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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김 Jun 09. 2016

그대가 되어

어느 시의 한 대목에서


그대가 되어 시를 읽어봅니다

그대의 눈동자로 시를 따라 가봅니다

그대가 접어놓은 어느 시의 한쪽 귀퉁이

가슴속 품은 그 말을 몰래 들여다봅니다


그랬군요

그대 이렇게 힘들었나요?

그대를 따라 울어봅니다


오늘은 내가 대신 울어줄게요


마음을 다해

그대가 되어

그대를 생각합니다


 L양과 나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시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같이 서점에 가더라도 제일 먼저 시집을 살펴봤다. 새로 나온 시집이나 서로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했을 때 공유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L양이 내게 선물을 준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포근한 봄바람이 불던 어느 날이었다. L양은 하늘하늘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내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L양의 머리는 아련하고 그리운 분위기를 풍겼다. L양은 사뿐사뿐 다가오더니 이내 내 앞에 멈춰 서고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날따라 무언가 수상했던 L양의 모습에 나는 내심 긴장을 했었다. L양은 내게 눈을 감아보라고 했다. 나는 L양의 말에 따라 살포시 눈을 감았다.

왜 무슨 일인데?

 나의 물음에 L양은 손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나는 군말 없이 손을 내밀었고 무언가 사각 모양의 물건이 올려짐을 느꼈다. 몇 번 이리저리 만져보니 책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야? 나한테 주는 거야?

 나는 놀라 눈을 번쩍 뜨고 L양에게 물었다.

너도 공감할 거 같아서. 마음이 참 아려와.

 L양은 먼 허공을 응시하듯 시선을 던지며 내게 말했다. L양의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회상에 젖게 만들었다. 마치 돌아올 수 없는 봄날의 추억처럼 애틋하고 서글펐다. 마침 봄바람도 불어오니 봄날의 추억이 더 멀리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어 L양의 준 시집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시집은 딱 L양의 취향이었다. L양은 어렵고 복잡한 시보다 맑고 깨끗한 느낌의 쉬운 시를 선호했다. 종종 시를 읽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나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그리고는 '흠.. 어렵다' 하며 이내 다른 시집을 골라 읽었다. L양은 어린아이가 읽어도 이해하기 쉬운 그런 시를 좋아했다. 깊이 공감할 수 있고 시 구절이 마치 우리의 일상어처럼 표현된 시를 좋아했다.

 시를 읽다 보면서 몇몇 시의 한쪽 귀퉁이가 접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날의 읽은 곳을 나타내기 위하여 접어 놓은 걸 수도 있지만 L양은 책을 함부로 접거나 더럽히는 것을 싫어했다. 보통 읽은 곳을 나타낼 때에는 책갈피를 사용하였다. 그런 L양의 특징을 알기에 나는 접어놓은 시들을 더 유심히 읽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접어놓은 시 종이 위에 물자국이 마른 흔적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L양의 눈물 자국이었다. L양은 이 시들을 읽으면서 많이 아팠다. 울면서 시를 읽었을 L양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시렸다.

 나는 그렇게 L양이 되어 시를 읽어 보았다. L양이 울었던 시들은 주제가 다양했다. 초라한 자신을 향한 시도 있었고 지울 수 없는 그리움에 관한 시도 있었다. 또한 불효한 자식으로서의 모습도 그려져 있었고 정체성에 관한 시도 있었다.

 L양이 되어 시를 읽어보니 덩달아 코끝이 시렸다. 이렇게 힘들었을 L양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무겁고 안쓰러웠다. 그러더니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결국 L양이 접어놓은 시 위에서 나도 그만 울어버린 것이다.


 그날은 마음을 다해 L양을 따라 울었다.


그대가 되어. 그대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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