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제대로 본 지도 5개월이 지났을뿐더러, 사천 앞 다바다에선 마스크를 제대로 써본 적도 없었다. 그만큼 언제나 탁 트인 바다와 탁 트인 얼굴들을 대면하며 웃고 떠들던 곳이었다. 하지만 떠나기 며칠 전부터 알아본 서울과 부산의 상황, 특히 서울의 상황은 심각했다. 2.5단계로 격상된 직후라 혼란의 정도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술집이 9시에 문을 닫는다고? 술 마시러 가는 건데 큰일이었다.
KTX가 이렇게 답답한 공간이었나? 마스크로 가득한 열차 안은 더운 숨이 가득했다. 물론 에어컨 하나는 빵빵했지만, 열차 안의 공간감은 마스크와 나 사이의 거리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마스크와 달갑지 않은 뽀뽀를 쉴 새 없이 해하는 좁디좁은 공간 안엔 답답한 숨만 순환하고 있었다. 문이나 열어 볼까. 아차, 여긴 최고 시속 400km가 넘는, 개통 당시 어느 기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찬호 구속의 2배는 거뜬히 넘는 KTX였지.
그런데 최고 시속은 어떻게 젠걸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야, 다 비켜! 아시아 최고 시속 찍으러 간다"하고 제지 않은 이상 요즘에 타는 KTX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는 것 같다.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보여줬던 권민재의 F1실력보다도 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밟은 송충이처럼 온몸을 꿈틀거리며 버티고 버텼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심장이 아파온 것이다. 냉큼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로 세수하고, 통로에 앉아 찬기운을 맡았다. 비슷한 색감들이 창밖에 보였다. 하늘색 물감과 초록색 물감을 잔뜩 짠 다음에 플라스틱 자로 쭉 눌로 칠한 것처럼 계속되는 색채의 릴레이 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KTX에서 바라본 풍경은 다 그랬다. 국가차원에서 계획한 풍경인가 싶을 정도로 항상 똑같은 풍경의 잔상이 KTX라는 명사 뒤를 따른다. 부산에서 강릉을 올 때도, 강릉에서 부산을 갈 때도, 강릉에서 서울을 갈 때도, 서울에서 강릉을 올 때도,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도, 부산에서 서울을 갈 때도. 설마 지금 서울이 아니라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인가 싶어 볼을 꼬집었다.
나의 열차는 마음만 급했지 여유조차 없이 달렸었다. 정해진 목적지가 있다 보면 조급해 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정차역은 무시한 체 혼자 내달리기 일수였다. 승객 없는 열차는 언제나 공허함만을 담은 체 성공이라는 추상적 목적지를 향해 달릴 뿐이었다. 집과 차와 남부럽지 않은 무언가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연료 삼 아말이다. 그렇게 내달리기만 하는 열차의 하루 풍경은 항상 똑같았다. 가끔씩 마시는 술자리의 인상 외엔 아침마다 느끼는 그 마음의 진통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KTX가 느리게 느껴진 이유는 정차역이 많아서다. 잠시 멈추고 내릴 사람은 내리고, 새롭게 탈 사람은 다시 타기 때문에 더디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정차역이 필요하다. 보낼 건 보내고, 채울 건 채우는. 그런 의미가 아니더라도 아름답거나 새로운 풍경이 있으면 잠시 멈춰 새워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루라는 시간이 항상 똑같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는 것, 열차 안에선 스처보내던 꽃에서 향기가 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바다가 생각보다 깊지 않고, 시원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이런 것이야 말로 원래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다. 심장이 뛰어 시간을 셈할 수 있는 한, 사실 정차역만 있을 뿐 목적지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또다시 어디로 갈지 모를 선로 위에 섰다. 호주의 문턱에서 코로나 덕분에 고장 났다, 강릉으로 노선을 변경해 잠시 내렸었다. 또 어디가 될지 나도 알 수없다. 누군가 처럼 천재도 아니고 물려받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평범한, 어쩌면 좀 모자란 나로선 지름길을 바랄 순 없다. 그저 나의 속도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묵묵히 걸음을 멈추지 않을 뿐. 그 와중에 꽃밭이 있으면 그쪽으로도 가고, 바다가 있으면 또 그쪽으로도 빠져보면서 느긋하게 하지만 반듯이 당도해 보려 한다.
다음은 어딜까. 나는 나를 어느 곳으로 이끌까. 조금은 발걸음이 가볍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에 급하게 갈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