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하여
동떨어져있는 평화로움
빠이에서 앞으로 일주일간 묵게 될 숙소는 방갈로 뒷문을 열고 나가면 뒤뜰 너머로 펼쳐져있는 평화로운 ‘논뷰view’가 매력적인 곳이다. ‘메인스트릿’이라 불리는 빠이의 중심가로부터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져있고, 가볍게 걸어갈 수 있는 근거리에 요가수련원도 있어 자연을 벗 삼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성찰하는 시간을 보내고픈 여행자들에겐 안성맞춤. 숙소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자전거를 이용하면 중심가까지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딱히 불편한 것 없이 ‘동떨어져있는 평화로움’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다. 치앙마이로 돌아갈 날은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단 일주일을 묵어보고 숙박을 연장하거나 마음에 드는 다른 숙소가 나타나면 이동해서 묵어볼 생각이다.
뒤뜰엔 한낮이 따뜻이 웅크린 채 낮잠을 자는 중. 터벅터벅 그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 두 팔을 크게 펼치고, 저 멀리에서 산바람 가득 실어온 공기를 가득 들이쉬어 본다. 태양이 온몸을 구석구석 다정히 어루만지고, 차분히 잦아드는 호흡을 따라 마음 구석에 뿌옇게 쌓여있던 먼지들도 어느새 깨끗이 가라앉았다. 비워진 마음에, 왜인지 이유도 알 수 없이 해방감이 벅차오른다.
따끈따끈해진 몸으로 방으로 돌아와 여행가방을 대강 풀어두고, 저녁거리를 사러 가려고 What’s 앱에 지금 자전거를 빌릴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곳의 방갈로들은 모두 야외에 독채로 드문드문 지어져있고 프런트도 직원이 24시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모두 What’s 앱에서 이루어졌다- 자전거 이용은 언제든 가능하며, 잠시 후에 중심가로 가는 셔틀버스가 출발할 예정이니 그걸 이용해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늘함이란, 그리움
빠이의 밤은 제법 쌀쌀할 것 같아 니트조끼를 꺼내어 껴입고, 털실로 짠 비니도 머리에 뒤집어쓰고, 프런트로 가보니 벌써 오늘 하루 일과를 마친 태양이 뉘엿뉘엿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는 중이다. 대기 중인 ‘셔틀버스’는 트럭짐칸에 양옆으로 긴 의자를 만들고 지붕을 덮은 ‘셔틀트럭’에 더 가까운 모습. 훌쩍 올라타서 모르는 사람들과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이윽고 출발한 트럭이 탈탈탈 논길을 달려 나간다. 찰칵- 찰칵- 사진 찍기 바쁜 사람들 틈새에 끼어 기념사진 한 장 후딱 남기고. 남은 시간 동안은 솨아아아- 파도처럼 불어오는 바람을 쐬었다.
치앙마이에 있을 때보다 한층 낮아진, 저무는 저녁의 온도. 서늘한 바람에 그리움이 마음 한 구석에 일렁인다.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 채.
방구석철학과 인간의 실존
도착할 때와 같은 길을 거꾸로 달려가며, 같은 풍경을 지나침에도, 달라진 온도는 마음에 다른 심상들을 불러일으켰다. 스웨덴에서 유학하던 때에 독일에서 온 친구가 수업시간에 종종 ‘독일은 날씨가 춥고 황량해서 사람들이 고독하게 방구석에 틀어박혀있느라 철학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농담을 섞어 말하곤 했었는데, 몇 년 뒤에 덴마크로 옮겨가 살 때에 덴마크친구가 키에르케고르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잘 알려진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동상 앞을 지나치며 ‘덴마크는 날씨가 이 따위라서 키에르케고르 같은 철학자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독일인 친구와 똑같은 농담을 해서 엄청 웃었던 적이 있다.
따뜻한 나라에선, 수분을 가득 머금은 열매도 곧잘 열리고, 밤이 되어도 잘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먹고 자는 문제가 불안하지 않을 때엔, 마음도 쉽게 넉넉해진다.
허나 자연은, 모든 생명들이 똑같이 아늑한 곳에서 자라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씨앗은 볕 따스하고, 바람 부드럽고, 비마저 깨끗하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곳에서 아늑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반면, 어떤 씨앗은 볕 들지 않는 음지에서 찬바람에 연신 뺨을 맞으며 언 땅에 겨우 뿌리를 내리고 차디찬 그 속에서 양분과 수분을 빨아들이려 일평생 분투해야한다.
때로는 가슴에 사무치도록 야속한 그 섭리를, 언제 가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이끼에게는 이끼 나름의 생존방식이 있다지만. 모두 똑같이 태어난 사람인데, 왜 어느 누구는 볕 들지 않는 그늘에서 물 한 모금 마시려, 볕 한 줌 움켜쥐려, 처절히도 애써야 하는지.
사계절 내내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그리하여 당장 겨울이 닥쳐와도 걱정할 일이 없는 태국에서는 곳곳에 불상을 세우고 향을 피우며 내세의 안락을 빌었다. 반면, 춥고 습한 비가 사계절 내내 기승을 부리며, 당장 눈앞에 닥친 겨울을 나기 위해 분투해온 독일과 덴마크에서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그렇다면, 찌는 여름과 살을 에는 겨울이 매년 번갈아 찾아오는 한국의 사계는, 인간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는 것인지.
계절은 공존하지만, 인간은
펄펄 끓는 여름을 지나면 가을이 되어 열매가 가지로부터 떨어지고, 겨울이 되어 너른 대지조차 꽁꽁 얼어붙는 그 시절을 견뎌내고 난 뒤에야, 얼음이 녹고, 냇물이 흐르며 모든 것이 태어나는 봄이 온다. 한국의 사계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죽고 또 태어나는 생명의 역동성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라면, 지금의 우리는 그 섭리를 제대로 깨우쳐가고 있는지.
젊은이들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 한국의 ‘탈국가현상’은, 오르고 또 내리며, 확장하고 또 수축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의 사계절을 꼭 닮은 인간의 다양성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역동성을, 우리사회가 제대로 품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롯불 피우는 밤
눈 깜짝하는 사이에 ‘메인스트릿’에 도착해 모두 우르르 트럭에서 내렸다. 두 시간 후에 다시 같은 자리에서 모이기로 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길을 떠났다.
중심가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긴 건, ‘번데기’ 좌판. 어릴 때 아빠를 따라 산을 타러 가면 등산로 입구에서 파는 손톱만한 크기의 자잘한 소라와 번데기를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는데.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한참 번데기를 들여다보다가, 어릴 땐 참 좋아했던 음식들이 어느새 참 낯설어졌음만을 실감하곤 결국 그냥 노점을 지나쳤다. 혼잡한 거리로 들어서는 길목엔 몇 년이나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덩치 큰 개 한 마리가 터줏대감처럼 느긋하게 앉아서 어둑어둑해진 밤의 거리를 관망하는 중이다.
한국에서 미리 지도를 보고 찾아두었던 식당에 들어가 똠얌꿍과 쌀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펄펄 끓는 화로에 담겨 나온 똠얌꿍은 신선로가 떠오르는 모양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쌀쌀한 빠이의 밤에, 뜨끈하고 새콤한 국물은 다정한 환영인사가 되어주었다.
냄비 가운데로 피어오르는 붉은 열을 실은 꽃은, 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피워 올리는 제의. 추운 나라 사람들에게도, 더운 나라 사람들에게도, 태양이 저 아득한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찾아오는 서늘한 밤에 아늑히 타오르는 불꽃이 주는 위안은, 아마도 같지 않을까.
자유를 찾아 향하는 곳
태국음식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음식 중 하나인 똠얌꿍은 ‘김치찌개’를 떠오르게 하는 친숙한 맛이지만, 찌개에 반찬까지 여럿 곁들여 먹는 것이 일상인 한국인에겐 똠얌꿍 한 냄비에 쌀밥 한 그릇만으로 식사를 끝내기엔 역시 조금 아쉽다. 이런 싸늘한 밤에 먹는 저녁식사로는 더 그렇다. 빠이의 밤거리를 거닐면서 흥미로운 먹을거리가 나타나면 좀 더 배를 채워야지, 하고 식당을 나섰는데, 이런,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히피풍의 찻집들만 즐비하다.
일 년 내내 따뜻한 날씨, ‘무한하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먹거리, 의식주가 모두 저렴한 물가, 외국인들에게 우호적인 사회분위기 등으로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태국에서도 ‘배낭여행객들의 마지막 정착지’라고 불리는 빠이는, 한편으로는 ‘Hippie Destination 히피들이 가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요즈음엔 ‘히피’라고 하면 ‘히피펌’이나 ‘히피패션’ 등 자유롭고 편안하면서도 ‘힙hip한’ 이미지나 생활양식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 것 같은데 -‘히피hippie’의 어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happy 혹은 hip 혹은 그 두 단어 모두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의견들이 우세한 것 같다- 그래서 ‘히피들이 정확히 누구냐’고 물으면 지금 시대엔 오히려 명확한 답이 없는 것 같지만, 1960년대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주장했던 것은 ‘꽃’으로 대변되는 비폭력주의와 자연으로의 회귀 등을 방법론으로 한 기성세대와 제도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 정도만 알고 본다면, 무성하게 자라난 초록과 꽃들로 가득하며, 번잡한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작은 산골마을 빠이가 ‘히피들의 목적지Hippie Destination’로 각광받는 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그러나,
빠이의 밤거리에서 히피풍의 찻집들을 발견하고 선뜻 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것은, ‘히피’들이 자신들의 자유와 저항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세운 것이 하필 ‘대마초’이기 때문.
아는 것이 힘
치앙마이에서 세 달간의 살아보기를 마치고 돌아온 뒤, ‘태국 일부 식당들이 대마를 넣은 음식을 판매하고 있으니 모르고 먹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뉴스가 한국에 보도되어 지인들로부터 ‘진짜냐?’는 질문공세가 날아든 적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석달을 태국에 머무는 동안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와 관련해서 ‘산업용대마’와 관련한 최근 국제시장의 흐름을 간략히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위 보도와 관련하여, 다수의 기사들이 마치 태국이 ‘마약류인 대마초를 합법화’한 국가처럼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마’는 인류가 오랫동안 ‘천연진통제’로 사용해온 만큼, 통증을 완화시키고 염증을 감소시키는 효능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한 것이 의료용대마인 CBD-cannabidiol-인데, 항염과 진통 외에도 뇌전증(간질)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현재 국내에도 CBD성분이 포함된 뇌전증치료제인 에피디올렉스의 수입과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 -물론 엄격한 절차에 따라야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마의 꽃과 잎에 포함된 환각증세를 일으키는 THC-tetrahydrocannabidiol-라는 활성물질인데, CBD의 경우 THC 함유량이 0.3% 이하로 매우 적다.
이전에는 대마의 잎과 꽃, 줄기, 씨앗 등 모든 부위를 일괄 마약류로 취급해 그 재배와 판매, 구매, 사용 등을 엄격하게 금지하였지만, 최근엔 문제가 되는 THC를 거의 포함하지 않은 나머지, 즉 ‘Hemp’라고 불리는 산업용대마가 국외에서 성장가능성이 높은 작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환각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을 포함한 종피를 제거한 대마씨(헴프씨드, Hempseed)의 경우 이미 북미와 캐나다, 다수의 유럽 국가들에서 건강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몇 해 전 덴마크에 거주하던 때에 슈퍼마켓에 가면 Hempseed나 Hempseed에서 짜낸 오일을 식품진열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산업용대마는 현재 의약품과 식품뿐 아니라 섬유, 종이, 건축자재, 화장품이나 위생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원료로 쓰이고 있으며 향후 몇 년간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북미와 캐나다를 비롯한 다수의 국가들이 THC 농도가 극히 낮은 산업용대마를 마약류에서 분리하여 합법화한 상황이며, 태국 역시 이 흐름에 탑승한 것일 뿐, 마약류인 대마초를 합법화한 것이 아니다.
태국은 2018년 아시아국가로는 최초로 의료용대마인 CDB를 합법화하였다. 하지만 아무데서나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고, 구매와 사용에는 전문 의료인의 처방이 있어야한다. 태국은 뒤이어 2022년 THC 농도 0.2% 이하인 산업용대마를 합법화하였는데, 이는 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위에 설명한 국제적인 흐름에 따른 것이다. 현재 태국 공공장소에서 대마의 흡연은 -합법적인 처방에 따른 의료용대마라 할지라도- 금지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형 혹은 투옥형에 처해질 수 있다.
산업용대마를 합법화한 국가들에서는 이를 활용한 음료나 식품의 제조와 판매 역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의 경우 산업용대마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여전히 대마의 모든 부분을 마약류로 엄금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법의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산업용대마를 원료에 포함한 음식들은 전부 ‘대마를 넣은 음식’으로 통칭된다. 그런데 이 경우, THC 농도를 불문하고 대마로 만들어진 음식을 모두 마약류로 분류한다면, 그것은 태국여행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용대마를 합법화한 모든 나라에서 주의를 기울여야할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에겐 국경 외에서도 우리법을 적용하는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용대마를 둘러싼 국제적인 흐름은 우리국민이라면 누구나 숙지하고 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20년 경상북도 안동을 첫 ‘산업용헴프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의료용대마 관련연구를 진행해왔으나, 2024년 11월 24일 현재 우리법은 여전히 산업용의 구분 없이 대마의 모든 부분을 마약류로 취급하고 있다.
자유에 대하여
과거 우리나라의 경우, 삼한시대부터 대마의 줄기, 즉 ‘산업용대마’로 ‘삼베’라는 직물을 짜서 활용해왔으며, 오늘날의 ‘의료용대마’처럼 민간에서 통증과 염증을 가라앉히는 용도로도 대마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즈음 활발한 ‘산업용대마’의 분리작업은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지혜로의 회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의 우리는 대마를 포함한 향정신성의약품들이 인간의 정신과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혹자는 대마는 담배보다도 중독성이 낮으니 다른 향정신성의약품과 취급을 달리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약물중독에 관한 다수의 연구들은 ‘대마초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태도가 결국 다른 더 심각한 약물들로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된다고 지적한다.
대마가 과거 인류의 삶과 함께 해온 궤적을 살펴보면 전쟁과 산업화의 물결에 대항하여 자연으로 회귀, 진정한 자유와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히피들이 이 작물에 주목하게 된 맥락은 이해가 가지만, 그 실천방식이 단순히 ‘대마초피우기’인 것은 이해나 공감이 어려운 부분이다.
깊어가는 밤, 히피감성 가득한 찻집엔 조용히 찻잔을 기울이는 여행객들뿐이었지만. 너무 많이 아는 것이 오히려 병인지, 몰랐다면 독특한 분위기에 이끌려 한 번쯤 들어가 봤을 법한 찻집들을, 전부 그냥 지나쳤다.
예기치 않게 걸음이 가 닿은 밤의 어귀에서, 생각은 갑작스레 ‘자유’라는 흔하고도 먼 단어에 가 닿았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는 것을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외면하고 싶은 현실들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그로 인해 사는 동안 고통 받는 것은 어쩌면 ‘인간다움’을 위한 숙명이리라.
젊은 청년들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 ‘탈국가’의 시대. ‘떠나고 싶은 마음’은 비단 젊은이들만의 욕망도, 한국인들만의 욕망도 아닐 것이다. 1960년대의 미국을 살았던 ‘히피’들의 가슴에 가득했던 ‘떠나고 싶은 마음’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마음이 패션과 음악 등 세계대중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고, 여전히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십 년이 지나며 그들이 품었던 저항정신은 소매치기나 약물중독이라는 씁쓸한 결과들로 퇴색되기도 하였다.
‘떠남’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그 어딘가에서 꿈꾸던 ‘완벽한 이상’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 허나 그 마음이 좌절될지라도, 나는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인간의 육체를 하고 태어나지만, ‘인간다움’이란 각자가 일생동안 완성해가는 것이기에.
차갑게 식은 빠이의 밤을 거닐며, 낮 동안 보았던 햇살 가득한 빠이의 풍경들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늙어서 살아갈 곳’의 자유는, 술이나 대마에 마음껏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든 작은 규칙들이 마치 삼베를 짜듯 서로 꼼꼼히 얽히어 만들어낸 탄탄한 일상 속에서, 길 위의 모든 생명들과 스스럼없이 교감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약한 것들에 대한 존중이 단단히 뿌리내린 공동체 속에서 피어난 것이었으면 좋겠다.
밤이 떠나간 뒤엔 어김없이, 태양이 비추는 낮
길 끝에서 만난 과일노점에서 먹음직스럽게 깎아 담은 파파야 한 컵을 샀다. ‘셔틀트럭’을 타러갈 시간이 다 되어 부지런히 걷던 중, 태국과 중국 식료품들이 뒤섞여있는 좌판 구석에서 들깨강정을 발견하곤 그것도 얼른 한 봉지 샀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셔틀이 탈탈탈 달려왔다. 트럭은 쌩쌩 까만 밤을 달려 곧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해진 뒤의 방갈로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하게 식어있었지만, 다행히 욕실에선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세 시간 넘게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온 탓에 찌뿌듯하던 몸이 하얗게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뜨끈한 물줄기에 흐물흐물 녹아내려, 씻고 나오자마자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이 들었다.
밝고 따뜻한 자유
눈 한 번 감았다 떴더니, 아침. 살짝 열린 커튼 틈으로 초록을 싣고 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난다. 밤이 떠나간 뒤엔 어김없이 찾아오는 낮을, 커튼을 활짝 열어 반겼다.
창문 너머엔,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너른 논과 우뚝 선 산. 딱히 무언가 하지 않아도, 그저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자유롭다.
모든 것이 밝고 따뜻한 빠이의 낮. 소외되는 구석 없이 만물을 낱낱이 비추는 낮의 태양 아래, 칠흑에 잠긴 싸늘한 밤의 풍경들이 하나둘 기억 너머로 가라앉는다. 그 고요한 지평선 위로 조용히 피어오르는, 어젯밤의 화롯불. 그 조촐한 염원이 불씨가 되어, 마침내 환하게 아침이 밝았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로 <늙어서 살 곳을 찾아요! 3권 –빠이의 열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화부터는 밝고 따뜻한 빠이를 가득가득 담아보려 합니다.
*<늙어서 살 곳을 찾아요>는 늙어서 살고 싶은 곳에 미리 가서 살아본 기록들을 정리한 여행에세이입니다.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첫 권 1편 ‘너 나이 들면 어떻게 살래?’ https://brunch.co.kr/@summerstove/22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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