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화보다 좀 부드럽고 흰색이 더 섞인 분홍풀또기가 있지만, 붉은 끼가 더 있는 홍매화가 꽃 분홍색이라고 나만의결론을 내렸다. 방금 전까지 내 품에서 엉엉 울다가 울긋불긋 해진 얼굴로 '엄마, 죄송해요.'라고 하는 아이 얼굴 같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진정이 된 아이는 과묵한 엄마를 금방 용서해 준다. 아이가 웃으면 나도 미끄러지듯 두 팔로 품에 안는다. 뜨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이마를 쓸어 넘기며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아이가 처음 내게 온 날, 처음 핀 꽃송이처럼 건강하고 설레는 꽃분홍색의 얼굴은 나를 부끄럽게 했었다. 내가 품고 있었을 뿐 혼자 힘으로 피어난 꽃이었으니까.
봄바람을 넣어 통통해진 홍매화를 보니 아이의 얼굴이 더욱 생각났다. 홍매화가 차분하게 지은 책을 선보이는데모른 척 하기가 미안했다.
한동안 꽃을 보러 온 꿀벌들로 소란했는데 웬일로 조용했다. 빛바랜 꽃잎은 모든 페이지를 펼쳐읽은 책처럼 세월의 흔적들로 흐릿한 걸 보니 독자들은 벌써 다녀갔나 보다.
떠난 독자들은 또 어떤 꽃이 지은 책을 읽고 있을까?
계절이 바뀐 바깥도 치열하긴 마찬가지인 듯싶다.
가족들이 잠드는 시간이 되길 기다리다, 그냥 잠들었다. 글을 쓰기엔 밤이 좋아 보였는데 아침 태양을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조바심이 또 찾아와 나를 떠밀면 가출 밖에 답이 없다. 다 늙어 가출이란 표현이 그렇지만,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설 땐 분명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냉정해진다.
틱낫한 스님은 고통이 있는 곳이 내 자리라고 하셨지만 나는 수행보다 꽃들이 더 좋다. 벌써 시드는 꽃들을 보니작별이 아쉬워 혼자 나온 산책로가 외로워졌다.
꽃 사진을 잔뜩 찍고 나니 집에 있는 아이와 남편 생각이 났다. 봄이 아니었다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내가 없는 집안은 사찰처럼 고요했을 텐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