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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영 Nov 18. 2022

어제 끓인 된장찌개



1


소주병이 깨져 있는 골목을 지나

멀어져 가던 그녀들의 뒷모습에는 

입김이 서려 있었다

청춘을 소모하고 얻은 것은

고드름처럼 자라나는 빚과 빛이 들지 않는 숙소


다방 옥상에 놓인 컨테이너 방에

유행 지난 외출복 한 벌씩은 걸어 두고

갈 곳이라고는 누군가 지불한 늦잠뿐


빈 지갑 같은 얼굴에는 

발라도 지워지지 않는 기미와 주름살

커피를 종일 배달해도 일비는 채울 수 없어

술자리에 불려 나가 

가닿지 않은 음정의 노래를 부르는

오십 대 주방이모나 삼십 대 박 양 사십 대 김양 모두

한 시간에 만 오천 원짜리로 평등했다


이십 대라고는 하지만 

삼십 대 같은 박 양이 

인기는 그중 많았는데 

아침마다 목욕탕으로 태우러 가면 

비린 세숫비누 냄새와 마르지 않은 샴푸 냄새

남자 품에서 깨어나 목욕탕을 거쳐 온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 없는 무뚝뚝한 아침이 깊어 갔다 


2


주말마다 식욕관광 하러 온 차들이 밀려오던 

그 해안가 마을에서

아침 밥상마다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한 상 가득이었다


술만 먹으면 때리는 남자와 헤어졌다고 했다

맥심 커피포트에 커피를 타 주고 

다방 식구들 밥을 차리던 주방이모는

고등학생 아들이 하나 

언니 집에 맡겨 놓고 왔다고 했다


주인 여자와 동갑내기이고 모두 이혼한 오십 대

맞고 산 것이 이력이라면 이력이고 

내력이라면 내력이었던 그녀들

풋내 나는 부끄럼 많던 나를 

삼촌아 삼촌아 다정하게도 불렀지 


김 양 누나는

청바지가 잘도 어울렸는데

나는 그녀를 배달할 때마다 

그녀의 뒷모습을 훔쳐보고는 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생리대나 스타킹 같은 거나 사다 주는 일 이었다


우리 모두 어딘가에서 출발해 생판 모르는 그곳에 모여

매일매일을 살아 내는 뜨내기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젊음이 남아 있어

밤마다 달방 창에 찾아오는 달을 향해 오줌발을 세우다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3


주로 배달이 업이고 그래서

주로 다방은 비어 있었는데 

한적한 오후였다

여대생들 배를 군홧발로 걷어찬 무용담 따위나 

늘어놓으며 낄낄거리던 젊은 놈들

씨발년아 커피 빨리 가져와 짓거리던 놈들에게

삼촌아 미안해 삼촌아 미안해 하던 주방 이모


그놈들이 사라지고 나서

저 새끼들 망치로 대가리를 뽀개 버릴까 

삼촌아 괜찮아 그러지 마 삼촌아 냉커피나 한잔 타 줄게

삼촌이 많기도 많던 이모

장도리를 벽에 걸린 텔레비전 뒤에 숨겨 놓고 조마조마하던 날들



4


늦게 돌아올 김 양 누나와

아침에 목욕탕으로 태우러 가야 하는 박 양은 일찍 티켓 나가고

밤은 또 찾아와 습기 찬 다방 유리창을 검게 채웠다

주방이모와 나는 테이블에 앉아 드라마를 올려다보며

어제 끓인 된장찌개에 배추쌈을 입 찢어지게 함께 먹고 있었다


서로의 어제도 내일도 묻지 않아도 

침묵은 어색하지 않아 그렇게 흘러가는 저녁 시간

밥을 다 먹기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나는 이모를 불 꺼진 수협 공판장 앞에 내려 주고 왔는데

드라마를 마저 보러 서둘러 돌아왔는데

세 시간이 지나도 연락 없던 이모


구미 어느 고등학교에서 잘린 애들이 

훔쳐 몰고 온 봉고차에서 이모는 뛰어내렸다고 했다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다 

얼마 못 가 전봇대를 들이받았다고 했다

내가 응급실로 갔을 때 이모는 

박살 난 머리로 누워 기침과 함께 피를 내뿜고 있었다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수술실 밖에서 보호자가 되어 

질린 얼굴로 듣던 두개골 절단하는 소리

등골을 파고들어 오던 전기톱 소리


달방 문을 잠그고 잠가도 사라지지 않던 악몽들

세상에 있어도 돌멩이 한 알처럼 티도 안 나던 그녀를 

누구도 미워하지 않던 그녀를

지들과 동갑내기 아들을 둔 아줌마를 

굳이 왜 달리는 봉고에서 떠밀었을까

천 원짜리들뿐인 지갑에 화가 났었을까

공장에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던 어미와 

밤마다 취해 돌아오던 아비에게 화가 났었을까

지들을 버린 학교와 선생들이 미웠을까

없는 것들끼리 주로 주고받을 것이라곤 

미움과 상처뿐이어야 했을까


그런데 달은 왜 밤마다 저렇게 공평하게 

낮은 지붕들을 비춰 주고 있는 것일까

질문보다 두려움이 더 커다랗게 차오르던 밤마다

씨발씨발거리다 이불을 뒤집어써도 

방안에 가득 찬 그녀들 냄새 

영업도 못 하고 며칠째 컨테이너에 담긴 박 양과 김 양 누나는 

밥은 먹었을까


5


다방은 끝내 문을 닫았고 살아남은 모두는 다시 

뿔뿔이 어딘가로 떠나가면서

준비한 말도 딱히 없어 뻘쭘히 그렇게 헤어졌다

박 양은 부산 어디로 간다고 했고 김 양 누나는

고향 김천에 들려 볼 거라고 했지만 

갚을 빚이 산더미인 몸뚱이로 

늙은 아비 혼자 남은 고향에 며칠 머물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갈 곳도 딱히 없어 한두 달 그 마을을 전전하다

찾아가 본 병원 침상에 이모는 

함께 먹던 된장찌개라도 생각하는지 벌어진 입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언니는 보험도 들어 놓아 다행이라고 

아이들은 그녀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는데

그녀의 가난한 언니는 경찰에게 그럴 리 없다고 울먹거렸지만

아이들의 형이 단순 강도로 기소된 후에야 

눈을 감은 이모 끈질긴 이모

용서도 참 잘하던 이모 

그녀가 도로에 남긴 얼룩을 지나쳐 갈 때마다 소름이 돋았고 

그때마다 나는 씨팔씨팔거리며 

그녀와 함께 먹던 맛없는 된장찌개를 떠올리고는 했었다



6


산전수전 공중전은 몰라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밤이면 모두들 지울 것과 잊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소주병에 한 잔 남은 소주처럼 출렁거리는 밤거리

갈 곳도 없는데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들 사이 어디선가

삼촌아 삼촌아 밥은 먹었나


나는 그녀의 희미한 얼굴이 문득 서러워

길 잃은 아이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추고 훌쩍거리다

씨발씨발 죄 없는 전봇대를 붙들고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듯 두드려 보면

그 뒤에서 싸구려 화장품 냄새처럼 풍겨 오는 용서라는 말

반짝거리는 해수면이 감춘 심해처럼 짜디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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