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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고 Sep 07. 2023

청소하는 날

   1년 전에 손절했던, 친구였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원도 갔다며? 하던 일은? 그런 시골에서 뭐 해먹고 살겠냐? 다시 이직이나 해 등등. 대충 그런 말들을 쏟아냈고 내가 자기를 손절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는구나 싶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사실 할 말은 많았지만 구구절절하지 않다. 말해도 이해할 생각이 없는 사람인 걸 알았고, 이해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나다움을 설명하는 일이란 굉장할 정도로 굉장히 피곤하니까. 무엇보다 내가 하는 모든 대답이 그에겐 변명으로 공급돼 비꼼과 조롱의 재료로 사용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강원도로 이주한 친구 걱정 사이사이에 자신의 잘남을 끼워 파는, 이 무료한 광고 전화가 더 길어질 것도 뻔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준비한 모든 대사가 끝났는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타이밍을 틈타 말 다 했냐? 수고했다. 끊을 게, 뚝. 



   이번에 번호까지 차단, 싹뚝. 그런데 기분이 뚝, 뚝. 언제나 이런 식이다. 변명처럼 들리더라도 할 말은 할 걸. 끊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도시 생활을 접고 강원도로 넘어온 게 누군가에겐 패배자처럼 보일 거라 예상은 했었다. 이겨내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집념으로 버티는 곳이 도시기에. 벗어나는 순간 성공이라는 흔한 권력에게 유배당한 사람으로 취급될 거라는 예상 말이다. 정작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다수보다 적을 거고, 굳이 티 내서 말하는 사람은 더 드물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만나기 드물다는 지뢰가. 1년 전에 버렸던 바로 그 지뢰가! 친절하게 제 발로 걸어와 코앞에서 터져 버렸다. 내가 강원도로 이주한 이유와 의도가 어떻든 간에 제멋대로 터진 지뢰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던 기분을 뚝뚝 떨어트렸다. 



   기분을 헤집어 놓은 건 그놈인데, 왜 짜증과 화는 온전히 내 몫일까. 싫은 사람과 아무리 거리를 두려 해도 세상은 내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둘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녀석 같다. 손절한 인간이 1년 만에 전화 오는 꼴을 보니 그렇고, 먹고 살려고 출근한 회사에 지뢰들이 널려 있는 꼴도 그렇고. 세상사, 바꿀 수 있는 건 자신뿐이기에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두고 감정의 평균치를 맞추는 나만의 훈련을 했다.



   축구 선수들이 주황색 꼬깔콘을 놓고 드리블 훈련을 하듯. 싸리 빗자루와 물걸레, 가정용 소독제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제멋대로 놓인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다 보면 어디 둬야 할지 모를 짜증과 화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고, 선반이나 책상 위 먼지들을 해봐야 소용없는 잡생각들과 함께 닦아 내기도 한다. 정성스레 쓸어 모은 지저분함을 쓰레받기에 담는 쾌감도 빼놓을 수 없다. 깨끗해지는 걸 실시간 라이브로 확인하는 그런, 그런 쾌감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청소하고 나면 목욕을 끝낸 사람처럼 감정이 노곤해진다. 



   내 것을 하나하나 가꾸는 일에 애를 쓰다 보면 어느새 기쁨이 반짝거린다. 진공청소기가 제아무리 간편해도 그 기쁨을 탐구하는 데는 장애물이다. 간편함은 시간을 생략해 정성이라는 서사를 요약해 버리니까. 시간을 늘려 조곤조곤하게 집 안 곳곳을 예뻐하다 보면 뚝 떨어졌던 감정에 기쁨이 희석되면서 다시 평균치가 맞춰진다. 아직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나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감정을 어지럽히는 타인의 무례함. 청소 한 번이면 먼지보다 하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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