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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ug 01. 2024

봄을 두고 온 너에게

표지판 7

한 송이 제비꽃 눈송이


생각이 바뀌었어

너를 찾아 나설 채비를 했지

분명히 너의 얼굴을 기억해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기억나지 않았어.


한 송이 제비꽃

너를 찾아 길을 헤맸지

분명히 눈이 내렸어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은 11월 28일

어제 보름달이 떴는데

너도 그 달은 보았는지  묻고 싶었단다.


달이 보내는 신호를 받았는지 말이야.


밝은 달이 환하게 촛불처럼 켜졌어

내 안의 그림자가 사라졌지

촛불 아래에서 내게 필요한 문장들을 쓰기로 했단다.


오래된 이야기는 그만두고 일기를 썼어

한 송이 제비꽃이 하얀 눈송이를 만난 날!

 


2023.11.28(11월 제비꽃)





 제비꽃은 아직 피어 있었지만, 얼어버린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시들해진 이파리들 사이로 작은 꽃은 작은 촛불처럼 켜진 채로 나를 기다려주었다. 겨울은 예정대로 흘러갈 테고, 야생은 이제 봄을 준비하러 떠날 것이다.  


 약속을 잘 지키는  목련나무는 낙엽을 대롱대롱 단 채로 겨울 눈이 피었다. 보송한 털옷을 입은 겨울 눈을 보니 새봄에 필 목련꽃이 벌써 궁금해졌다.


집을 나설 때는 몰랐다. 눈예보가 있었다는 걸 이다.


맞은편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엄마가 눈이 내린다며 눈송이를 잡는다. 뭔가 날리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너무 작아서 먼지 같은 눈송이를 찾아보려고 나도 가만히 섰다. 아이는 엄마처럼 눈송이를 보지 못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좀 더 기다리면 하얗게 내릴 듯도 했지만 눈은 가루처럼 날리다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갈 곳이 있었다. 어제 아침 산책길에 보았던 제비꽃을 만나러 가야 했다. 양지바른 곳은 아니었지만 제비꽃 한송이를 연달아 만났다. 화단 깊숙한 곳에서 한 송이, 낙엽더미 아래서 한 송이였다.

 

11월의 제비꽃은 귀하다 못해 신기할 정도다.

가을날이 끝난 11월 말에 만난 지금의 제비꽃은 겨울 제비꽃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 가느다란 선들이 무늬로 새겨진 보라색 꽃잎은 완벽하게 펼쳐진 채로 꽃은 피어있었다.


봄을 두고 온 마음을 도시의 야생화 지도로 표지판 8개로 남겨두었다. 다시 여름과 가을 사이 야생화지도를 그리는 상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년시절부터 치유되지 않은 아이를 위한 봄의 야생화 지도를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베란다 텃밭에 심어둔 씨앗들이 하룻밤에 쑥 키가 더 자랐다. 떡잎도 크고 넓적하니 존재감이 느껴졌다.

초록의 식물은 태양이 키우는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어둠이 없인 단단한 성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자라온 환경이 컴컴한 어둠뿐이라 허탈했는데, 내가 심어진 곳은 흙속이었다는 걸.

그 안에서 매일 태양이 떠오르는 걸 믿으면서 잎을 펼치고 줄기를 뻗어올갈 준비를 했던 것이라고 말이다.

단단히 뿌리를 내린 나무가 된다면 지난날 폭풍가 지나갔었다고 웃으며 추억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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