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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향기는 붙잡아 둘 수 없지만

매일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 이유는,

by 여름햇살


매일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오늘 밤비행기로 기다리던 손님들이 치앙마이에 도착한다. 손님들과 약 열흘을 함께 보내고 나면, 정든 세 달은 기억 한 편에 고이 묻고 치앙마이를 떠나야 한다. 그러니까, 오늘 낮이 치앙마이에서 나 홀로 보내는 마지막 시간인 셈이다.


여행을 시작하고 약 두 달 반 동안 줄곧 혼자였던지라, 바로 어제까지는 ‘혼자 보내는 하루’가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는데. 오늘 밤부터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나 홀로 보내는 마지막 날’을 기념할 만한 작은 의식이라도 치러야 할 것 같다. 거창하진 않지만, 어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해 보자. 결심 끝에 도달한 결론은, 역시나 ‘먹는 것’. 빠이에서 돌아온 뒤 ‘여행자’에서 ‘생활자’가 되면서 아침식사는 타닌시장이나 길을 걷다가 무심코 이끌린 동네 구멍가게들에서 장을 본 거리들로 직접 만들어 먹고 있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아침외식’을 하기로 했다.


날씨는 덥고 인건비는 싼 동남아국가들은 집에서 굳이 가스레인지 불 때워 직접 요리를 하는 것보다 밖에서 외식을 하거나 포장을 하는 게 힘도 비용도 덜 든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치앙마이 역시도 종일 거리에서 노점들이 즐비하게 먹거리를 판매하고, 출근길에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을 타깃해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하는 식당들도 많다. 며칠 전부터 새로 자리를 잡은 치앙마이 세달살이의 마지막 숙소 앞엔 출근시간에 직장인들이 많은 도심 지하철역이나 빌딩숲에 나와 집에서 말아온 김밥 따위를 후다닥 팔고는 사라지는 우리나라 행상들처럼 직접 요리한 요깃거리들을 한주먹 크기로 정갈히 포장해 장사를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숙소를 옮기던 날 택시를 타고 오면서 그 풍경을 보곤 ‘내일은 산책 겸 구경 겸 행상에서 아침을 사다 먹어야지’ 하고 결심했건만, 자고 싶은 만큼 푹 자고 느긋하게 눈을 뜨면 늘 ‘오늘의 먹을거리’들은 이미 ‘완판’되고 거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텅 빈 모습으로 시침을 뚝 떼고 있다.


북적이던 행상들이 가뿐한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탁 트인 콘도 앞 도로는 이른 아침의 분주함과는 사뭇 다른 한적함에 휩싸인다. 인적 드문 거리가 한낮의 가장 뜨거운 햇살을 수양하듯 고요하게 품어 내고 나면, 태양이 어느덧 누그러진 틈새를 선선한 저녁공기가 넉살 좋게 조금씩 파고들어 온다. 빛은 저물어 가지만, 저녁장사를 나온 사람들이 정겹게 풍겨내는 온갖 소리와 냄새들이 차올라, 밤이 찾아온 거리엔 이른 아침과는 또 다른 활력이 돈다.


열고 들어가면 시간을 뛰어넘을 것만 같은 문


살아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인생


숙소 앞 대로변에도 아침장사를 하는 식당들이 많지만, 부러 조금 더 걸어 산속의 외딴 샘처럼 조용한 작은 골목식당에 왔다. 마지막 나 홀로 아침식사로 선택한 메뉴는, 근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숙소에서 혼자 만들어 먹던 ‘요거트보울’.



예전엔 외식을 하면 으레 조리방법이 까다로운 –나 스스로는 좀처럼 해 먹을 것 같지 않은- 음식들을 선택하곤 했는데, 요즘은 요거트보울이나 샐러드처럼 겉보기엔 그리 대단한 조리를 하는 것 같지 않은 음식들이 더 자주 끌리곤 한다.


맛있는 요리는 당연히 좋은 재료를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조리방법이 간단한 음식들은 이 부분을 숨기기가 어렵다. 때문에, 있는 재료를 그저 담기만 한 것 같아 보이는 음식들도, 완성된 맛은 천차만별. 샐러드나 요거트보울 같은 음식이 ‘진짜 맛있으면’ 정교하고 복잡하게 조리된 음식들이 맛있는 것과는 또 다른, 꽉 찬 기본기에서부터 온 아주 깨끗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요거트보울은 Yoghurt와 Bowl을 조합한 이름이 의미하는 그대로 우묵한 둥근 그릇에 요거트를 담고 위에 과일과 견과류 등 다양한 토핑을 얹은 음식인데, 별다른 조리 없이 이미 다 만들어진 재료들을 사서 담아내어 주기만 하는 경우도 있고, 요거트를 발효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릇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모두 깐깐하게 직접 만드는 경우도 있다. 담음새 또한 친구집에 놀러 가서 함께 신나게 밤을 지새운 뒤에 아침에 뚝딱 한 그릇 말아 낸 것처럼 편안함을 추구하는 집이 있는 반면, 예술작품을 방불케 할 정도로 세련되고 화려하게 그릇을 꾸며 주는 경우도 있어, 이 간단한 음식 속에도 그 Variation이 각양각색이다.


인생이 재미있어지는 이유는, 화려한 외관이 그 언제나 반드시 맛을 보장하지는 않고, 반대로 담음새가 수수하다고 하여 그 그릇 속에 들어가는 맛과 정성이 결코 덜하지 않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열매는 새로 태어나기 위해 무르익는다


호젓한 골목길에 동그마니 둥지를 튼 작은 식당에선 과연 어떤 요거트보울을 내어 줄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즐거움.


메뉴판에 실린 사진들을 백과사전 보듯 찬찬히 탐독한 뒤, 여름의 태양을 통통하게 머금은 캐슈넛을 한가득 올려 주는 요거트보울을 골랐다. 과일주스보다는 야채주스를 좋아하는데, 마침 케일을 넣고 푸릇푸릇하게 갈아 주는 디톡스주스가 메뉴에 있어 오랜만에 ‘아침주스’도 한 잔 주문해 보았다.



곧 앞에 놓인 주스 한 잔에 뒤이어 나올 요거트보울에 대한 기대감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주스에 들어간 재료들로 컵 가장자리를 장식해 준 이 자신감! ‘우리 주스는 이렇게 싱싱한 재료들로 만들었답니다’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주스는 빛깔마저도 자연에서 온전히 얻어 낸 듯한 사랑스러운 연둣빛이어서 입을 대고 마셔 보기 전부터 믿음이 갔다. 속이 그대로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컵에 달린 진초록색 손잡이는 정성 어린 담음새의 화룡점정.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주스엔 정직하고 싱그러운 풋풋함이 가득했다.



뒤이어 나온 요거트보울은, 한눈에 보기에도 품이 많이 들어간 모습. 요거트보울 한 그릇을 꾸미는 데엔 대단한 조리법이 필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릇 가장 밑바닥에 도화지처럼 하얗게 깔리는 요거트를 직접 발효시키고, 위에 올라가는 그래놀라와 견과류 따위까지 모두 직접 바삭바삭하게 구워 내려면,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치앙마이에서 세달살이를 하는 동안 세련된 카페에서 예술작품처럼 화려하게 꾸민 요거트보울도 대접받아 보고, 오붓한 길모퉁이 카페에서 ‘집밥’ 같은 투박한 요거트보울도 먹어 보았지만, 학창시절 반에서 제일 수줍었던 친구처럼 골목길에 조용히 웅크린 작은 가게에서 ‘홈메이드’의 알차고 정직한 맛과 예술작품 같은 아름다움을 겸비한 요거트보울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간의 요거트보울은 치앙마이답게 화사한 색상의 열대과일들로 알록달록하게 꾸며낸 것들이 많았는데, 오늘의 요거트보울엔 건강한 윤기가 도는 검은빛의 블랙사파이어포도를 가운데 배치하여 한결 무게감 있는 인상을 준다. 얌전한 색깔의 캐슈넛과 그래놀라에 무채색의 치아씨드와 사파이어포도가 더해져 자칫 지루해질 수 있었던 그릇은 맑은 녹색의 마차가루를 감초처럼 뿌리고 가장자리엔 흰색과 빨간색의 용과 조각을 번갈아 얹어 세련된 경쾌함으로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케일주스가 이미 한 차례 보여 주었던 대로, 요거트보울 역시, 두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맛을 품고 있었다.


검은색은 인류의 역사에서 생명보다는 죽음을 더 많이 의미해 온 빛깔인데, 그 모든 죽음은 결국엔 새로운 태어남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일까. 오늘은 그 묵직한 어둠이, 오히려 더 크고 너른 생명을 연상시킨다.


한없이 달콤하게 영근 검은 포도가 여름의 태양에 오독오독하게 그을린 캐슈넛과 만난 순간, 그 진한 어우러짐은 더욱 너른 포용이 되어, 서로의 매력을 한층 더 맛깔나게 살려 주었다.


한낮의 거리


직접 발을 내딛기 전엔 알 수 없는


숙소 근처에 마침 구글지도평점이 높은 티하우스Teahouse가 있어 찾아갔는데, 목적지에 분명 도착했는데도 눈앞에 보이는 건 갖은 빛깔의 청자들을 진열해 둔 도자기매장뿐이다.


Siam은 태국의 옛국호이고 Celadon은 우리가 청자라고 부르는 푸른 빛깔을 의미한다


창문 너머로 언뜻 들여다보아도 카페 같은 건 영 보이질 않는데. 혹시 도자기매장 구석에 작은 탁자 몇 개 마련해 두고 자기네 제품에 차를 대접해 주는 그런 카페인가? 그래도 평점이 높은 데는 이유가 있겠지? 반신반의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는데, 무도회가 열리는 궁전에라도 온 것처럼 널찍한 홀이 매장 뒤편으로 펼쳐져 있다.


안으로 들어설수록 더욱 넓게 펼쳐지는


카페와 복도가 딱히 구분이 없는 데다 복도가 조금 어둑어둑하기까지 해서 ‘정말 영업하는 카페가 맞나’ 하고 우왕좌왕하는데, 종업원이 웃으며 다가와 ‘정원에도 좌석이 있다’고 알려 준다. 카페 구석에 그림처럼 열려 있는 통로로 나가 보니, 녹음이 무성한 정원 구석구석에 숨바꼭질하듯 좌석들이 숨어 있다.


여름의 빛이 스미면, 그 어디나 작품


밖에서 넌지시 들여다보기만 할 때는 이런 곳에 영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아 하마터면 그대로 발길을 돌릴 뻔했는데.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풍경들은, 때론 그 안으로 직접 발을 들여 보지 않으면 그 진짜 모습을 결코 알 수가 없다.



충전을 해야 해서 근사한 정원을 뒤로하고 다시 콘센트가 있는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천장에 난 커다란 창문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자연채광을 최대한 살리다 보니 복도가 다소 어두웠나 보다. 창문의 존재를 알고 나니, 아까는 ‘영업을 혹시 안 하나’ 싶었던 낯선 조도가 운치 있게 다가온다.


깊은 밤을 날아서


치앙마이에서 차전문점은 이미 여러 군데 방문했지만, ‘태국식 차전문점’은 처음인 것 같다. ‘태국식 티타임’에 빠질 수 없는 나비콩꽃차를 넣은 레모네이드와 곁들임 음식으로 태국식 쌈을 주문했다.


나비콩 혹은 나비완두콩버터플라이피ButterflyPea의 꽃은 잘 말려서 우려내면 신비로운 푸른빛을 띠는데, 태국에서는 이 꽃을 차로 마시거나, 밥이나 떡 등 각종 음식들에 색깔을 입히는 데 애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산부가 음용할 시 자궁수축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식품에 나비콩꽃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잘 말린 나비콩의 꽃은 마녀의 망토처럼 아주 진한 보랏빛을 띠는데, 차로 우려낼 때는 재미있게도 어떤 재료와 서로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빛깔이 달라진다.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 주에 마셨던 나비콩꽃차가 검은색에 가까운 보랏빛을 띠어 나는 한동안 그것이 본래 나비콩꽃차의 빛깔인 줄 알고 있었는데, 맹물에 우려낸 나비콩꽃차의 본래 빛깔은 청량한 푸른색에 가깝단다. -때문에 나비콩꽃차는 블루티BlueTea라고 불리기도 한다-


뽀얀 우유와 만나면 이 푸른 빛깔은 한층 더 청명해져 맑게 갠 하늘 같은 화사한 색감을 뽐내지만, 레몬이나 오렌지주스 등 산성을 띠는 재료들을 섞게 되면, 푸르른 낮은 순식간에 저물고 달빛이 스산히 어린 밤하늘을 닮은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변해 버린다.


밤빛을 닮은


곧 다가올 밤을 기다리는 오후. 밤의 신비를 품은 보랏빛 나비콩꽃차가 내 앞에 놓였다. 컵 밑바닥에 깔린 레몬주스가 마치 저 멀리서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의 빛 같다. 빨대로 잘 저으면, 깊은 밤과 얕은 새벽은 서로 뒤섞여, 새벽이 밝아오기 직전의 미명이 된다.


찰나의 향기는 붙잡아 둘 수 없지만


초록색 잎사귀에 캐슈넛과 꽃잎, 건새우와 코코넛, 고추와 라임 따위의 향신료들을 고루 넣어 앙증맞게 싸 먹는 태국식 쌈 ‘미앙캄Miang Kham’이 나왔다.



징자이마켓에서 호기심에 사 먹었던 꽃쌈과 같은 음식인데, 속에 캐슈넛 대신 땅콩을 넣는 등 속재료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태국식 쌈엔 모두 동남아시아에 자생하는 후추과 식물인 베텔-Betel, 한국어로는 구장나무라고 한다-의 잎사귀가 사용된다.


베텔의 잎사귀는 겉보기에도 한국식 쌈야채들과는 사뭇 다른데, 반질반질하고 살짝 두께감이 느껴지는 모습과 같이 씹어 보면 약간 질깃질깃한 질감이 있어 ‘야채’보다는 ‘잎사귀’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먹다 보면 모두 부드럽게 씹히지만, 아무래도 처음 씹을 때 서겅서겅한 느낌이 있다 보니 한국식 쌈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드는데, 이 잎사귀 특유의 질감이 속재료인 캐슈넛과 태국고추, 코코넛칩 따위의 식감들과 매우 잘 어우러진다.


꽃 떨어져 지기 전에


한국식 쌈이 잘 차려진 식탁을 한꺼번에 입에 야무지게 쓸어 넣는 ‘본식’이라면, 태국식 쌈은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다양한 향과 질감들로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 입맛을 돋워 주는 ‘전식’의 역할을 한다. 고추와 라임 같은 향신료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게 과연 차와 어울릴까’ 싶지만, 아기자기한 씹는 맛에 다양한 향이 과하지 않게 어우러져 차에 곁들이기 딱 좋았다.


고기, 야채, 밥 따위를 터질 듯 채운 풍성함이 한국식 쌈의 매력이라면, 태국식 쌈은 여름의 녹음을 정성스레 그러모아 초록색 잎사귀 속에 오밀조밀 담아낸 싱그러움이 매력인 것 같다. 꽃에는 크게 두드러지는 식감이나 맛이 없지만 미앙캄 속엔 온전한 한 송이가 아닌 낱장이라도 꽃잎이 꼭 들어가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쌈을 먹는 이유가 허기가 아닌 낭만을 채우기 위함이기 때문이진 않을까.



자그마한 골목길을 거니는 걸음마다, 스치는 바람 속에 꽃향기 실려오지만. 그저 한껏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는 붙잡아 둘 수 없는 찰나의 향기를, 손바닥만 한 나뭇잎 속에 고이 담아 꼭꼭 되씹으며 곰곰이 음미해 보려고, 태국사람들은 이 작은 쌈을 먹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태양은 밤을 마중하러 떠나고


마중하러 가는 길


어느덧 해질녘, 숙소 근처의 팟타이 노점으로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팟타이를 넓적한 쌀국수, 얇은 당면, 계란면 등 여러 가지 면으로 요리해 주는데, 안에 들어가는 재료도 계란만 들어가는 것부터 돼지고기, 닭고기, 새우까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새우가 들어가는 넓적한 볶음국수를 하나 주문했더니, 쪽파, 숙주, 푸성귀와 반으로 자른 라임 하나를 먼저 내어 준다. 아직 국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정갈하게 손질한 싱싱한 야채들을 보니 요리가 완성된 모습을 벌써 다 본 것 같다.


소박한 접시 하나하나가 모두 작품


곧이어 나온 볶음국수는,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훌륭한 모습! 큼직한 왕새우 두 개를 고명으로 올리고, 잘게 자른 태국식 두부도 넉넉하게 넣어 주었다. 예전에 태국친구가 ‘팟타이가 집에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나려면 반드시 두부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집에서 만든 김치찌개엔 꼭 두부가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보다- 그 말 때문인지 이후로 볶음 국수에 잘게 자른 태국식 두부가 듬뿍 들어가 있으면 꼭 ‘집밥’이라도 대접받는 것 같은 정겨운 기분이 든다. 태국식 두부는 단단하고 고소한 맛이 강한 편이어서 특히 볶은 국수요리와 궁합이 좋은 것 같다.



볶은 국수의 맛을 좌우하는 건 첫째론 단연 화력이지만. 치앙마이에 온 뒤로 불맛이 화끈하게 밴 짭잘한 볶음면에 신선한 라임즙을 듬뿍 뿌리고, 아삭아삭한 숙주와 쪽파를 잔뜩 곁들여 먹는 즐거움을 알아 버렸다.


사방에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은 밤의 노점. 거리의 그 모든 것들이 색을 잃어갈수록, 야채들이 줄기와 잎사귀마다 야무지게 머금은 싱그러움은 더욱 선명해져, 짭조름한 윤기가 차르르 밴 넓적국수와 함께 새벽이슬을 닮은 아삭아삭함을 한껏 만끽했다.


곧 도착할 손님들을 위해 망고찹쌀밥을 사려고 했는데, 이런, 긴 휴가를 떠난 모양이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마중하러 가는 길. 공항엔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날 기꺼이 나를 마중 나와 주었던 푹푹한 여름공기가 다정하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바람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겨울의 한복판에서 갑작스레 여름 한가운데 뚝 떨어졌던 약 두 달 반 전의 나와 꼭 같은 표정으로, 곧 도착한 손님들은 여름의 정겨운 포옹에 화답했다.


어느덧 훌쩍 자정을 넘긴 시각, 떠들썩한 인사는 내일 아침으로 미루어 두고 모두 서둘러 잠을 청했다. 약 두 달 반의 ‘나 홀로 여행’이 끝나고, 날이 밝으면 저 익숙한 길들로 이제는 ‘함께’ 보물찾기를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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