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Jul 18. 2024

조바심이 많은 너에게

표지판 5

전농로 벚꽃


도1동 전농로 000-00번지

스무 살의 빨간 철문이 열린다

아무도 내 얼굴을 보지 않는다

집 밖은 이불속만큼이나 편안해



집으로 돌아가기 싫

뜻대로 되지 않던 시절

결국 봄바람이 부추긴 가출은 실패했다

벚꽃 할머니가 꼬박 밤을 새우며 나를 달



도 1동 전농로

스무 해가 지난 벚꽃이 핀다

왕벚나무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집 앞 풍경은 스무 해 전과 똑같아


주인을 잃어버린 집

가방 하나에 인생을 담았어

벚나무가 붉은 잎 경고장을 내밀기 전에 떠났지

그리고 겨울 눈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 말았


 

  

벚꽃의 계절, 제주의 전농로에 살던 나는 매년 벚보았다. 스무 해 넘게 전농로의 벚꽃은 앞마당에 핀 동백꽃만큼이나 익숙했다.


 집 앞 도로는 파도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한 방향으로 움직이다 갑자기 반대로 휙 하고 돌아서며 내 하굣길을 막았다. 버스 정류장을 전에 내려가기는 멀었고, 다른 노선도 없었으니 책가방을 꼭 끓어 앉은 채 꼼짝없이 인간 파도타기를 해야 했다.   


 봄 과속을 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피어난 꽃들을 쫒느라 내 몸에도 피곤이 밀려왔다. 

 다리는 봄비는 오지 않았지만, 기온은 뚝 떨어졌다. 자연은 알아서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냉장고처럼 차가운 공기를 만들어 버렸다. 추월하던 모든 들을 삽시간에 멈춰 놓았다. 아직도 매화꽃잎이 다 떨어지지 않았는데, 황매화꽃이 피고 벚꽃은 만개했다.  


 당장이라도 일이 벌어질 듯했다. 가만히 있으면 기회는 모두 지나가 버릴 듯 조바심을 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찬바람이 내게도 말을 건다.


"너무 애쓰지도 지치지도 말아요.
다른 걸 찾으면 되니까요. "


 쩌면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나만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기다리던 회사에서 면접결과 안내 문자가 왔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는 출근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장소에 가보지 않으면 무슨 꽃이 피었는지 알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비록 헛걸음하게  되어도 가는 동안 가슴은 벅차오를 테니...  조바심 많은 나는 이 방법이 가장 생산적이었다.  

도시에서도 꽃을 보고  싶으면  꽃은 어디서나 피어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