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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영 Nov 18. 2022

이빨나무





앞니가 빠진 틈으로 

자꾸 말이 빠져나간다

혀는 이빨 찾아 자꾸 들락거린다


서랍에서 꺼내본 이빨

할머니가 뽑아주신 이빨 

하얗고 작은 게 씨앗처럼 생겼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지붕 위에 던지면 까치가 물어다 

새 이빨로 바꿔준다 그랬는데

우리 동네엔 지붕이 없잖아

아파트들만 있잖아 


까치는 헌 이빨을 어디서

새 이빨로 바꿔올까

슈퍼에서 바꾸나 고물상에서 바꾸나

아니면 산속 깊은 곳 

이빨나무에서 따오나


그래 그럴 거야 

이빨이 열리는 나무가 있을 거야

까치만 알고 있는 깊은 숲속 비밀 나무

지붕도 없고 까치도 없는데 

까치 전화번호도 모르고 

주소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앗싸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아파트 화단에 심는 거야

화단에 심으면 나무로 자랄 거야

이빨나무가 자라면 이빨들이 열릴 거야


옥수수처럼 열릴까

강낭콩처럼 열릴까

아니면 사과 속에 든 

씨앗처럼 열릴까


반짝반짝 새 이빨들이 

입술 안 이빨들처럼

강낭콩 깍지 안 콩들처럼 열릴 거야

그러면 그 중 제일 예쁜 이빨을

빠진 자리에 끼워야겠다


앞니하고 아랫니 하나가 없는 영화가 부러워하겠지

사탕을 두 개 주며

이빨 두 개만 달라고 하겠지

그럼 나는 그래 알았어

너만 특별히 가장 반짝 이빨로 두 개 줄게 


예림이도 새 이빨 한 개 달라고 할 텐데

걘 원피스 입고도 빨간띠 매고

반바지 입고도 빨간띠 매고

마트에 갈 때도 피아노학원 갈 때도 빨간띠 매고 다니지

내가 하얀띠라는 거 뻔히 알면서 빨간띠라고 뻐기는데 

얄미운데 새 이빨 줄까 말까


심술쟁이 하은이도 이빨 한 개 달라고 하면

줄까 말까

나를 울보라고 약올렸지

흥 삐뚤 이빨이나 줘야겠다

그럼 덧니가 될 거야


아니다 아래층 언니를 보니 

덧니도 귀엽고 예쁘던데

썩은 이 줘야겠다

썩은 이는 아플 거야 그럼 병원에 다녀야 해

그건 너무 심해

그냥 옥수수 알맹이처럼 노란 이빨 줘야지

이빨을 닦아도 안 닦은 것처럼 보일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간질간질

웃으며 베란다로 달려갔다

베란다 유리문을 쪼금 열어 

이빨을 화단에 떨어뜨렸다 

야호 곧 새 이빨이 생기겠다 


그런데 우리 반 애들 다 한두 개씩 이빨이 없던데

걔들 다 맞는 이빨 찾아주려면 

난 놀지도 못하고 바빠지는 거 아닐까


맘에 안 들어 다른 이빨 줘

난 더 큰 거

난 더 작은 거

이건 삐뚤하잖아 이건 노랗잖아

아이쿠 그럼 엄청 귀찮겠네

그럼 이빨나무 있는 곳을 알려줘 버리면 되지 뭐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새 이빨을 선물해 드렸을 텐데

틀니를 안 해도 됐을 텐데

틀니는 무섭게 생겼어

아그작 물 것 같아


맞다

이빨나무에 이빨이 콩 열리듯 열리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 틀니처럼 열리면 어떻게 하지

틀니들이 커다란 나무에 한가득 열려

캐스터네츠처럼

이빨 부딪치는 소릴 내면 시끄럽겠지

매미떼보다 시끄럽겠지


깨물기도 하면 어쩌지

영화가 나무 밑을 지나가다 

엉덩이를 깨물리면 엄청 울 텐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깨물지도 몰라

내 손가락도 깨물지 몰라


설마

잡아먹는 건 아니겠지

식충식물처럼 새들을 강아지나 고양이를 잡아먹고 

사람까지 잡아먹는 나무가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이빨을 화단에 심은 사람 잘못이니까

경찰아저씨가 나를 잡으러 올 텐데

큰일났다 

이빨이 나무가 되기 전에 찾아야겠다


헐레벌떡 뛰어 내려가

화단을 뒤지고 뒤져도 이빨이 안 보인다

나무 밑에도 나무 위에도 없고 

꽃밭에도 잔디밭에도 없다

어딜 간 거야 내 이빨


벌써 나무가 된 게 아닐까

이 나무일까

저 나무일까 

큰일났다

난 이제 감옥에 가게 될 거야

치킨도 못 먹고

놀지도 못하겠네


눈물을 흘릴까 말까 고민 고민 하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으악 나를 잡으러 왔나봐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돌아다보았다

거기서 뭐하고 있니? 

휴 엄마다 


나는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이빨씨앗을 찾고 있어

이빨씨앗?


이빨나무가 자라서

사람들을 깨물지 몰라

강아지나 고양이를 잡아먹을지도 몰라

사람도 먹을지 몰라


얘는 무슨 똥단지 깨는 소릴 해

똥단지가 아니라 뚱딴지 아니야?

그건 그렇고 이빨씨앗이 뭐야?

할머니가 빼주신 이빨을 

화단에 심었단 말이야


엄마는 잠깐 생각하시더니 

싱긋 웃으시더니  

아 그 이빨?

좀 전에 까치가 물고 날아가던 걸


어디로?

어디긴 어디야 

새 이빨로 바꾸러 갔지

그런데 까치가 바쁜가보던데

이빨 빠진 애들이 너무 많아 

무지 바쁜가보던데 

이빨 택배가 좀 늦을 거라던데


이빨을 택배로 보낸다고?

까치가 실수해서 

상어 이빨 보내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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