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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ug 15. 2024

시간이 필요한 너에게

루드베키아

 전화를 받지 못했다.

 잠깐 일에 집중하느라 깜빡이는 휴대폰 화면을 놓쳤다.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해두면 놀라는 일이 많아서 직장에서는 무음으로 해두고 모니터 바로 아래 세워둔다. 사실은 평소에도 나는 오는 전화를 잘 받지 못했다. 수차례 부재중 전화를 놓친 후에 받고 나면 전화 너머 쏟아지는 원성을 듣는 일이 허다했다.  


 늘 타이밍을 못 맞추는 아내고, 엄마가 되었다.  필요할 때는 없고, 꼭 일이 다 끝나면 나타난다고 말이다. 그게 다 전화기 때문이다. 그나마 꽃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오는 전화는 금방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가방 한구석에 넣고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잊어버린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오는 전화를 다 받아야 직성이 풀릴 때도 있었는데,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전화기는 좀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오는 전화 말고도 여러 가지 알람과 소식들 때문이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용도가 많아지긴 했다. 그렇지만 전화를 붙잡고 수다를 떠는 일은 썩 내키지 않는다.


전화를 붙들고 쏟아내는 감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화기가 울리는 순간 뒤통수가 뻐근해지고 가슴은 쿵쿵 두근거렸다. 피하고 싶은 전화가 있었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다고 순종하던 때였다.


 멀어지는 방법은 하나였다. 차단.


그래서 꽃을 찍는 일에 더 매달렸고, 꽃사진이 용량을 다 채운 스마트폰은 소중한 사진보관함이 되었다.



  여름 태양이 남긴 건 너무도 밝게 빛나는 꽃들이었다. 뜨거운 열기를 즐기기라도 한 듯 검은 눈을 한 루드베키아는 최고의 시간이다. 여름휴가동안 가장 그리웠던 것은 도서관에서 맡는 에어컨 냄새였고, 태양을 닮은 꽃 루드베키아 꽃이었다.


뜨거운 곳과 시원한 곳이 극명하게 느껴지는 여름, 내면이 느끼는 감은 훨씬 더 섬세해지고 몸은 쉽게 지쳤다. 지금은 더운 날씨 탓이라도 해야 위로가 될 듯하다.


 매일 비슷한 일들을 하며 지내는 동안 휴식이 무척 그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필요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휴가를 보내고 나니 꾸벅꾸벅 졸다가 밀린 설거지를 마친 기분이다.  제자리에 정돈된 그릇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휴가를 더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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