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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햇살 Nov 27. 2024

안녕하세요, 세 고양이 청과물점입니다!

빠이의 동네친구들


아침엔 서로 인사를 해요!


빠이에서 맞는 첫 아침. 숙소시설들을 둘러볼 겸 느긋하게 산책을 좀 하다가 밥을 먹으러 가야지, 결심하고 방갈로를 나서자마자 어슬렁어슬렁 식당으로 걸어가는 복슬복슬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인간들은 왜 나만 보면 저 네모난 걸 들이미나 몰라! 먹을 수도 없는 걸!


이윽고 햇살 좋은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자그마한 솜방망이를 가지런히 모은 고양이는 오늘 처음 본 손님이 핸드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수십 장 찍어대도 ‘그러려니’하며 미동도 않는다. 한참 사진을 찍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더니, 고양이가 자리를 잡은 뒤편에 생수와 차, 간단한 과일과 스낵이 준비된 컨티먼트 바condiment bar가 있다.



정원 곳곳에 의자와 식탁들이 자유분방하게 놓인 식당. 하지만 어디에 앉든 간에 식당에 온 손님이라면 모두 한 번씩은 이 컨디먼트 바에 들르지 않을까? 이 영리한 고양이는 손님들이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걸음 하는 시간에 딱 맞춰서, 손님들을 마주치기 가장 손쉬운 공간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손님들, 아무리 오늘 하루 일정이 바빠도 우리 서로 아침인사는 하도록 해요!’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러 왔거나, 아니면 나처럼 그저 산책 중에 지나쳤거나, 다 다른 이유로 식당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고양이 앞에 멈춰 섰다. 인형처럼 앉아있는 고양이에게 핸드폰을 들이밀고 사진을 찍고, 인간의 말로 인사를 건네고, 그러다가, 옆에서 나란히 핸드폰을 들이밀고 있는 또 다른 인간과도 자연스레 말을 나눈다. 고양이가 아니었더라면 서로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일과를 보냈을 사람들이, 고양이 덕분에 잠깐 서로 모여 정답게 아침인사를 했다.


고양이 앞에 모여 들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때맞춰 사료그릇을 들고 나타난 집사를 발견하곤, 고양이가 날아가듯 그 뒤를 쫓아가기 시작한다. 컨디먼트 바 뒤편 식탁 위에 집사가 그릇을 놓자마자, 고양이는 훌쩍 뛰어올라가 코를 박고 사료를 먹느라 바쁘다.


먹는 게 제일 좋아!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뒷발은 하늘로 날아간다


‘어머, 얘, 너 혹시 손님들을 보러 나온 게 아니라 사료를 기다리고 있던 거니?’

‘겸사겸사죠. 밥은 꼭 먹어야하는 걸요. 그래서 나는 집사가 밥을 가져올 때마다 꼬리를 빳빳이 들고 인사를 해요. 집사가 반가운 내 마음을 알 수 있게요.’


마음의 요가


고양이가 마음 편히 식사하게 하려고 집사가 일부러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컨디먼트 바 뒤편에 사료그릇을 놓아준 것 같아서 조용히 뒷걸음질 쳐 식당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 오두막엔 요가매트와 짐볼, 블록과 링 따위가 마치 성탄선물처럼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숙소를 이곳 <Kirina Wellness in the Valley>로 정할 때 ‘논뷰’와 함께 결정적인 요건이 되었던 것이 숙소 내에서 요가수업을 신청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빠이에 가면 매일매일 요가를 해야지!’라는 포부는 막상 도착해 짐을 풀고 나니 스멀스멀 사라지고. 대신에 녹음 속을 천천히 거닐며 마주치는 풍경들을 차곡차곡 눈에 담고, 청아한 공기를 들이쉬며, 마음의 요가를 했다.     


가지런히 접힌 요가매트를 보면서 차분히 호흡만 해도 요과효과가 있다면서요? (네?)


혼자가 아니야!


본격적으로 혼자만의 아침산책을 만끽해볼까 하는 찰나, 복슬복슬한 무언가가 스윽- 다리에 와 닿았다. 고양이와 헤어지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이번엔 두꺼운 옷을 야무지게 챙겨 입은 강아지가 나타났다. ‘너도 나도 혼자가 아니야!’라는 듯, 강아지는 연신 내게 몸을 부딪치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처음 보는 손님에게도 스스럼없이 꼬리를 흔들며 애정을 표현하는 강아지와 사이좋게 아침인사를 나누고 있으려니, 어느새 식사를 다 마쳤는지 고양이마님이 어슬렁어슬렁 식당 밖으로 걸어 나온다.


내가 사는 곳에 놀러온 걸 환영해!


강아지는 오두막 그늘 속에, 고양이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목의 뙤약볕 아래에, 각자 취향대로 자리를 잡고는 철퍼덕 늘어진다. 어제 종일 프런트를 지키던 ‘마중전문요원’도 꼬리를 흔들며 나타났다. 이대로 고양이 옆에 드러누워 남은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배꼽시계가 밥 먹을 시간이 훨씬 지났다며 요동을 친다.


‘얘들아, 나는 이만 밥 먹으러 갈게. 내일 또 만나!’


내 인사를 들은 건지, 만 건지, 한낮의 햇살에 따끈하게 포박된 고양이는 요지부동. 강아지 두 마리는 서로 장난을 치느라 바쁘다.  


땅에 늘어진 나무그림자와 서로 구분이 되질 않는 고양이마님의 멋진 털코트


프런트로 나왔더니 이번엔 인절미 두 개가 바닥에 뚝- 뚝- 떨어져있다.


잘 다녀와. 멀리 안 나갈게.


‘얘들아, 언니 밥 먹고 올게!’ 내 말을 알아 듣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인사를 한다. 논두렁길을 걸어, 바나나나무들이 두 팔을 활짝 펼친 밭을 지나, 한적한 도로로 들어섰다. 저 멀리에서 누군가 불을 피우는지, 아니면 밭을 태우는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한참을 바라보다 뒤로 돌아서니, ‘구멍가게’라고 부름직한 작은 동네슈퍼마켓이 보인다. 곡물과 야채, 간식거리들을 한 주먹씩 비닐봉지에 담아 주렁주렁 매달아둔 모양새가 아기자기 정답다.



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길가엔 어김없이 빨래가 마르는 중. 널어놓은 옷가지들이 제법 두껍다. 처음엔 밤이 되면 날이 제법 서늘하니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밤바람에 맞서려면 두꺼운 옷이 필요하겠구나, 싶었지만, 빠이에서 며칠을 더 지내다 보니 덥지만 습하지 않은 날씨엔 햇볕을 가려주는 긴 옷을 입는 것이 낮에는 더 시원하고, 밤에는 따뜻했다.


안녕하세요, 세 고양이 청과물점입니다!


걷다가 마주친 청과점.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여행을 가면 제일 재미있는 건 시장구경! 집 앞마당에 천막을 덮고, 그 아래 좌판을 차려서 그날그날 밭에서 따온 채소와 집에서 만든 반찬거리들을 팔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호기심을 건드려 걸음이 멈췄다. 비닐봉지에 담아둔 국물요리가 뭔지 궁금해 살펴보려고 다가가는데, 좌판 밑에 고등어고양이 한 마리가 우뚝 버티고 앉아있다. 아이쿠! 밭일을 하러 간 집사 대신 고양이가 가게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사진 속 고양이는 전부 몇 마리!?


고양이를 놀라지 않게 하려고 방향을 틀어서 옆에 놓인 채소들을 살피는데, 좌판 위에도 고양이 한 마리가 떡하니 식빵을 굽고 있다. 이 녀석, 표정을 보아하니 물건을 한두 번 팔아본 것 같지 않다. 정갈하게 다듬어 가지런히 진열해둔 채소들을 보니, 숙소에 부엌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손님 왔어? 혹시 도둑은 아니고?


라임이라도 몇 개 사볼까 싶어 어슬렁거리는데, 좌판 밑에서 고양이가 또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온다. 세 고양이들, 풍기는 분위기가 꼭 산전수전 다 겪은 시장상인들처럼 심상치가 않다.  



‘손님! 살 거예요, 말 거예요?’

‘뭐 사게? 말만 해! 저울에 달아줄게.’

‘얼마냐구요? 사는 사람이 알지, 파는 고양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세 고양이 판매사원들을 믿고 가게를 완전히 맡긴 듯, 마당 저 안쪽을 두리번거려도 집사는 보이질 않고. 뭐 하나라도 집으면 저울에 달아 계산까지 해줄 것처럼 세 고양이는 손님 하나를 둘러싸곤 빤히 주시하는 중. 손님이 혹 값을 치르지 않고 쌀 한 톨이라도 가져갔다가는, 곧바로 셋이 합심해 냥냥펀치를 날려버릴 기세. 너희들 집사는 참 든든하겠다. 믿고 가게를 맡길 귀염둥이들이 셋이나 있어서.


집사야, 가게는 우리한테 맡겨!


‘오늘은 그냥 구경만 한 거야. 다음에 또 올게!’


머쓱하게 인사를 하곤, 다시 길을 나섰다. 거리 곳곳에서, 인간이 만든 풍경 속에 자연스레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물친구들이, 어느새 동네친구들처럼 익숙해졌다.


빠이의 동네친구들


햇볕이 따끈하게 데운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어느 집 담장에 파는 건지 마는 건지 무심히 놓아둔 파파야와 바나나꽃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고, 핸드폰번호 달랑 적어 길가에 덩그러니 놓아둔 좌판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아침을 먹을 식당. 직접 텃밭에서 기른 작물들로 요리를 한단다. 식당 입구엔 갓 따온 듯한 바나나와 단호박, 파파야, 미니파인애플 따위가 놓여있다. 겉모습이 다들 매끈매끈하지는 않지만 옹골차고 투박하게 익은 모습들이 정겹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강아지 두 마리가 쪼르르 마중을 나온다. 어딜 가든 동물들이 먼저 반겨주는 빠이의 첫 아침. 열린 창 너머 텃밭에선 연둣빛 잎사귀가 부지런히 태양을 머금고, 부산스레 환영인사를 마친 강아지들은 탁자 아래 자리를 잡고 한숨 잘 준비를 한다. ‘평화’란 단어를, 이곳에서 애써 거창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만나서 반가워! 만나면 당연히 서로 인사를 해야지!


바질잎차를 주문했더니, 바질잎사귀를 티팟에 가득 담아 내왔다. 생바질 잎사귀를 우린 차는 처음인데, 떫은맛이 하나도 없이 진한 바질향이 가득하다. 한 모금 마시고, 옆에 늘어진 강아지 한 번 보고, 또 한 모금 마시고, 이번엔 다른 쪽에 늘어져있는 강아지 한 번 보고.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뒤이어 나온 샐러드는 그야말로 창밖의 텃밭을 그대로 담아왔다. 갖가지 어린 잎사귀와 허브를 깔고 노란색 단호박, 보라색 비트, 빨간색 방울토마토를 툭-툭- 놓은 뒤, 달콤한 옥수수알갱이와 붉은 콩, 퀴노아를 컵케이크에 크림 얹듯 맨 위에 살포시 얹었다.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식감,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즐길 수 있었던 한 그릇. 참깨와 간장으로 만든 소스는 작은 그릇에 따로 담겨 나왔는데, 자극적인 맛이 없어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주었고, 적절히 농도를 조절해가며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초록잎사귀들이 너무 맛있었다!



메뉴에 ‘따뜻한 캐슈넛수프’가 있어 아침식사루틴인 요거트 대신 주문해보았다. 첨가물은 하나도 없이 캐슈넛만을 아주 곱게 갈아서 호로록 마실 수 있도록 따뜻한 수프로 만들었는데,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고, 농도가 아주 걸쭉하지 않아서 아침 첫 식사로 부담 없이 먹기에 딱 좋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자라는 캐슈넛은, 그야말로 여름의 빛과 열을 가득 품은 맛.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느 집 마당에서 마주친 동네친구는 한갓지게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수선을 겸하는 세탁소엔 크리스마스장식이 ‘아직 내 계절’이라는 듯 반짝반짝 자태를 뽐내는 중이다. 나무그늘에 세워진 오토바이들도 뙤약볕을 피해 한숨 잠을 청하고. 도로변엔 닭 한 마리가 부지런히 마실을 가는 중이다.



숙소 근처까지 왔을 때, 또 카운터 보는 고양이를 마주쳤다. 집사는 갓 요리한 음식을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고, 카운터에 늘어져서 단잠을 자던 고양이가 먼저 손님을 발견하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눈을 반짝 뜬다.



‘우리 가게는 테이크아웃만 하는데. 주문할 거야?’

‘미안, 아침식사를 배불리 해서 여기선 아무것도 못 사먹을 것 같아.’

‘그럼 담에 와~ 난 계속 잘게.’


멀어지는 손님을 얼마간 바라보다, 고양이는 다시 잠을 청한다. 포장을 마친 집사가 그제야 나를 보더니 ‘우리 고양이점원이랑 벌써 이야기 다 끝나셨죠?’라는 듯 싱긋 웃는다.  


집집마다 각자의 비법으로 직접 만드는 듯한 바나나칩. 맛있다!


곧 길을 나설 때 마주쳤던 구멍가게가 나타나서 아까 눈여겨 봐두었던 바나나칩 한 봉지를 샀다. 단돈 10바트. 과자 한 봉지 달랑달랑 손에 들고 그새 익숙해진 길을 지도도 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길을 나설 땐 아침 먹을 겸 혼자 동네 한 바퀴 가볍게 산책할 생각뿐이었는데, 온 동네 친구들을 다 만나고 왔다.


인기척을 느끼면 반갑게 달려 나와 맞아주는 빠이의 또 다른 동네주민들. 서로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지! 그게 함께 살아가는 거니까. 본능에 충실한 동물친구들은, 인간이 잊고 사는 공동체의 본래의미를 이따금 이토록 따뜻하게 되새겨준다.


짧은 아침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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