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키지 말고 뱉고 싶은 말, '좋다'
생애 첫 유럽여행은 프랑스 파리였다. 첫 직장에서 처음으로 가는 휴가였다. 외국 한 번 다녀온 적 없었기에 이왕이면 가장 멋진 도시를 가고 싶었고 당시 내 환상 속에 가장 멋진 도시는 파리였다. 심지어 출발 전날 급하게 예약한 숙소는 에펠탑 근처였다. 에펠탑 근처가 나의 숙소라니! 시작도 전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막상 여행이 시작되니 파리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것조차도 벅차게 느껴졌다. 정보도 경험도 부족한 상황에서 숙소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캐리어를 들고 도착한 호스텔은 작았지만 유럽에 와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용서가 됐다.
숙소에서 나와서 가장 가까운 관광지인 에펠탑으로 갔다. 파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막상 밟고 나니 이 땅도 별 거 없구나라는 느낌과 당장 여기서 며칠 보내는 것조차 굉장히 막연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건을 팔려는 잡상인들을 뚫고 도착한 에펠탑에서는 말을 잃었다. 감동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감흥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스스로도 많은 고민을 했다. 에펠탑을 보면 엄청 좋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의문과 함께 에펠탑 앞에서 즐거워하는 다른 이들을 쳐다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파리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길을 잃은 한국사람들을 만나서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에펠탑의 감흥 없음에 대해서 억울한 사연을 말하듯이 토로했다. 나의 토로가 끝난 뒤 그들과 함께 에펠탑에 갔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찾은 에펠탑은 며칠 전 내가 갔던 에펠탑과 다른 관광지인가 싶을 만큼 굉장히 큰 감흥을 줬다.
같은 에펠탑인데 왜 감흥이 다를까에 대해서는 몇 번의 여행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차이는 간단했다. '좋다'라는 말을 뱉었을 때 옆에서 들어주고 동조할 사람이 있느냐의 문제였다. '좋다'라는 표현은 들어주는 이가 있어야 완성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혼잣말로 '좋다'라고 말하고 지나간 에펠탑과 누군가에게 '좋다'라고 말하고 동의를 얻은 에펠탑은 같은 장소였지만 다른 감정으로 기억되었다.
'좋다'라는 말의 의미가 혼자일 때와 함께일 때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 내겐 에펠탑의 잊을 수 없는 의미가 될 것 같다. 그러므로 좋다, 에펠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