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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14. 2024

04-230519

Cocktail Blues

자몽이 등장하고부터 미술치료에 가기 전날이면 무얼 그릴까, 무얼 그려야지,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까 내 속을 뒤적이면서 재료를 찾았다. 대부분 나는 왜,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는데 이 날은 '아, 못이 박혔구나. 못 머리 위에 또 못을 박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건 나이기도, 타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타인이 첫 번째 못을 박았고 그 못 머리에 다른 못을 박는 것은 나였는데, 대체로 타인은 내가 자신이 박은 못 머리에 또 다른 못을 박기를 종용했었다. 그런저런 이야기는 뒤에 두고, 이 그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자몽 곁에서 못에 대해 설명하는 로로의 귀여움이다. 그림을 그린 후에 나는 줄곧 로로가 구멍 난 기억의 구멍 가장자리에 서서 구멍 저편의 못에 대해 설명하려고 몸을 반쯤 기댄 채 손짓하는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상담사는 이 그림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더랬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상담사와의 라뽀에 공깃방울이 섞이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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