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버티고 있는 너에게

표지판 3

by 무쌍

작별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할 일은 다하셨나요?


첫날은 너무 반가워 보고 만 있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한송이가 어느덧

양 팔로 감싸도 모자라게 채우고도

머리끝까지 올라 붉어지는 젊음


홍매화 꽃잎을 다 들추느라

말을 너무 걸었나 봅니다


작별인사는 미리 해야겠지요

곧 떠날 것 같아서요


어떻게 해도

당신은 내 품을 떠나겠지만

저는 기다리는 일을 아주 잘한답니다



분홍색은 바로 홍매화색인 싶다.

홍매화보다 좀 부드럽고 흰색이 더 섞인 분홍 풀또기가 있지만, 붉은 끼가 더 있는 홍매화가 꽃 분홍색이라고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방금 전까지 내 품에서 엉엉 울다가 울긋불긋 해진 얼굴로 '엄마, 죄송해요.'라고 하는 아이 얼굴 같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진정이 된 아이는 과묵한 엄마를 금방 용서해 준다. 아이가 웃으면 나도 미끄러지듯 두 팔로 품에 안는다. 뜨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이마를 쓸어 넘기며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아이가 처음 내게 온 날, 처음 핀 꽃송이처럼 건강하고 설레는 꽃분홍색의 얼굴은 나를 부끄럽게 했었다. 내가 품고 있었을 뿐 혼자 힘으로 피어난 꽃이었으니까.


봄바람을 넣어 통통해진 홍매화를 보니 아이의 얼굴이 더욱 생각났다. 홍매화가 차분하게 지은 책을 선보이는데 모른 척 하기가 미안했다.


한동안 꽃을 보러 온 꿀벌들로 소란했는데 웬일로 조용했다. 빛바랜 꽃잎은 모든 페이지를 펼쳐 읽은 책처럼 세월의 흔적들로 흐릿한 걸 보니 독자들은 벌써 다녀갔나 보다.

떠난 독자들은 또 어떤 꽃이 지은 책을 읽고 있을까?


계절이 바뀐 바깥도 치열하긴 마찬가지인 듯싶다.


가족들이 잠드는 시간이 되길 기다리다, 그냥 잠들었다. 글을 쓰기엔 밤이 좋아 보였는데 아침 태양을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조바심이 또 찾아와 나를 떠밀면 가출 밖에 답이 없다. 다 늙어 가출이란 표현이 그렇지만,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설 땐 분명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냉정해진다.


틱낫한 스님은 고통이 있는 곳이 내 자리라고 하셨지만 나는 수행보다 꽃들이 더 좋다. 벌써 시드는 꽃들을 보니 작별이 아쉬워 혼자 나온 산책로가 외로워졌다.


꽃 사진을 잔뜩 찍고 나니 집에 있는 아이와 남편 생각이 났다. 봄이 아니었다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내가 없는 집안은 찰처럼 고요했을 텐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소리로 아이들을 불렀다.


아직은 내 곁에 있는, 곧 떠날 시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keyword
이전 20화용감한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