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시험을 준비한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
#1
누군가와의 이별에 가장 오래 힘들어했던 시기가 있었다. 상대방의 마음이 식어서 겪은 이별이었다. 슬프고 힘들고를 떠나서 자존감이 매우 떨어졌다. 매일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상대의 마음이 식은 것일까’를 생각했다. 문제를 나 자신한테서만 찾다 보니, 자존감은 더 떨어져 가고 힘든 마음은 가실 길이 없었다.
더 이상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슬퍼만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졌다. 뭐라도 하면서 생각을 다른 곳에 쏟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쪽으로.
나는 먼저 운전면허를 따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전화영어를 등록하고, 영어 말하기 시험을 준비했다. 적어도 운전연습을 할 때, 그리고 시험공부를 할 때는 딴생각이 잘 안 들었다. 나중에 렌트해서 갈 수 있는 여행지도 알아보고, 중고차 가격은 얼마 정도 되는지 알아보기도 하면서, 그동안 못해 본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누구나 다 따는 것이겠지만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고, 영어 점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보면서 자존감이 같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차차 나 자신을 찾게 될 때쯤, 이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사람과의 헤어짐은 ‘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서로가 맞지 않은 것이었고 서로의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힘들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 사람과의 맞지 않은 것들이 하나둘씩 떠올랐고, 내가 어떤 사람과 더 어울릴지도 알게 되었다.
#2
10개월 전 퇴사를 하였을 무렵, 나의 자존감은 매우 떨어져 있었다.
“언니, 언니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당시 나와 전화 통화를 했던, 아는 동생이 나에게 반복해서 해주었던 말이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전화를 받고 있으면서도 나는 몹시 작아져있는 모습이었다.
한동안 전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과 멀어지고 싶었다. 내게는 너무도 필요한 시간이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도 대면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퇴사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힘들게 퇴사를 했던 만큼, 적어도 쉬는 동안에는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내 사람들'이 누구인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것들인지를 조금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때때로 가만히 쉬는 동안에는 머릿속에 과거의 생각들이 몰려들어왔다. 최대한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고, 새로운 직장에 대한 고민만 하려고 애를 썼다. 몇 달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원하는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얼마 뒤 새로운 결심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험까지 주어졌던 짧은 기간, 반년 동안 시험공부를 했다.
준비한 시험이 끝난 지금,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내겐 얻은 것이 있다. 공부를 하면서 나를 괴롭히던 과거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었다. 어쩌면 무뎌졌다는 게 더 맞으려나? 새롭게 정했던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노력하는 만큼 차곡차곡 올라온 점수들, 그 안에서 했던 나에 대한 또 다른 고민과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결과는 아직 안 나왔지만 목표로 한 것을 끝낸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붙었다. 조금 더 하면 어느 정도 더 오르겠다는 것도 보이고, 뭔가 다른 것을 하더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이라는 것, 공부라는 것을 좋아해서 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힘든 시기를 지날 때 스스로 선택해온 길이 되었다. 나에게는 아픔을 잊을 수 있게 하는 진통제였기도 하고, 도전의 기회이기도 했다.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니, 퇴사를 했던 이유는 나만의 문제도 회사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결국 또한 맞지 않았던 것일 뿐. 공부 중에 읽은 글귀 가운데 이런 글이 있었다. "모든 일은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떠한 실패를 했고 어떠한 성공을 했든, 과거가 어떠했고 현재가 어떠하든 '나는 지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험이 끝났으니 이제 잠시 쉬어도 되는 시간이다. 그동안 못 봤던 친구들을 하나둘씩 만나고 있다. 해야 하는 일과 공부에 쫓기지 않고, 또한 지난 과거에도 마음을 뺏기지 않고, 편히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일이 오랜만이다. 이제야 정말 휴식 같은 시간이다.
cover photo by 양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