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면세점에서 초콜릿을 고르다
책장 정리를 하다가 마드리드에서 산 초콜릿을 발견했다. 초콜릿이 담긴 케이스에는 신화에 나올법한 정령이 그려져 있다. 친구를 주려고 샀던 초콜릿이다. 먹어버릴까 하다가 다음에 만나면 주기로 한다. 초콜릿의 유통기한은 꽤 길다. 반년 만에 꺼내본 초콜릿인데 친구와 연락 안 한지는 반년이 넘었다. 초콜릿보다 빨리 녹아버린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관계를 냉장고에 넣고 다시 얼릴 수도 없고.
여행 와서 쇼핑을 한 적이 없다. 그 시간에 건물 하나라도 더 보자는 생각이 크다. 유일한 쇼핑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공항 면세점에서 이뤄진다. 가족, 친구, 회사팀원들의 선물을 생각하다 보면 결론은 초콜릿이다. 달콤함은 실패하지 않을 테니까. 수많은 선택과 변수와 함께 했던 여행의 막바지에는 안전한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여행을 많이 할수록 여행의 패턴은 일정해진다. 비행기 수속 밟을 때, 숙소 체크인 할 때, 도시를 여행할 때, 밥을 먹을 때 내 나름의 규칙이 생긴다. 공항에서 초콜릿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진열된 다양한 상품들의 브랜드, 맛, 모양, 패키지디자인 등을 보며 선택한다. 가장 크게 고려할 곳은 이것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다.
지난달 다녀온 이탈리아에서도 로마 피우미치노공항 면세점의 다양한 초콜릿 앞에서 선물할 이들을 떠올렸다. 기본값처럼 몇 명의 얼굴이 떠올랐고,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떠올린 이도 있다. 이전 여행까지는 계속해서 챙겼지만 이젠 멀어진 이도 있다. 여행경비에서 '기념품'으로 분류했던 비용이 줄었다. 내 관계도에서 '인연'으로 분류했던 이도 줄었다.
귀여운 패키지디자인의 초콜릿부터 딸기맛, 다크초콜릿 등 다양한 초콜릿을 품에 들고 초콜릿 코너를 계속 둘러본다. 영원한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인연도 사라지고, 초콜릿을 사는 순간이 여행에서 사라지는 날도 올까. 다음 여행에서도 초콜릿을 넉넉하게 사고 남은 것을 집안 어딘가에서 발견하는 순간이 찾아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