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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ㅅㅁㅅ Jun 01. 2017

러너 사이를 흐르는 무언가

2017 나이키 우먼스 하프가 남긴 단상


'응원' 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해보았다


'곁에서 성원함 또는 호응하여 도와줌'


여기서의 '곁'은

아마도 정서적인 거리일 것이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가까운

내 곁의 가족, 연인, 친구에게

크고 작은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이따금씩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진심 어린 응원을 하게 되는데,


지난 2017 나이키 우먼스 하프는

내게 그런 날이었다.


Pic by Candydeshot

    

12km, 우리 모두의 축제


첫 응원 스팟은 12km 즈음이었다.


하프 마라톤을 처음 도전하는 러너에겐

가장 즐거운 구간이다.


그간의 도착점이었던 10km를 지나

새로운 세계에 한발씩 내딛는 경험은

러너라면 잊기 힘든 행복한 기억이다.


Pic by Candydeshot


덕분에 잠실대교 Cheering zone의

매 순간은 축제 분위기였다


환호와 응원, 흩날리는 꽃가루 아래

즐겁게 손뼉을 마주하는 우리가 있었다.


Pic by Candydeshot


20km, 간절하고 뜨거웠던


두 번째 응원존인 20km 지점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한 발 내딛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보일만큼

길 위의 사람들은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Pic by Candydeshot


지친 얼굴로 달려오는 러너들을 맞이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겨운 일이었다.


그들의 힘듦과 고통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듯했고

이유 없이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에

자꾸만 울컥했다.


그래서인지 20km 지점은 기억이 희미하다


지독히도 더웠던 날씨,

러너들의 찡그린 얼굴과 무거운 발걸음,

소리치며 응원하는 나의 목소리,


그런 기억의 조각들이 뒤섞여

순간의 이미지들로만 드문드문 남아있다


Pic by Candydeshot


대회는 끝났지만

그 날 뜨겁게 피어났던 뭉클함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 뭉클함의 출처에 대해 고민하다

예전에 적어놓은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Pic by Candydeshot

 

수많은 러너들과 출발선 앞에 서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내가 이겨야 할 경쟁자 일까?

그보단 42.195km라는 긴 여정을 함께 떠날

동료라는 감정이 앞선다

처음 보는, 심지어 말도 통하지 않는 사이지만

우리가 러너라는 사실은

그런 모든 것들을 의미 없게 만들어준다

-

2017.04. 파리 마라톤 출발선에서


Pic by Candydeshot


이 메모 한 장이

그 동안 달리며 계속 느껴 왔지만

무심코 스쳐 보낸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대회 현장의 응원부터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러너와의 눈인사까지,


나는 그 순간마다 러너 사이에 흐르는

뜨겁고 끈끈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느껴왔다


표현하기 참 애매한 이런 정서적 유대감은

우리 모두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달리지 않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Pic by Candydeshot


경쟁자가 없는 길 위에는 오직 동료만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완주를

진심을 다해 축하해줄 수 있고,


누군가의 부상에

내 일인 것 마냥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지난 주 20km 지점에서 뜨겁게 올라왔던 뭉클함도

러너 사이에 흐르는

이런 정서적 유대감의 연장선이었으리라.

 

지난 5월 21일,

각자의 전장에서 스스로와 치열하게 싸웠던

모든 여성 러너들에게

다시 한번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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