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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영 Nov 18. 2022

명자가 돌아왔다




복숭아 같았던 명자가 

덜컹이는 비닐 구두를 신고 돌아왔다

아는 이 하나 남지 않은 마을

집터만 남은 기억을 짊어지고 왔다


보리가 살이 찌고 유채꽃이 피는 귀향

수많은 발자국들이 지워진 해변으로

어린 손녀 손을 잡고 육십오 년만이다


그물에 멸치가 반짝이던 날의 

웃음소리들 곁으로 

명자가 걸어간다


오빠들이 올라간 산 중턱에서 불이 오르던 밤

할미 품속에서 병아리처럼 떨던 명자,

처마 아래 떨어진 동백꽃 봉우리를 주우며 울던 

명자가 돌아왔다


어미가 남기고 간 옷을 줄여 입고

밀감나무를 흔들던 바람 속에서 명자는 자랐다

이곳 모래바다에서 물질을 배웠고

어두운 수면 아래를 떠돌다

외진 섬에서 나를 낳았던 명자가

굽은 허리와 기우뚱한 걸음에 실려 왔다


살아서는 마지막으로 고향에 

명자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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