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일에 집중하느라 깜빡이는 휴대폰 화면을 놓쳤다.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해두면 놀라는 일이 많아서 직장에서는 무음으로 해두고 모니터 바로 아래 세워둔다. 사실은 평소에도 나는 오는 전화를 잘 받지 못했다. 수차례 부재중 전화를 놓친 후에 받고 나면 전화 너머 쏟아지는 원성을 듣는 일이 허다했다.
늘 타이밍을 못 맞추는 아내고, 엄마가 되었다. 필요할 때는 없고, 꼭 일이 다 끝나면 나타난다고 말이다. 그게 다 전화기 때문이다. 그나마 꽃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오는 전화는 금방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가방 한구석에 넣고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잊어버린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오는 전화를 다 받아야 직성이 풀릴 때도 있었는데,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전화기는 좀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오는 전화 말고도 여러 가지 알람과 소식들 때문이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용도가 많아지긴 했다. 그렇지만 전화를 붙잡고 수다를 떠는 일은 썩 내키지 않는다.
전화를 붙들고 쏟아내는 감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화기가 울리는 순간 뒤통수가 뻐근해지고 가슴은 쿵쿵 두근거렸다. 피하고 싶은 전화가 있었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다고 순종하던 때였다.
멀어지는 방법은 하나였다. 차단.
그래서 꽃을 찍는 일에 더 매달렸고, 꽃사진이 용량을 다 채운 스마트폰은 소중한 사진보관함이 되었다.
여름 태양이 남긴 건 너무도 밝게 빛나는 꽃들이었다. 뜨거운 열기를 즐기기라도 한 듯 검은 눈을 한 루드베키아는 최고의 시간이다. 여름휴가동안 가장 그리웠던 것은 도서관에서 맡는 에어컨 냄새였고, 태양을 닮은 꽃 루드베키아 꽃이었다.
뜨거운 곳과 시원한 곳이 극명하게 느껴지는 여름, 내면이 느끼는 감정은 훨씬 더 섬세해지고 몸은 쉽게 지쳤다. 지금은 더운 날씨 탓이라도 해야 위로가 될 듯하다.
매일 비슷한 일들을 하며 지내는 동안 휴식이 무척 그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필요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휴가를 보내고 나니 꾸벅꾸벅 졸다가 밀린 설거지를 마친 기분이다. 제자리에 정돈된 그릇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