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때마다 메는 가방
여행 때마다 메는 백팩이 있다. 처음으로 유럽을 갈 때 더러워지거나 찢어져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가방으로 골랐는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젠 여권, 휴지, 우산 등을 가방 속 어디에 배치해야 될지가 정해져서 다른 가방은 좀처럼 상상이 안 된다.
여행지에서는 매일 밤 숙소에서 가방을 정리한다. 각종 입장권과 안내 팸플릿, 빵 봉지와 물병 등의 나의 하루를 설명하는 단어가 되어준다. 자기 전에 쓰는 여행 일기도 주로 사물을 참고해서 적는다. 하루의 마지막은 다음날 들고나갈 지폐나 예매 티켓 등을 가방에 넣으며 마무리한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가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가방에 단 자물쇠다. 열 때마다 굉장히 귀찮지만 내가 번거로워야 소매치기도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돌아다닌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오면 시차보다 자물쇠 없는 가방이 더 어색하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소매치기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는데 자물쇠가 큰 몫을 했을 거라고 믿는다.
만약 다음 여행에서 백팩이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더러워지거나 찢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버리기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가방인데 이제는 내 여행의 유일한 목격자로 자리매김했다. 비를 맞고, 다치고, 뛰던 순간마다 내 뒤를 봐주거나 안아준 것은 항상 가방이었으니까.
당연히 다음 여행에도 이 가방을 메고 갈 생각이다. 너무 익숙해져서 어느새 많이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하고 선택했는데 이젠 이 가방이 아닌 여행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편안함이 여행의 미덕이라는 사실은 내내 나와 함께해준 가방 덕분에 깨달았다.
그러므로 정중하게 부탁해야겠다. 다음 여행 때도 나와 함께 해주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