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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미양가 Nov 02. 2024

산방 일기

계란의 힘


계란의 힘/ 이수미



손아귀에 쥐어졌다고 다 약한 것만은 아니다

다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얇은 각으로 뒤덮인 계란을 손에 쥐고

부르르 떨며 안간힘을 써보지만

한 줌의 힘으로는 깨뜨릴 수 없는 굴욕,


맞춤한 한 줌에 악력을 가한다는 건

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일

골고루 힘을 나누어 대항하는

얇은 각 앞에서 내 주먹이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일

 

껍데기로 둘러진 것들 속에 존재하는 알맹이는

얇고 작지만 그 속에 생명이 저장되어 있고

생각들이 밀봉되어 있다


그 세계는

밖의 것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세계이며

저절로 깨져야만 살아지는 순환의 고리다


그러므로 둥근 것들은

쥐어서 깨트릴 대상이 아니라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줘야 할 존재들이다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건 각이 부서져

느슨해진 것들 뿐

때로는 한 줌의 힘에서 날개가 생기고

맨드라미가 피어나기도 한다


둥근 것들은 구르면서 그 순한 질서를 되새김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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