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이 들면 어떻게 살래?’
질문을 받았다. 기온이 영하로 하염없이 떨어진 서른다섯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난 따뜻한 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나이가 들면 이런 혹독한 추위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내 대답에 질문을 던진 이는 혀부터 찼다. 내가 질문이라 생각했던 것은 질문이 아니었고, ‘빨리 결혼해서 남편이랑 둘이 부지런히 모아서 집도 사고, 아이부터 무조건 하나 낳아야한다, 그래야 그 애가 너를 부양하지, 언제까지 몸 멀쩡한 청춘일 줄 아느냐, 늙어서 병원엔 혼자 어떻게 갈 거냐?’는 길고 긴, 질문처럼 보이는 질책이 되돌아왔다. 곧바로, 금수저도 아닌 내게서 태어난 자식은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을 텐데, 거기에 부모부양이라는 짐까지 얹어주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건 서른 중반이 된 나와 친구들이 출산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결정적인 이유기도 했다.
‘냉정하게 평가해서, 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리 태어나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게 내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엄마는 자식이 없으면 말년에 외롭다고 빨리 낳아야한다고 성화인데, 그렇게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태어난 아이들은, 과연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한 번 그런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니까 출산을 섣불리 결심할 수가 없어. 아니, 매일 말도 안 되는 사건들만 일어나는 걸 뉴스로 보고 있으면, 아이는 낳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만 더 굳어지지.’
우린 출산하지 않는 각기 다른 이유와 사정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 중 누군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늙어서 어떻게 살지?’
시간이 좀 더 지나, ‘마흔’이라는 상징적인 나이가 다가오면서, 나와 또래친구들의 대화엔 자연스레 ‘노후계획’이 주요한 주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대학시절 내내 ‘나는 할머니가 되면 프랑스에 가서 살 거야. 백발에 베레모를 쓰고 파리의 미술관들을 돌아다니는 멋진 할머니가 돼야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친구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으고 모자라면 대출이라도 받아서 빨리 집을 사라’는 주변의 권유를 따라야하는지를 고민했고, 스무 살 무렵 친구의 ‘프랑스할머니선언’에 적잖이 충격 받고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럼 나는 이탈리아에 가서 살래. 토스카나의 작은집에서 텃밭을 가꾸고 고양이를 키우면서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가 될 거야.’라고 덩달아 진지하게 선언했던 친구는 ‘다들 더 늦기 전에 누굴 만나라는데’라며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는 지금의 삶이 혹시 틀린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파리의 멋쟁이할머니가 되겠다는 포부도, 토스카나의 잔잔한 전원생활에 대한 꿈도, 40대를 앞둔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현실이 될 수 없는, 철없는 시절의 낭만’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럼 늙어서 살 곳을 지금부터 천천히 찾아볼래.’
심각하게 오간 대화 속에서 나는 유일하게 우리들이 스무 살 무렵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에게 확언했던 꿈들의 언저리에 머물러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더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된 우리에게 추천되는 현실적인 노후계획들은, 골자를 말하자면, 튼튼한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것으로, 수입이 들쭉날쭉한 ‘프리랜서’로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노후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지금의 생활양식부터 송두리째 바꿔야했다. ‘결혼’은, 인생의 동반자를 마련하여 함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여 안정에 이르는 일석이조의 가장 빠른 지름길로, 단연 추천되었다.
결혼도, 연애도, 출산도, 주체는 모두 ‘나’인데... 그 속의 ‘나’는 어떤 사람이죠...?
결혼, 연애, 출산. 사회가 꾸준히 내게 권장해온 이 세 가지 삶의 ‘방법들’은, 궁극적으로는 모두 ‘타인과 깊이 관계 맺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연애를 하면 연인과, 출산을 하면 자식과 맺는 그 관계들은 다른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하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함을 통해서 삶에 다른 지평을 열어줄 거라고, 이 사회는 틈만 나면 내게 권해왔다. 이 고전적인 방법론들엔 ‘엄마친구아들딸’들이 전한 수많은 성공수기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항상 실패한 사례들이었다. ‘장점’을 취하는 건 너무 쉬운 세상이 아닌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한다면 그 금액을 지출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우선으로 하여 선택을 해도 마땅하겠지만, ‘관계 맺기’란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바꿔놓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기에, 나는 당연히 그 선택으로 인해 내 삶에 발생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들을 먼저 살펴보고, 과연 내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먼저 가늠해보고자 했었다.
지금의 당신은 아직 이븐하게 익지 않았군요! 보류입니다!
수많은 실패의 사례들과 그 패인의 분석들을 들여다보니, 결혼이든, 연애든, 출산이든, 관계를 맺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관계의 주체인 ‘나 자신’이 먼저 관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흔이 되기 전에 빨리빨리!’를 외치며 내 등을 떠미는 주변의 성화 속에서, 깊게 고민해보았다. 지금의 나는, 깊은 관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인지. 그러자, 확실하게 드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적어도 난, ‘살을 엔다’고 일컬어지는 한국의 매서운 겨울날씨를 버텨낼 정도로 강하지는 못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노후계획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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