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우선순위에서 밀린 소비
며칠 전 지갑을 정리하다 쿠폰들을 발견했다. 신림 백순대집 쿠폰, 헌혈하고 받은 영화관람권 등이 있다. 유효기간이 며칠 안 남은 스타벅스 쿠폰도 찾았다. 얼른 써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 메모장 안에 '스타벅스'라고 적는다.
오전에 외근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기 전에 역 근처 스타벅스에 간다. 출근 때마다 회사에 거의 다 왔다는 이정표로 보기만 했지 들어온 건 처음이다. 점심시간에 갔던 그 어떤 식당보다도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꽤 긴 줄을 뒤에서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되어서 쿠폰을 보여주며 사용 가능한지 물었다. 어떤 음료든 사이즈 상관없이 시킬 수 있는 쿠폰이라고 한다. 비싼 음료가 이득이라는 생각에 가격이 가장 센 음료를 벤티사이즈로 주문한다. 자바칩도 공짜라고 해서 추가한다. 주문한 음료와 자바칩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선택 가능한 옵션 중 가장 비싸므로 좋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 마시고 있는 외우기 힘든 이름의 음료는 맛있다. 내가 원했던 맛인가. 애초에 무엇인가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쿠폰을 사용하고 싶어서 카페에 들어왔다. '음료를 마시다'라는 행동의 출발점이 갈증이나 음료취향이 아니라 유효기간 임박 쿠폰의 발견이다. 음료를 반쯤 마시고 생각한다. 다른 조건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욕망에 따라 소비한 적이 있었나.
치킨을 먹고 싶으면 쿠폰이 꽤 쌓인 브랜드에서 시키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는 포인트를 모으는 중인 쇼핑몰 사이트를 이용한다. 책은 중고서점에 있는 재고 안에서 고르고, 극장은 영화할인권이나 관람권이 생기면 간다. 욕망 대신 세상이 내게 권하는 소비양식에 따라 나의 지출이 결정된다.
여행지라고 소비패턴이 달라지진 않는다. 일본 여행 때는 편의점에 갈 때마다 신기해 보이는 음료보단 원 플러스 원 상품을 고르고, 입장료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관광지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여행은 일탈이 아니라 일상의 연장이기에 소비습관도 비슷하다.
세상이 알려준 소비패턴에 길들여졌고 그 안에서 내 욕망을 찾는다. 욕망의 폭이 많이 좁혀진 상태라 선택은 오히려 쉽고 편하다. 다만 망망대해 같은 내 욕망을 목격할 틈도 없을 뿐. 내 욕망을 쿠폰과 각종 혜택 크기로 잘라서 소비할 때마다 꺼내 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준 루틴에 내 욕망을 최적화하는 건 이제 일상이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다음 소비를 정해줄 쿠폰을 확인한다. 보름 남은 아이스크림 기프티콘이 있다. 사용 가능한 욕망의 유효기간이 보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