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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ug 08. 2024

다시 너에게

상사화

  

길고 긴 이야기를 끝을 내려고 했다. 매번 피는 계절 꽃처럼 새꽃이 피면 그만이니까. 다른 계절이 오 새롭게 쓰면 되니까 미루고만 싶었다.


 무슨 짓을 해도 되지 않으면 그대로 두고 다른 일을 찾았다. 글을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몇 번의 봄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누군가는 스승님이 있는 편이 좋겠다고 했지만, 또 누군가는 잘하고 있다고 부추겨 주었지만 금방 시들해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아무런 대가도 구하지 않을 때있었다. 기대가 생기고 결과를 바라자 모든 것은 달라졌다. 동안 쓰기와 멀어져서 월급 통장에 열을 올리며 지냈다. 봄야생화를 쫒던 시선도 지난 계절이 되었고, 이글 거리는 여름 태양을 맛보기처럼 출퇴근 길에 겪고 나면 도시의 빌딩 숲은 언제나 에어컨 바람이 반겨주었다. 러다가도 문득 공허함은 찾아왔다. 뭐라도 쓰면 좋겠는데...

 

 


한눈에 봐도 꽃이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양지바른 곳, 지하철입구는 내리쬐는 볕을 피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주 익숙한 화단인데 꽃을 본 기억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서둘러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지 않고 꽃과 시선을 맞추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확인했다. 망설인 듯했지만 겨우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8월이구나


 이맘 때면 깜짝 놀라게 하는 이 있다. 꽃의 영문 이름도 매직 릴리(Magic Lily)다. 을 피우는 모습이 깜짝쇼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예고도 없이 땅 위로 갑자기 꽃대가 쑥 올라온다. 여름의 마지막 손님처럼 불쑥 찾아와 사한 꽃다발 었다. 더위가 지칠 듯하는 8월 가을은 달려오고 있었다.


상사화 @songyiflower인스타그램

 잎도 없이 꽃만 피는 상사화는 연한 분홍색 꽃잎은 시들면서 연보라색이 된다. 꽃이 점점 보랏빛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려고, 꽃이 다 질 때까지 그 앞을 서성이곤 했다.

은 백합을 닮기도 했지만 백합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연약해 보인다. 은은한 분홍잎은 분홍낮달맞이처럼 순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바깥으로 말린 꽃 모양과 꽃술은 은근히 폼을 내는 듯 매력이 많은 꽃이다. 


보통은  여러 개의 줄기가 뭉쳐 핀 모습을 보통 볼 수 있다. 모두 꽃대만 내밀고 피어선지 누가 꺾은 꽃을 땅에 다시 꽂아놓은 듯 신기다.  내 눈엔 그대로 화병에 꽂아 두 편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슬아슬 줄기가 꺾기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꽃은 선화처럼 구근을 가진 여러해살이로 핀 자리 다시 돋아나니, 매년 8월 꽃이 핀 장소를 기억하면 꽃을 볼 수 있지만 건너뛰는 해도 있으니,  상화 찾기 보물 찾기가 된 듯했다. 상하지 못한 곳에서도 알고 있던 장소에서도 꽃은 나를 놀라게 했다.



 8월 8일, 바쁜 출근길이었지만 긴 꽃술을 내밀고 나타나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꽃이 싫지가 않았다. 나무 아래 숨었다가 까르르 웃는 모습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입술을 꼭 다문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찾아온 명랑한 친구를 당분간 같이 지내기로 했다. 도시의 야생화지도는 새로운 계절이 되었다.  다시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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