 깨끗한 꽃을 또 만났다. 꽃을 보니 한 해 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할 말이 많았다.

 

 무엇이든 기회가 있다면 달려들었던 수십 년 전과 마흔을 훌쩍 넘긴 내 일상이 무척 닮아 있었다. 아직도 못다 한 것들이 노트에 쓰여 있고, 어디선가 날 기다리는 것만 같다.


스물두 살 나를 떠올릴 만큼, 마흔의 나도 그랬다.

하지만 상황이 똑같지는 않았다. 나이는 두 배 많아졌는데, 예전에 해봤다는 경험들은 능숙함이 되지는 못했다. 세상과 단절되어 사라진 과거를 되살릴 수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은 있었다.


 

2023.05.26



 지난주 원고 투고를 몇 군데 더 보내고 오늘은 두통의 거절 메일을 받았다. 지역 봉사 기자 신청을 했는데 탈락했.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하다 보니 은 바쁜데 머릿속은 헐렁하게 여유가 생겼다. 편두통이 사라졌고 잠을 푹 자니 몸이 더 가벼워졌다.


  인세를 받고 싶었던 통장엔 여러 가지 항목으로 입금이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해서 배너 광고 수익이 생겼고, 글을 쓰고 원고비를 받다. 바코드 찍어 상품 진열을 하는 일은 단순했지만 할 만했다. 마흔의 호기심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무언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기대했던 글이 아니어서 부끄럽다.   

 마흔을 멋지게 글로 남기고 싶었다. 마흔의 욕구를 글로 다 쓸 수 있을 거라고 나 자신에게 허세를 부렸나 보다.

 대신 그동안에 마흔의 욕구들 이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어떤 것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실패도 실수도 하면서 살아보자는 기분이 들었다.

 수레국화 꽃밭에 숨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며 꽃이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글 발행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브런치 스토리에서 독촉 알람이 울렸다.


 브런치 글쓰기는 마흔의 욕구 꺼내놓게 했다. 그렇지만 좋은 것만 내세울만한 것들로미려고 했는지 부작용이 생겼다. 글이 늘어갈수록  내 것이 아닌 것들로 날 치장해서 인지 점점 어색해지고 불편해졌다.   


글을 쓰다 보니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 선명해졌다. 생 글을 쓰고 살고 싶었는데, 글만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을 먹으니 훨씬 자유로워진 듯싶다.

 

언뜻 보면 너무 변해버린 일상처럼 보였지만, 내 안에서 자라고 있던 '무언가'는 무탈하게 천천히 착실하게 크고 있다고 믿는다. 내년 수레국화가 필 무렵이 되면 나는 또 얼마나 변해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 것이 안될 줄 알면서도 살아보고 싶어졌다. 거절당하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체념하는 일도 섭섭하지 않았다. 


실패를 해도 계속 그렇게 내 안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 내 쓰임을 찾는 일은 마흔이 되어도 변함 없이 간절했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마흔의 욕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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