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세 달 살이, 둘째 주
내 몸에 해시계
침대에 누워 고개를 살짝 돌리면 긴 격자무늬 창문과 마주보게 된다. 내 방과 담장 사이의 좁은 틈엔 나무 한그루가 진초록 잎사귀를 뽐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네모난 창문으로 보는 나뭇가지와 잎사귀는, 낮에도 밤에도 꼭 그림 같다. 해가 지면 창문에 하얗게 커튼을 내려두는데, 그러다 아침이 되면 창문 너머로부터 쏟아져 들어온 빛이 하얀 커튼에 부딪쳐 더 하얗게 부서진다. 보이지 않는 햇살은 작은 방을 금세 따끈따끈하게 데우고, 불을 켤 필요도 없이 환해지면,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눈이 절로 떠진다.
여름이 되면 아침에 곧잘 일어나다가, 해가 점점 더디게 떠오르면 기상시간도 따라서 점점 늦어져서, 겨울이 되면 알람이 여러 번 울려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 몸 어딘가엔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해시계’라도 있나 보다. 어쩌면, 인간들 중에서도 겨울잠을 자야하는 종족들이 따로 있는지 모른다. 치앙마이에 온 뒤로는, 핸드폰시계가 날 깨우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있는, 내가 태어난 바로 그때부터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바로 그 시계가 나를 깨우는 것 같다. 태양이 뜨고 또 지는 것을 따라, 내 몸도 깨어나고, 또 잠든다.
고양이들의 시계
씻고, 머리를 말리고, 어제 미리 정해둔 옷을 입었다. 오늘은 이 숙소에서 떠나는 날. 짐은 어젯밤 대강 꾸려두었다. 여행가방 구석에 비워둔 공간에 다 쓴 세면도구와 화장품, 스트레치밴드를 집어넣고 나니 짐싸기 끝이다. 체크아웃 시간까지 아직 삼십 분 가량이 남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매일 아침 길을 나서기 전 작은 정원을 둘러보는 것이 어느새 매일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원 구석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과 중인 고양이어린이.
고양이들은 시계가 없어도 시간을 안다. 한밤중이 되어 사방이 어둡고 공기가 차가워지면 맹수답게 사냥을 하고, 그러다 태양이 떠올라 공기가 따뜻해지면, 햇볕이 잘 닿는 포근한 자리에서 한낮을 만끽하면서 그루밍도 하고, 낮잠도 자고. 그러다 누군가 밥을 주면, 매일 같은 시간에 맞추어 기다린다. 맛있는 밥과, 그 밥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마치 다들 손목시계라도 하나씩 차고 있는 듯, 고양이들은 시간에 맞춰 스스로 짠 하루일과들을 정확히 지킨다.
인간도, 태초엔 고양이처럼 살았으리라.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출근하라고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스스로 시간을 알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알며, 타고난 자기만의 시계를 따라서. ‘시계’라는 문명을 고안해내면서,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에 갖고 태어나던 그 시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매일매일 자신의 일과에 바쁜 고양이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진심 어린 애정을 쏟아 붓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고양이들이 아직 간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 며칠 늘 비슷한 시간에 숙소를 나섰더니, 고양이어린이는 아무래도 ‘1층방 손님과 인사하는 시간’을 정식으로 자신의 오전일과에 끼워 넣었나 보다. 정원의 나뭇잎들에 가만히 시선을 주고 있으니, 고양이는 오늘도 어느새 내 다리사이에 와있다. 자기 몸집의 열 배도 넘는, 말도 통하지 않는 종족들이 무섭지도 않은지, 고양이는 터널놀이라도 하는 듯 내 다리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부지런히 애정을 표현한다. 비록 인간의 언어는 아닐지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알 것 같으면 떠나는, 혹은, 떠날 때가 되어야 아는
머리맡에 부서지는 아침햇살에 눈을 뜨는 것도, 문을 열고 나오면 햇살을 가득 머금은 작은 정원과 마주하는 것도, 그 정원에서 튀어나온, 햇살에 고루 잘 익은 것 같은 황금색 털을 가진 고양이와 아침인사를 하는 것도, 모두 다 익숙해져버렸는데. 이제 그만 떠나야한다.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세 달이든, 여태까지의 모든 여행이 그랬다. 새로운 생활이 어느새 몸에 익고, 주변지리가 눈에 익어 지도 없이도 어디든 원하는 대로 걸어가고, 그래서 ‘이제야 뭘 좀 알겠네’ 싶으면, 어김없이 떠나는 날이다. 언젠가 이 긴 인생을 다 살았을 때도 그렇게 다시 떠나게 될까. ‘이제야 인생이란 게 뭔지 알겠구나. 오늘은 내가 떠나는 날이지.’
열렬한 아침인사를 마친 뒤, 고양이는 좋아하는 의자 위로 훌쩍 뛰어올라가 뒹굴뒹굴 낮잠 잘 채비를 하고, 나는 이만 떠날 채비를 한다. 택시를 부르고, 여행가방을 전부 방 밖으로 꺼내나와 세워두었다. 잔잔하게 스치는 바람이 싱그러운 날. 만족스러운 아침을 보냈는지, 고양이는 벌러덩 드러누워서 다리 하나를 길게 뻗은 채로 쿨쿨 잠들었다. ‘언니랑은 이제 영영 안녕인데, 이렇게 계속 잘 거야?’ 방금 전까지 열심히 온 마음 다해 애정을 표현한 손님이 떠나든 말든, 고양이에겐 지금 당장의 일과를 완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까지 머문 손님이 떠난 뒤엔, 내일 다시 새 손님이 도착할 것이기에.
첫날 나를 빨간 차에 태워왔던 호스트가 내게 다가와 마지막 인사를 한다. 우리는 고양이가 잠든 의자 앞에 나란히 서서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떠들썩한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He is sleeping like a human! So lovely!!!’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고양이어린이를 향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매일 보는 고양이인데도, 그녀는 사랑스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떠나는 날은 곧 도착하는 날
치앙마이에 도착한 후로 처음 택시를 탔다. 택시는 작았지만, 큰 여행가방 하나와 작은 여행가방 하나는 넉넉히 실을 수 있었다. 5분도 안 되어 두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올드타운 남서쪽에 위치한 1인용 스튜디오. 이번 숙소엔 작은 부엌이 딸려있다. ‘휴가처럼’ 보낸 첫 일주일이 지나고, 오늘부터는 슬슬 ‘생활’에 돌입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직 절반은 여행자
이번 여행에서 ‘휴가’와 ‘생활’을 구분 지은 가장 결정적인 조건은, 숙소가 ‘부엌’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첫 숙소엔 공동부엌이 있긴 했지만,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려고 잠깐 갔던 걸 빼면, 첫날 컵라면 물을 끓일 때 말고는 부엌을 이용하지 않았다. 부엌이 이역만리에 떨어져있는 것도 아닌데, 한 번 숙소에 들어와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면, 고작 그 몇 발자국을 나가기가 힘들었다. 물론, 첫 주는 ‘휴가처럼’ 보내기로 하고 끼니를 전부 밖에서 해결했기 때문에, 딱히 부엌에 갈 이유가 없기도 했지만.
두 번째 숙소에서 드디어 만난 부엌. 수도와 싱크는 있지만, 불이 없다. 그래서, 오늘부터의 일주일은 여전히 절반은 여행자인 생활이 될 예정. 식기와 커트러리는 아주 잘 갖추어져있어서, 저녁식사는 웬만하면 길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음식들을 포장해와 먹으며 지내기로 했다.
월요일의 일요일
화려한 크리스마스장식들이 화려한 피날레를 맞았던 성탄절의 일요일을 지나, 조용한 월요일. 올드타운의 작은 골목 마다마다 한낮의 햇살이 몸을 웅크린 채 단잠을 잔다. 싱그럽게 불어온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가 닿은 곳엔, 아직도 어제의 크리스마스장식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일요일은 모두 지났지만, 인적 없는 거리를 햇빛을 벗 삼아 홀로 걷고 있으니 오늘이 내겐 일요일 같다. 마침 도착한 곳은 <SUNDAY BAKER>.
창가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노트북을 챙겨 나오긴 했지만, 일을 하기엔 너무 불편한 자리. 그래서, 늦은 오후를 한가로이 보내기엔 딱이다. 로즈마리를 띄운 핑크레모네이드와 샐러드를 곁들인 시금치오믈렛을 주문했다. 금색 빨대를 꽂으니, 핑크빛 위에 피어있는 로즈마리 잎사귀들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인다. 창밖의 푸르른 나무엔 가지마다 아직도 보물찾기처럼 작은 크리스마스장식들이 매달려있다.
아직 첫 일주일밖에 보내지 않았지만, 치앙마이의 음식들은 대체로 자연스러운 맛이다. 특히 신선한 야채로 만든 음식들은 더더욱. 따사로운 태양과 부드러운 바람의 품에서 자란 야채들은, 이미 그 하나하나가 충실히 자신의 맛으로 여물어 있기 때문일까. 너무 짜거나 달지 않고, 인공적인 소스로 범벅을 해서 내놓지도 않는다. 후추와 올리브오일만 살짝 뿌린 작은 샐러드는, 느지막이 먹는 첫 끼니에 딱 어울리는, 밤새 잠들었던 미각들이 작게 기지개를 켜는 맛.
일요일 오후에 빠질 수 없는 것, 달콤함. 마차를 주제로 한 디저트와 음료들에 눈길이 먼저 갔는데, 결국엔 쇼콜라쇼-chocolat chaud 따뜻한 초콜릿-을 골랐다. 우유와 대두, 아몬드에 모두 알러지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선 우유가 들어간 음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은데, 치앙마이엔 오트밀크옵션을 취급하는 카페들이 제법 많아서, 벌써부터 설레는 중.
초록색 컵 색깔 때문인지, 아주 어릴 적 먹었던 ‘마일로’가 떠올랐다.
창가에서 햇볕을 듬뿍 받으며 지나간 오후. 한 번도 켜지 않은 노트북을 어깨에 메고 다시 길을 나선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의 거리. 지붕마다 오묘한 분홍빛 석양이 내려앉았다. 아마도 내 정수리도, 석양이 같은 빛깔로 물들였겠지. 찰나면 사라지는 이 빛깔은, 매일매일 태양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오늘 하루도, 그럭저럭 잘 보냈다고. 석양이 쓰다듬는 손길 속에서, 한적한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밤의 문을 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치는 풍경들이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길가에 줄 세워둔 코인세탁기와 드나드는 문 같은 건 없는 활짝 열린 동네슈퍼, 과일들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가게. 이따금 나타나는 목줄을 건 고양이들은 마치 밤 마실 나온 동네주민들처럼 어슬렁어슬렁 내게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간다. 올드타운엔 큰 개들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다 마주치는 녀석들은, 모두 대문 안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바쁘다. 열린 문 안에서, 담장 너머에서, 무르익는 저녁들. 작은 전등이 불을 밝힌 어느 문 앞에 멈춰 서서 잠시 상상해본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닿게 되는 다른 세상을.
새 숙소는 밤이 되니 서늘함이 감돈다. 낮에도 이전 숙소처럼 햇볕이 환하게 들이닥치지는 않는 것 같다. 이곳에서 계속 살아간다면, 이런 서늘한 집을 선호하게 될까? 햇볕이 작은 방을 구들장처럼 데워놓던 이전 숙소와는 다른, 제법 차가운 밤. 혼자 전등 하나 켜놓고 식탁 앞에 앉아있으니 조금 멜랑콜리하기도 하다. 파도처럼, 무언가 일렁이는 마음 속.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저녁을 차린다. 저녁 산책 도중 근처 작은 시장에서 십 수 가지의 반찬을 늘어놓은 노점을 발견해 몇 가지를 사왔다.
홍합과 새우를 넣은 똠얌수프, 짭짤한 조개볶음, 불맛 나게 구운 생선 한 마리.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모두 예상했던 바로 그 맛이다. 좀 더 따뜻했더라면, 좀 더 맛있었을 텐데. 생각하면서, 쌀밥 한 봉지를 곁들여 금세 뚝딱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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