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편은 <늙어서 살 곳을 찾아요!> 브런치북 첫 권 첫 편인 ‘너 나이 들면 어떻게 살래?’ 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 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같은 서두를 2권에 다시 한 번 담았으니 시리즈 첫 권을 읽고 오신 분들은 곧바로 다음 편으로 넘어가주시면 됩니다.
‘너 나이 들면 어떻게 살래?’
질문을 받았다. 기온이 영하로 하염없이 떨어진 서른다섯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난 따뜻한 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나이가 들면 이런 혹독한 추위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내 대답에 질문을 던진 이는 혀부터 찼다. 내가 질문이라 생각했던 것은 질문이 아니었고, ‘빨리 결혼해서 남편이랑 둘이 부지런히 모아서 집도 사고, 아이부터 무조건 하나 낳아야한다, 그래야 그 애가 너를 부양하지, 언제까지 몸 멀쩡한 청춘일 줄 아느냐, 늙어서 병원엔 혼자 어떻게 갈 거냐?’는 길고 긴, 질문처럼 보이는 질책이 되돌아왔다. 곧바로, 금수저도 아닌 내게서 태어난 자식은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을 텐데, 거기에 부모부양이라는 짐까지 얹어주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건 서른 중반이 된 나와 친구들이 출산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결정적인 이유기도 했다.
‘냉정하게 평가해서, 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리 태어나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게 내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엄마는 자식이 없으면 말년에 외롭다고 빨리 낳아야한다고 성화인데, 그렇게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태어난 아이들은, 과연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한 번 그런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니까 출산을 섣불리 결심할 수가 없어. 아니, 매일 말도 안 되는 사건들만 일어나는 걸 뉴스로 보고 있으면, 아이는 낳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만 더 굳어지지.’
우린 출산하지 않는 각기 다른 이유와 사정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 중 누군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늙어서 어떻게 살지?’
시간이 좀 더 지나, ‘마흔’이라는 상징적인 나이가 다가오면서, 나와 또래친구들의 대화엔 자연스레 ‘노후계획’이 주요한 주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대학시절 내내 ‘나는 할머니가 되면 프랑스에 가서 살 거야. 백발에 베레모를 쓰고 파리의 미술관들을 돌아다니는 멋진 할머니가 돼야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친구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으고 모자라면 대출이라도 받아서 빨리 집을 사라’는 주변의 권유를 따라야하는지를 고민했고, 스무 살 무렵 친구의 ‘프랑스할머니선언’에 적잖이 충격 받고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럼 나는 이탈리아에 가서 살래. 토스카나의 작은집에서 텃밭을 가꾸고 고양이를 키우면서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가 될 거야.’라고 덩달아 진지하게 선언했던 친구는 ‘다들 더 늦기 전에 누굴 만나라는데’라며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는 지금의 삶이 혹시 틀린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파리의 멋쟁이할머니가 되겠다는 포부도, 토스카나의 잔잔한 전원생활에 대한 꿈도, 40대를 앞둔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현실이 될 수 없는, 철없는 시절의 낭만’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럼 늙어서 살 곳을 지금부터 천천히 찾아볼래.’
심각하게 오간 대화 속에서 나는 유일하게 우리들이 스무 살 무렵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에게 확언했던 꿈들의 언저리에 머물러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더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된 우리에게 추천되는 현실적인 노후계획들은, 골자를 말하자면, 튼튼한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것으로, 수입이 들쭉날쭉한 ‘프리랜서’로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노후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지금의 생활양식부터 송두리째 바꿔야했다. ‘결혼’은, 인생의 동반자를 마련하여 함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여 안정에 이르는 일석이조의 가장 빠른 지름길로, 단연 추천되었다.
결혼도, 연애도, 출산도, 주체는 모두 ‘나’인데... 그 속의 ‘나’는 어떤 사람이죠...?
결혼, 연애, 출산. 사회가 꾸준히 내게 권장해온 이 세 가지 삶의 ‘방법들’은, 궁극적으로는 모두 ‘타인과 깊이 관계 맺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연애를 하면 연인과, 출산을 하면 자식과 맺는 그 관계들은 다른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하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함을 통해서 삶에 다른 지평을 열어줄 거라고, 이 사회는 틈만 나면 내게 권해왔다. 이 고전적인 방법론들엔 ‘엄마친구아들딸’들이 전한 수많은 성공수기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항상 실패한 사례들이었다. ‘장점’을 취하는 건 너무 쉬운 세상이 아닌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한다면 그 금액을 지출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우선으로 하여 선택을 해도 마땅하겠지만, ‘관계 맺기’란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바꿔놓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기에, 나는 당연히 그 선택으로 인해 내 삶에 발생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들을 먼저 살펴보고, 과연 내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먼저 가늠해보고자 했었다.
지금의 당신은 아직 이븐하게 익지 않았군요, 보류입니다!
수많은 실패의 사례들과 그 패인의 분석들을 들여다보니, 결혼이든, 연애든, 출산이든, 관계를 맺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관계의 주체인 ‘나 자신’이 먼저 관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흔이 되기 전에 빨리빨리!’를 외치며 내 등을 떠미는 주변의 성화 속에서, 깊게 고민해보았다. 지금의 나는, 깊은 관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인지. 그러자, 확실하게 드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적어도 난, ‘살을 엔다’고 일컬어지는 한국의 매서운 겨울날씨를 버텨낼 정도로 강하지는 못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노후계획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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