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우미양가 Nov 23. 2024

산방 일기

삽극편리단揷棘編籬短


*삽극편리단揷棘編籬短/이수미

             

 

먼 곳에 사는 벗이

먼 곳에 사는 벗을  찾아와

하룻밤 만나고 돌아간 후

먼 곳에 사는 벗은

울타리를 치고 들어앉아버렸다

 

봄이 왔다고, 찔레꽃이 환하게 피었다고

소식을 넣어도 적막하다

 

우리는 어릴 적 가시덤불을 헤치며

손톱 밑을 열어두고 놀았던 사이,

아무리 깎고 깎아도 손톱 밑은 여전한데

 

그날 밤, 푸드덕 새 한 마리 날아가듯

방정맞게 내 입을 빠져나간 말이

먼 곳의 손톱 밑을 찔렀던 것일까

그 독 삭이느라

열 개의 손가락이 퉁퉁 붓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쩌다 내 혓바닥에

가시나무 심겨 있는 걸 깨닫지 못했을까

 

다시 조심스럽게

먼 곳의 울타리를 밀쳐보는데

날 선 가시가 사납게 손끝을 찌른다

 

붉게 솟아오르는 핏방울 그 사이로

한 이름이 욱신거린다



* 가시나무 꽂아 짧은 울타리 꾸미고

 김시습 시 '우음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