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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미양가 Nov 16. 2024

산방 일기

두더지 굴


두더지 굴/이수미


 

두더지는 가려운 과의 식충목이다

 

손끝이 지나간 자리마다 울퉁불퉁

살갗이 부풀어 오른다

미로처럼 파헤쳐진 굴을 따라 손을 뻗어보지만

어디서 나타나 어디로 사라지는지

시작과 끝점을 못 찾겠다

 

밝은 색 매니큐어를 발라 길을 밝혀 봐도

눈은 가려운 쪽으로 점점 퇴화되어 갔다

손끝에 힘을 가할수록 굴은 더 멀고 깊게 파였다

 

신출귀몰하다

 

반대쪽을 공략해야 잡을 수 있다는데

그러나 그곳은

손이 닿지 않는 곳이다

 

직선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두더지,

결국 피부과를 찾아

둥글게 펴 바르는 약 처방을 받았다

 

어두운 눈으로 번져나가는 길을

밝은 눈으로는 쫓지 못한다

 

밤을 돌아눕게 만들고 뒤척이게 만드는 두더지,

유독 간절기 때 자주 출몰한다

 

등 가죽이 들썩들썩, 두더지가 또 움직인다

번식기가 시작되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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