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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 고등어

Cocktail Blues

by 유정 Mar 12. 2025

고등어를 마지막으로 먹은 것은 예닐곱 해 전, 세 번째 술자리쯤, 고갈비, 소금 간도 하지 않은 고등어를 간장 양념을 올려주던 고갈비. 그 후로 언제 고등어구이를 먹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몸에서 신호를 줄 법도 하다. 그 귀한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고등어가 명실상부 주인공이지만 주인공 아닌 자리에 있는 건... 고등어를 위해 준비한 조연이 너무 많았기 때문.고등어가 명실상부 주인공이지만 주인공 아닌 자리에 있는 건... 고등어를 위해 준비한 조연이 너무 많았기 때문.


경애하고, 앙망하는 단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어느 날 고등어를 좋아하느냐 물으시기에 -곱씹어 보니 나, 고등어, 좋아하더라- 좋아한다 했더니 고등어 받고 갈치까지 도합 여섯 마리를 보내주셨다. 데우기만 하면 되는 완성형으로 도착한 고등어 셋, 갈치 셋은 생각보다 꽤나 컸고 먹음직했고 이 생선들을 두고 출근해야 하는 현실이 마땅찮았다. 하루 종일 시간이 언제 가나, 발만 동동 구르다 마침내 집에 오자마자 고등어를 위한 백업 댄서들을 준비하고 첫 고등어를 접시에 모셨다. 젓가락이 툭, 고등어를 파고들었을 때에야 실감이 났지, 내가 꽤나 오랜만에 고등어를 먹으려 한다는 것을. 큼지막한 살점이 입에 들어오자마자 궁금했다. 왜, 이렇게나, 맛이, 있지. 고등어를 보내온 사람을 경애하고 앙망해 마지않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등어를 오랜만에 먹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오래전 맛본 고등어의 살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몰랑, 맛있다, 맛있어. 너무 크고 두툼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 먹었네. 어쩌면 이것이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네.


집 주변에 약수터가 없어서 -있어도 안 갔을 게 뻔하긴 하지만- 수돗물을 떠 놓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정화수 한 그릇 대신 어느 이른 아침에 말갛고 고운 해를 바라보면서, 또 어느 때는 색종이를 오려 붙인 것처럼 동그랗고 노오란 달을 바라보면서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앙망하고 또 경애하는 두 분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데, 두 분이 계신 곳의 풍경을 함께 떠올리며 안녕과 건강을 빌고 또 빈다. 그들이 그들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입 벙끗하지 않고 지켜보는 일, 아무리 체를 쳐도 걸러지지 않는 잔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일, 무슨 선택을 하든 묵묵히 응원하는 일이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는 일 아닐까. 지난 연말부터 그 두 분께 드리려고 발 동동 구르며 품에 안고 있는 그것을 무심히 툭, 우체부에게 전해달라 부탁하는 것 또한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고민해 보기로 한다.


아무튼, 이 값진 고등어를 먹으면서 뉴스를 보는 건 고등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 미루고 미루던 <폭싹 속았수다>를 플레이하기 시작했는데, 먹는 족족 소화되지 않을 수 없게 광광 울어댔다. 임상춘 작가가 썼는데 어찌 안 울어. 질투하는 마음 없이 받드는 유일무이한 작가가 썼는데 어찌 안 울어, 이씽. 써야 할 글이 한 바구니인데 에라, 몰라, 아몰랑! 고등어 입에 물고 마저 볼테다. 잠이 들 때까지 광광 울어버릴 테다. 으아니, 이 작가 양반은 왜 이렇게 사람을 울리는지. 나도 울리고 싶다. 눈물이 빗물에 젖는 게 당연하듯 슬픔이 눈물에 젖어 몸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껄껄, 헛소리 수위가 높아지는 걸 보니 이 드라마도 동백이한테 그랬듯 구차하게 치맛자락 붙들고 늘어질 게 뻔하다. 안 봐도 비디오지만 보라고 있는 비디오를 안 볼 건 또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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