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잠긴 산골 마을이 옹기종기 어깨를 비비며
잠을 청하는 시간, 청정한 밤하늘에 보름달이 만삭의 배를 끌어안고 밤마실을 나와있다.
휘영청 밝은 달빛에 야생의 자유를 누리던 태곳적 자유가 그리웠던 것인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아랫마을 개들이 유독 요란하게 짖어댄다.
산골짜기를 휘돌아 내려오는 밤바람에서 한기가 몰려온다. 어깨가 시리고 무릎이 시리고 가슴이 시리다. 가슴이 시리다는 말의 여운은 외롭다는 말이고, 외롭다는 말의 여운은 무엇엔가 결핍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손절하고 있던 글을 다시 쓰려니 내가 쓰는 글은 알맹이도 없는 잡글처럼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글이 "초쇄" 풍처럼 흘러가고 있어 나도 함께 우울해진다.
정조임금 시대에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태어난 '이옥'이라는 사람은 감수성이 풍성한 사람이었단다. 하지만 그는 글을 어둡게 썼다는 이유로 임금의 눈 밖에 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자꾸 밖으로 밀려다니다 보니 군대를 세 번씩이나 다녀왔다고 한다. 서른에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지만 임금의 행차를 기념하는 글을 쓴 문체가 기이해, 정조임금은 그의 글이 "초쇄"라고, 슬픈 감정을 일으키는 문체여서 백성들을 슬프게 하고 근심하게 만든다고 그를 배척했단다.
글이란 쓰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세계와 사고가 어우러져서 표현되는 것인데,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을 자신 안에 내면화된 자기 만의 문체, 혹은 기질로 써 내려갔다고, 당시 성정을 펼치셨다던 현명하신 정조임금께서는 어찌 한 문장가의 글을 그토록 혹평해서 선비의 앞길을 막고 출세길까지 끊어놓았던 것일까, 고서 속에 숨어있는 더 깊은 뜻은 헤아릴 수 없어 안타깝지만, 이 한 부분만 본다면 참 고약한 임금이기도 했으렷다.
요즈음 내가 글맥을 찾기 위해 끄적이는 글들도 거개가 우울모드다. 내가 지금 제대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머릿속은 골다공증 앓는 뼈처럼 점점 더 엉성하게 비워져 가는데 이대로 헤매다가 내 글도 영원히 변방으로 밀려나는 것은 아닌지 나도 저 아랫마을 개처럼 컹컹, 울고 싶어 지는 밤이다.
청청하게 깊어가는 겨울밤에 내 마음은 온 갓 잡념들로 어질러져 갈팡질팡 과거와 현재를 들락 거리고 있으니 참으로 난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