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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ug 22. 2024

엄마가 된 너에게

나팔꽃


 소낙비가 반가운 날이었다. 나팔꽃이 춤을 추듯 흔들거려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꽃을 찍다. 비가 와도 태양이 뜨거워도 나의 사진 찍기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팔꽃은 매일 아침 새로운 꽃이 핀다. 집 근처 화단에 테두리를 하얗게 두른 플레어스커트처럼 통이 넓은 나팔꽃이 피었다. 진한 분홍색도 곱지만 큰 꽃이라 더 눈길이 갔다. 매일 손질해 주는 손이 있어서 인지 흠잡을 때가 없는 나팔꽃 덩굴이었다.


 나팔꽃(모닝글로리)@songyiflower

 매일 같은 시간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작하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난 그릇들을 설거지통에 몽땅 넣어두고 앉았다. 설거지가 신경이 쓰여 벼락치기하듯 끝내니 머뭇거리다가 쓰지 못한 말들은 접시에 뭍은 음식찌꺼기처럼 티끌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후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방금 설거지를 한 접시에 음식을 새로 만들어 담아내듯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거슬러 올라갔다. 큰 기대를 걸었던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오히려 단념이 쉽다. 그런데 작은 일에 실망하고 꼬리를 물고 종일 여운처럼 남았다. 아이들에게 늘 '실망하지 마'라고 말하는 엄마지만 내가 더 실망하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나팔꽃이 더 생각이 났다.

폭우가 쏟아지기 전 다시 보러 가려고 길을 나섰다. 어디서든 나팔꽃을 마주치면 일단 멈추고 웃게 된다. 오래 머물러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매일 새로운 꽃이 피긴 하지만 오전 반나절이면 접은 우산처럼 시들어 버린다.

 다행히 나팔꽃은 비속에서도 웃고 있다. 꽃을 보니 고단함이 어디론지 사라졌다. 혹시 실망한 기분 때문에 지금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못 본건 아닐까? 꽃은 잠시 후면 떠난다고 수선을 떨며 보러 왔는데 말이다. 아이들을 보듯 꽃을 볼 수가 없었다. 꽃 속엔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던 이기적인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흠잡을 때 없는 꽃을 보며 알게 되었다. 아이가 뭘 잘해서 엄마의 기대를 맞춰 준다고 존재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나팔꽃처럼 아이들의 존재감은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꽃이 주어진 대로 자기 색으로 피듯 아이들도 그렇게 자랄 것이다. 꽃을 키우는 정원 주인의 마음처럼 아이들도 자신이 타고 난 대로 커가길 바란다.


 아이들이 아직 꽃봉오리도 만들기 전인데 엄마가 너무 앞서 갔나 보다. 나팔꽃 덩굴엔 곧 피어날 꽃 봉오리들이 대롱대롱 커가고 있었다. 왠지 꽃이 하는 말은 진심인 듯싶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기쁜 소식이 이제 막 출발했다고 하네요.



 해가 짧은 여름엔 나팔꽃도 서둘러 피기 때문에 새벽 산책을 나서야 갓 피어난 나팔꽃을 볼 수 있다. 곱게 핀 꽃을 보려면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했다. 더 정확하게 새벽형이라고 해야 맞겠다.


 전날 오후에 생긴 꽃봉오리가 밤사이 열리며 새벽 5시면 피어 있으니 새벽첫차처럼 날 기다리는 듯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듯 하룻밤 자고 일어난 나에게 새 출발을 응원하는 꽃이기도 다.


 메꽃과의 나팔 모양의 꽃들은 시간을 못 맞추면 곱게 펼친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나마 나팔꽃과 비슷하게 생긴 분홍 메꽃은 오후에도 피어있지만 대부분 오전에 꽃은 오므라들며 시들어간다.


 아이들 등굣길에 활짝 피었던 나팔꽃은 학교 앞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벌써 시들해졌다. 오전에 장을 본 날은 이미 일과가 끝난 듯 돌돌 감겨버린 꽃잎을 보며 실망하기도 했다. 덩굴장미처럼 활짝 핀 꽃장식을 보는 건 아주 잠깐이다. 금방 시들어 버리니 새침에 보이지만 매일 새로운 꽃을 피우는 근면함은 대단해 닮고 싶었다.


꽃이 지면 방울처럼 생긴 꼬투리가 생기는데, 동글동글 잘 여문 씨앗은 가을이 가까울수록 더 많아졌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나팔꽃 씨앗 수집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어떤 분은 정도가 심해 잘 익고 바싹 마른 꼬투리를 보면 손이 저절로 간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나 역시도 예쁜 색 나팔꽃을 보면 가을이 끝나기 전 남은 꼬투리가 있는지 기웃거리게 되었다.

  

나팔꽃이 피는 곳은 그다지 깨끗한 공간은 아니다. 길가에 공터처럼 버려진 곳, 쓰레기 투기가 빈번한 빈 땅, 손보는 사람 없이 아무렇게 자라는 나무를 타고 자란다. 전깃줄을 사이에 두고 커튼처럼 늘어진 모습과 본 적도 있다. 덩굴 식물은 손에 닿지 않은 높은 곳까지 곡예를 부리니 구경하는 것 만으로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한꺼번에 꽃이 많이 피면 그 모습이 매력적이라 감탄하지만, 다년생 덩굴장미나 클레마티스처럼 우아한 덩굴식물 취급은 받지 못하는 듯싶다. 내키는 대로 덩굴을 올리는 나팔꽃은 잡초처럼 뽑히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서 더욱 나팔꽃은 사람 손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깊숙이 숨으며 살아남는지도 모르겠다. 휴가도 없는 도시의 여름이 피곤해 보였지만, 나팔꽃은 사람들의 관심을 피해 매일 새로운 꽃장식을 선보였다.



 

 아침 해가  비추면 밖으로 나갈 궁리를 했다. 그곳엔 슬픔도 사랑도 무관심하게 만들어 버리는 꽃이 있다. 무수히 많은 점들로만 촘촘하게 그려진 그림처럼 초점을 잃은 채 한없이 바라보게 했다. 꽃이 풍기는 세밀한 풍경이 내 취향에 딱 맞았는지 이리저리 떠오르는 감정들도 낄 자리가 없다. 넋을 보고 있는 내가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 감이 한꺼번에 쏟아져 어지럽게 할 때마다 꺼내 보려고 꽃 사진을 찍었다. 처음엔 나 혼자였지만 곧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생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누구나 지나는 길 위에 꽃밭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보통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야생화는 약속한 듯 다시 만나는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 삶에 잠시 나타나 나를 일깨우며 삶의 목적지가 어딘지 알려주려고 말이다. 혼자만 알고 싶은 야생화 꽃밭을 매일 찾아간다. 그곳엔 나만 아는 감정들이 꽃처럼 피어난  나만 아는 곳이다.




 아무 일 없다가 갑자기 과거가 나를 괴롭혔다.

여자아이에게 소리를 지는 엄마를 길 위에서 만났는데, 그 눈초리가 무섭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제인 에어를 무척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 외숙모와 지내는 장면은 읽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부모님과 가족들 일엔  한없이 맹목적으로  나섰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 아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다 말고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심부름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대신 부모님의 일을 거들었다. 내가 필요한 것들, 요구할 것들을 무시해야 부모님이 싸우지 않고 저녁에 잠수 있었다.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내 머릿속엔 여전히 목소리가 떠다닌다. 잊고 있다가도 누군가의 한마디에 강한 돌풍이 부는 소낙비가 쏟아졌다.


 날씨처럼 나의 감정은 화창한 날도 있지만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 몰아쳐 며칠씩 비에 젖어 지냈다. 그런데 꽃 한 송이의 위로는 매일 아침 나를 새롭게 해 주었다. 모든 것은 지난 일이라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며 다 잊어버리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색색이 나팔꽃을 보느라 새벽형 인간으로 지낸 여름은 이제 곧 끝이 날 듯하다.

가을이 다가올수록 나팔꽃의 수명은 길어지고 있다. 점심때가 되어도 싱싱한 얼굴 그대로 있더니, 은행열매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턴 오후까지 똑같은 얼굴이다. 요즘은 해가 진 저녁에도 그대로 핀 나팔꽃들이 눈에 띌 것이다. 팔꽃은 서둘러 떠나지 않고 나에게 천천히 숨을 돌리라며 성미 급한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계절에 맞게 시간을 늦추는 꽃을 보면서 몰아치던 감정들도 차근차근 글이 되어 간다.


 야마오 산세이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또 읽었다.

그가 쓴 나팔꽃 이야기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침은 이렇게 나팔꽃 수를 세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피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나는 마치 내가 피어나는 것처럼 분발했다.
자기 안이나 바깥을 불문하고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을 천국에만 가둬 둘 필요는 없다. 신은 삼라만상으로서 하늘 구석에도 있지만 이 지상에도 가득 차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바라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존재다.

매일 아침 골짜기 물을 끌어오는 수도에 얼굴을 씻고 그 뒤로 오늘은 몇 송이나 피었나 송이 수를 에며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바라보는 일이 이 여름의 조촐한 나의 기쁨이다. 오늘은 서른아홉 개- 오늘은 마흔다섯 개라고 세어간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다만 나팔꽃이 피었을 뿐인데 중에서

 

 올여름은 새벽산책을 자주 나가지 못했다. 아침 출근시간을 맞춰야 하는 직장인이라 쉽게 나서질 못했다.

대신에 야마오 산세이를 따라 한다. 올해도 베란다 정원에 나팔꽃을 화분마다 심어서 꽃을 보고 있다. 오늘 아침도 나팔꽃 수를 세는 일로 하루를 열었다. 아파트 베란다는 그가 살던 마당집과는 달라서  꽃은 단출했다. 스물한 송이가 핀 날이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아침이었다. 나의 집에도 신의 숨결로 피어난 나팔꽃이 있다. 선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행복한 고요하고, 영원히, 진실한 남편과 아이들 말이다.


매일 딴생각으로 한눈을 팔았는데, 오늘 아침 홉 송이의 나팔꽃이 알려주었다. 날마다 오늘이 최고의 날인 것을 왜 몰랐을까. 내가 머무는 집은 가장 환하고 따뜻한 공간인데 말이다.  늘 집 밖에 행복이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이 싫어서 도망가고 싶은 어린아이는 이제 다 자라서 엄마가 되었다.

도시의 야생화 지도는 집 밖이 아닌 집안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된 나는 올여름도 나팔꽃을 키우며 만끽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충만함과 삶의 감사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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