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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김 May 31. 2016

무엇이었길래

인연의 굴레 속에서

어떻게 만났길래 잊히지 않을까

도대체 우리는 무엇이었길래 이토록 쉴 틈이 없을까

가끔씩 열쇠는 잠갔는지 기억이 안 나 되돌아보고

손톱이 이만큼 길어졌단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지퍼를 잠그지 않아 의도치 않게 속마음을 비치고

방금 읽었던 책 구절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펼친다


머리에 핏줄이 선다

끊임없이 흐르지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배꼽 아래에서는 단단히

배꼽 위에서는 유약이

나와 같이 태어난 것입니까


그렇게 내가 태어난 것입니까



 살다 보면 거미줄 같은 인연들이 몇 있습니다. 그것이 악연이든 필연이든 어떻게든 만나게 되고 앞으로 살아갈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삶 곳곳에 그 사람들의 태도와 시각이 들어있고 우리는 그걸 발견할 때마다 복합적인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때로는 분노하거나 환영하거나, 그리움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서글픔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을 볼 때면 사람은 절대 혼자 살 수는 없는 거 같습니다.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인연들을 생각하다 보면 전생은 과연 무엇이었길래 이토록 계속 만나게 될까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의 악연은 전생에서도 과연 악연이었을까? 내 옆에 있는 좋은 사람들은 전생에서도 과연 친했을까? 우리에게 어떤 서사가 있기에 만나게 된 것일까?


 우리에게 어떤 서사가 있건 악연이건 필연이건 나는 당신을 만난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만나 아프기도 하고 괴롭고 망가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아픔이 무뎌질 때쯤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망가진 내 모습을 보면서 밑바닥에 있는 생의 의지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성숙해졌습니다.


 제 입장에서만 인연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게 때로는 과분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연 그 사람들에게도 나는 인연일까? 누군가에게 나는 악연이 아닐까? 만약 제 자신이 누군가에게 악연이면 참 괴로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돼 상처를 줬다면 늘 가슴속에 미안함이 남을 거 같습니다. 보답할 수 없다면 평생의 짐이 되겠죠. 상대방에게는 늘 양연이길 바라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기에 인연인 거겠죠. 평생의 머무름이 아닌 떠날 때는 떠나야 하는 헤어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헤어지더라도 나는 당신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길 바랍니다. 당신이 내게 악연으로 다가왔지만 양연이 되길 바라고, 우리가 반드시 만나야 될 필연이 되길 바랍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그 무엇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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