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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Sep 06. 2018

다들, 참 열심히 산다

아침을 여는 사람들



[드르륵드르륵, 쿵]


[빌라 신축공사 현장,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


오전 7시가 갓 넘은 시간. 바로 옆 빌라 신축공사 현장은 작업 준비로 분주하다. 모처럼의 연차휴가날인데, 열린 창문 틈새로 갖가지 소음이 귀를 찔러온다. 드르르르르륵.


[코엑스, 대한민국 서울]


[남산, 대한민국 서울]


복잡하고 북적대는 도시에 지쳐 도망치듯 이사 온 경기도 광주의 한적한 시골은, 1년도 되지 않아 온 동네가 공사현장으로 변신했다.


드르륵, 드르륵.


이게 아닌데. 어차피 늦잠은 글렀다 싶어 산책이나 나가자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이른 아침,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평소 같았으면 막 회사에 도착했을 이른 시간. 천천히 옮기는 걸음 사이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출퇴근 차량들. 동네에 몇 없는 버스정류장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있다. 한 걸음 떼기가 무섭게 분주해지는 거리. 이 한적한 동네에도 제법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건국대학교, 대한민국 서울]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 피로가 역력하다. 모두들 지난밤의 짧은 휴식으로는 채 털어내지 못한 노곤함이 어깨에 얹혀있다. 더 자고 싶겠지. 할 수만 있다면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고 싶을 것이다. 내가 그러니까.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권 내에 있는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은 피로를 함께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참 열심히 산다.


[광화문, 대한민국 서울]


"성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뭘 해서 뭘 이루겠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 문제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야.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생활을 성실하게 이루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던 훈계가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해서 귓가를 울린다.


[출근시간이 지나 한적해진 버스, 대한민국 서울]


성실하다는 게 무엇일까?


성실하다는 게 무엇일까? 나름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른들의 눈에는 부족한 무언가가 존재했던 것 같다. 자랑할 만큼은 아니더라도 남들과 비교해 부족하지 않은 월급을 받고, 특별히 과소비를 하는 것도 아닌 내게 "생활을 성실하게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더랬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미국 시애틀]


어렸을 적,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5일장이 섰다. 5일에 한 번 옷, 채소, 쌀, 반찬뿐만 아니라 각종 불량식품과 빛바랜 장난감이 늘어서고, 심지어는 이동식 놀이기구가 단지 내 주차장을 점령했다. 열 살 무렵의 나는 그 조악한 것들을 무엇보다 기다렸다.


대학 이후 독립하면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추억의 풍경이고, 대형 마트에 밀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열까 말까 한 행사가 되었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장이 열린다고 한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미국 시애틀]


젊은 사람들이 너무 예뻐.
정말 열심히 사는 게 보여서.


"젊은 사람들이 너무 예뻐. 정말 열심히 사는 게 보여서."


얼마 전 어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닭강정 한 접시를 내놓으며 말씀하셨다. 작년부터 장이 열리면 스물 초반 남짓한 부부가 와서 닭강정을 판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해보면 많이 고생하면서 자란 티가 나. 그런데 얘네가 말하는 게 너무 예뻐. 젊은 사람들이 힘든 것도 마다하지 않고 겸손하게, 참 열심히 살아. 그냥 그게 너무 예뻐 보여서 꼭 하나씩 사게 돼."


아직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닭강정은 달콤하고 짭짤했다.


[유리공예 천장, 미국 라스베가스]


"이번에 와이프 생일 선물로 가방을 사줬는데, 이게 웬만한 중고차 값이 나오더라고. 원래 가방이 이렇게 비싼 거야?"


담배를 피우던 팀장님이 툭, 하고 말을 던져놓는다. 눈동자가 슬쩍 내 곁을 비껴간다. 이건 질문이 아니다. 큰돈을 쓰고 티 내고 싶은 팀장님 특유의 허세끼 섞인 자랑 화법이다. 이럴 땐 "아유, 잘하셨어요, 형수님이 정말 좋아하셨겠어요, 정말 좋은 남편이군요, 우쭈쭈."라고 해줘야 하건만, 생각이 차마 말이 되어 나오질 않는다.


처가댁에 들일 함을 준비할 때, 어머니는 아내에게 "하나쯤 좋은 물건이 있어야 하지 않겠니?"라고 하시며 갖고 싶은 가방 하나 사라는 말씀과 함께 두 손에 봉투를 쥐어주셨다. 아내는 그 봉투에서 20만 원을 빼 메이커 없는 가방을 사고, 나머지 돈을 전세자금에 보탰다.


[붐비는 지하철 역, 대한민국 서울]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 하나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모두들 바쁘고, 누구나 치열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의 삶에 성실한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 타인의 시선에 치중해 중심을 잃곤 한다. 나 또한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음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건대 사거리, 대한민국 서울]


내일도 어김없이 오전 7시면 공사장은 분주해지고, 버스 정류장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생길 것이며, 나는 차를 타고 회사를 향할 것이다.


성실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아침을 여는 사람들 속에서, 내 삶은 얼마나 스스로를 향해 열려있는 건지 다시 한번 돌이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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