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수미
붉게 흘러내린 노을에 버려진 닻들이 잠겨있다
한때는 어떤 배의 버팀목이 되었을 중심이
탯줄 같은 밧줄을 매단 채 뻘밭에 버려져 있다
홀로 가벼워진 배들은 다 어디로 떠나갔을까
썰물처럼 달아난 이국異國의 배들이
밀물의 시간을 놓친 채 돌아오지 않는 항구
바람은 쉴 새 없이 넘나들며 돛을 부풀리고
배들은 다시 출항할 것이다
그때, 미처 올려지지 못한 닻들은
깊은 이름하나로 뻘밭에 고정된다
버려진다는 것은
그 시간과 장소에 남겨지는 것일까
따개비와 해초 같은 가난과 슬픔을
몸통 가득 붙인 채
해풍의 시간을 견뎌내는,
얼굴과 말이 다른 한 국적의 아이들
뻘 깊숙이 발목을 묻고 해상국경을 넘나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숨 참고 잠수해 들어가 보면
그곳에 내려져 있는 크고 작은 닻들이
붉게 녹슬어가고 있다
돌아오지 않을 배를 기다리는
*코피노 코피노,
한 항구에 같은 이름이 너무 많다
*심수봉 님의 노래 제목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현지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을 부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