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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Jun 08. 2021

기꺼이 할 수 있는 것들

그날의 에세이 #2

기꺼이   있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어렵거나, 난해한 수학 문제를 푸는  같이 곤란하거나 버겁더라도 꺼이  시간을 마음을 노력을 쏟아낼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아내의 임신이 가져온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기쁨과 감사, 우울감과 고통이 쉴 틈 없이 찾아왔다. 몸의 변화가 가져온 어려움들 속에 고군분투하는 아내를 돌보고, 아내가 도맡아 하던 청소와 저녁 차리기까지 내 몫이 되니 하루가 금세 멀어진다. 임신 주차가 늘어날수록 일상의 모든 초점을 아내에게 돌리고 사고의 균형추를 아내에게 더 기울였다. 기꺼이.


작년 연말부터 올초까지 회사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웬만해서 인력의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나지 않던 회사에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 누군가는 나가야만 했고, 또 누구는 긴 시간 적을 뒀던 곳에서 물러나야 했다. 인력의 개편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업무가 가중된다는 의미였고, 그중 꽤나 비중 있는 일이 넘어왔다. 한 사람의 일이 더해진 채로 시작된 2021년, 계약직인 내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꼭 맡아야 했고, 그래야만 했다. 누군가는 늘어난 일에 다른 요청을 하기도 했지만,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분주한 업무 속에 '나'라는 사람을 찾기보다 '나'라는 사람의 필요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꺼이.


           


가끔 내 정체성 찾기보다,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생각에 몰두한다. 그것이 억울하고, 울화통이 치미는 일이라면 몰라도 기꺼이 그럴 만한 일이라면 감수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는 삼십 대 후반이기도 해서 그렇지만 그렇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쏟을 수 있다. 상호작용을 기대하지 않고도 기꺼이.


기꺼이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지탱하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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