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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미양가 Aug 17. 2024

산방 일기

코피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수미

 

 

붉게 흘러내린 노을에 버려진 닻들이 잠겨있다

 

한때는 어떤 배의 버팀목이 되었을 중심이

탯줄 같은 밧줄을 매단 채 뻘밭에 버려져 있다

 

홀로 가벼워진 배들은 다 어디로 떠나갔을까

 

썰물처럼 달아난 이국異國의 배들이

밀물의 시간을 놓친 채 돌아오지 않는 항구

바람은 쉴 새 없이 넘나들며 돛을 부풀리고

배들은 다시 출항할 것이다

그때, 미처 올려지지 못한 닻들은

깊은 이름하나로 뻘밭에 고정된다


버려진다는 것은

그 시간과 장소에 남겨지는 것일까

따개비와 해초 같은 가난과 슬픔을

몸통 가득 붙인 채

해풍의 시간을 견뎌내는,

얼굴과 말이 다른 한 국적의 아이들

 

뻘 깊숙이 발목을 묻고 해상국경을 넘나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숨 참고 잠수해 들어가 보면

그곳에 내려져 있는 크고 작은 닻들이

붉게 녹슬어가고 있다

 

돌아오지 않을 배를 기다리는

*코피노 코피노,

한 항구에 같은 이름이 너무 많다

 


 *심수봉 님의 노래 제목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현지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을 부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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