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물과 친해지는 기간

여행 때마다 메는 가방

by 김승

여행 때마다 메는 백팩이 있다. 처음으로 유럽을 갈 때 더러워지거나 찢어져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가방으로 골랐는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젠 여권, 휴지, 우산 등을 가방 속 어디에 배치해야 될지가 정해져서 다른 가방은 좀처럼 상상이 안 된다.


여행지에서는 매일 밤 숙소에서 가방을 정리한다. 각종 입장권과 안내 팸플릿, 빵 봉지와 물병 등의 나의 하루를 설명하는 단어가 되어준다. 자기 전에 쓰는 여행 일기도 주로 사물을 참고해서 적는다. 하루의 마지막은 다음날 들고나갈 지폐나 예매 티켓 등을 가방에 넣으며 마무리한다.


1509399796874.jpg 내 모든 여행을 함께한 푸른백팩은 아직까지 멀쩡하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가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가방에 단 자물쇠다. 열 때마다 굉장히 귀찮지만 내가 번거로워야 소매치기도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돌아다닌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오면 시차보다 자물쇠 없는 가방이 더 어색하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소매치기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는데 자물쇠가 큰 몫을 했을 거라고 믿는다.


만약 다음 여행에서 백팩이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더러워지거나 찢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버리기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가방인데 이제는 내 여행의 유일한 목격자로 자리매김했다. 비를 맞고, 다치고, 뛰던 순간마다 내 뒤를 봐주거나 안아준 것은 항상 가방이었으니까.


당연히 다음 여행에도 이 가방을 메고 갈 생각이다. 너무 익숙해져서 어느새 많이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하고 선택했는데 이젠 이 가방이 아닌 여행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편안함이 여행의 미덕이라는 사실은 내내 나와 함께해준 가방 덕분에 깨달았다.


그러므로 정중하게 부탁해야겠다. 다음 여행 때도 나와 함께 해주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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