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함께 여행하고 싶진 않습니다
'여행 좋아하는데 학생 때랑 이직 준비할 때는 왜 안 갔어?'
그동안의 여행에 대해 말하면 받는 질문이다. 대학생 때 방학을 활용하거나 이직 준비를 하면서 여행을 가는 이들이 많다. 비슷한 상황에서 나의 선택은 여행이 아니었다. 첫 여행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여행은 회사에 소속된 채 휴가로 다녀왔다.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상태일 때만 '여행'이라는 선택지가 생기는 걸까. 돌아갈 노동의 자리가 있을 때만 여행을 택했다.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배낭여행을 가는 줄 알았다. 결국 자퇴로 끝난 첫 번째 대학생활은 내내 심적으로 불안했다. 수능을 다시 보고 들어온 대학에서는 돈이 생겨도 생활비로 쓰거나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는 게 우선이었다. 취업준비를 해보겠다고 휴학을 한 해에도 공모전과 대외활동이 우선이라 여행은 생각조차 못했다. 여행의 뜻이 '낭만'이라고 믿었고, 자금과 마음의 여유 없이 그것을 누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생애 첫 퇴사 후에는 마음이 만들 수 있는 최대치의 불안을 몸으로 느꼈다. 지난 회사생활을 곱씹고, 새로운 이력서를 쓰는 시간에도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장점보단 단점, 기쁨보단 분노가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주변에서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말해도, 불안이 피부 사이사이에 박혀있어서 여행의 설렘을 삼켜버릴 게 뻔했다. 당장 짐을 챙기라고 해도 캐리어에 무엇을 넣을지보다 내 안에 있는 불안을 어떻게 뺄지부터 고민해야 할 테니까.
내가 정의한 '여행'에는 손톱만큼의 불안도 없어야 한다. 없는 걱정도 사서 하는 내게 불안을 짊어지고 가는 여행은 고행이 될 게 뻔하다. 비행기 티켓을 사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캐리어에 불안을 넣는다면 수화물 용량을 초과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비행기 티켓을 일찍 사면 저렴하겠지만 몇 달 뒤 내가 가질 불안을 짐작하기 쉽지 않아서 망설인다.
다음에 퇴사하면 그때는 여행할 수 있을까. 지금도 입버릇처럼 나중에 회사 그만두면 몇 달 여행을 가겠다고 말한다. 그때쯤 높은 자존감과 마음의 안정이 생겼기를 바라며 주문처럼 하는 말이다. 어쩌면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채 여행을 다니는 게 판타지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주머니에 불안을 넣고 그게 얼마나 커지는지 지켜보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내게 여행은 '해결'이 아니라 '유예'다. 내 삶에 대한 거대한 질문에 대해 힌트를 줄 순 있지만 답을 주진 않는다.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가 여행지에서 해결될까? 모든 걸 잊고 즐기고 돌아와서 마주하거나 내내 걱정에 시달리다가 오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오히려 여행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는 게 불안을 더 심화시키지 않을까. 해결될 거였다면 애초에 여행지에 들고 오지도 않았을 거다. 불안을 유예하는 여행은 어떤 식으로든 겪고 싶지 않다.
요즘 잘 지내냐는 안부에 여행 중이라고 답하거나 여행 계획에 대해 말한다면 잘 지낸다는 말이다. 부디 앞으로도 여행을 꿈꿀 수 있기를 바라며 출근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