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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Aug 30. 2018

우주를 청소하는 나사(NASA)의 청소부

평범한 일상 속 돌 하나를 쌓는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나사(NASA)를 방문했을 때 한 청소부를 만난 일화가 있다.

"무슨 일(역할)을 하고 있나요?"

대통령의 질문에 나이 지긋한 청소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여러 가지 버전을 가지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아니라 린든 존슨 대통령이라고도 하고, 청소부의 답변이 '사람'이 아닌 '우주선'이라고도 하고. 그리고 답변 자체가 완전히 다른 버전도 존재한다. 청소부의 답변이 "우주의 한 구석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버전이다.


어떤 버전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이 마지막 버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청소부에게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업무의 본질이 있다. 굳이 우주인이니 우주선이니 하는 거창한 것을 갖다 붙일 필요도 없이, 이 업무는 반드시 필요하고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그런 일인 것이다.


[건국대학교 산학협동관, 대한민국 서울]


일의 무게에 짓눌려 
극심한 피로감에 몸서리치는 날이 있다


간혹, 일의 무게에 짓눌려 극심한 피로감에 몸서리치는 날이 있다. 인사팀 막내 사원 시절, 나의 주 업무는 채용과 급여였다. 두 가지 일 모두 성과가 눈에 드러나지 않는,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먹는 그런 일이었다. 


채용의 경우, 면접 대상자를 선정하고 면접을 진행하고 결과를 취합해서 합격자를 추리고 합격통보를 한다. 별것 없어 보이는 일인데, 그 이면에는 잡다한 사건과 자잘하게 손이 가는 일이 즐비하다. 면접대상자가 다수인 경우 면접관과 면접대상자의 일정을 조율하는 것에서부터 면접 진행일에는 면접대기실과 면접실 세팅을 위해 손수 청소를 하고 다과를 준비한다. 동선과 시간을 미리 짜두고 길목마다 안내 표지판과 안내문구를 비치한다. 면접이 끝나면 뒷정리와 함께 결과 보고서를 만들고, 채용이 확정되면 채용에 따른 자리배치와 지급 물품 준비, 그리고 신규 입사자 교육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현업 사내강사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급여도 마찬가지다. 이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제 날짜에 정해진 월급 나가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어?"라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정말 다양한 사내 복지가 존재하며, 급여 항목 구성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순 지급성 사내 복지라면 실비정산이라도 하련만, 내가 다녔던 회사는 복지 체계가 복잡해서 월급 공제 내용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만약 직원이 회사와 제휴된 피트니스 센터를 사용했다면 피트니스 센터 이용비의 70%는 회사가 부담하고 나머지 30%는 직원의 월급에서 공제를 하는 식이었다. 이런 급여 공제 데이터가 매달 새롭게 급여에 영향을 미친다. 매 달 지뢰밭을 걷는 기분으로 혹시 빠지거나 잘못 들어간 숫자가 없는지 마음 졸이며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1년이 지나 연초가 되면, 2월 연말정산 이 방긋 웃으며 인사한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면서. 


두 업무 모두 눈에 띄지 않는 잡다한 일들이 은하수처럼 펼쳐져 있어, 하나라도 빠지거나 어그러지면 "별것도 아닌 업무인데, 이것도 하나 제대로 처리를 못해서 구멍을 만들어?"라는 비난을 사게 된다. 


[양재천, 대한민국 서울]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연말정산이 끝나고, 연말정산 환급분을 급여에 반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해에는 달라진 세법으로 인해 다른 해보다 연말정산이 복잡했고, 안타깝게도 환급보다 추가공제를 해야 하는 인원이 많았다. 고위직급자의 경우 월급보다 더 많은 공제액이 나온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폭탄은 이런 고위직급이 아닌 과장급에서 터졌다. 경영지원팀에서 내부적으로 기준을 세워, 급여 공제가 100만 원을 넘는 경우부터 2~3개월 분할 공제를 진행하기로 했고, 그 이하의 경우 원래 원칙대로 한꺼번에 공제를 하는 것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50만 원 이상 공제 대상자에게는 별도의 메일을 보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그리고 급여일, 한 과장님이 전화로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월급이 왜 이러냐고. 다달이 벌어먹고 사는 월급쟁이에게 10만 원, 20만 원이 우스운 줄 아냐고.


내가 용쓴다고 바뀌는 것도 없는데...


일을 하다 보면, 특히 법이나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일을 하다 보면 개인적인 생각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내가 고민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것이다. 정해진 틀에 맞춰 진행하는 일인데, 내가 용쓴다고 바뀌는 것도 없는데, 그렇다고 내가 법 위에 있는 것도 아닌데. 담당자라는 이유로 내가 정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 부담과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똑같은 처지에 있는 일개 직원이기에 담당자는 억울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는, 나 또한 하나의 톱니바퀴일 뿐이니까.


[해운대, 대한민국 부산]


페북을 보다가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발견한다. 세계를 핵전쟁에서 구해낸 한 영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1983년 9월, 한창 냉전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러시아 위성은 미국에서 발사된 5발의 미사일을 감지했다. 당시 러시아 공군 중령이었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30분 내로 미국의 공격에 대해 반격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가 반격을 결정하면, 러시아는 미국을 향해 핵탄두를 던지게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한 판단으로 이 미사일 감지가 '기계적 오류'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고, 세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흘러갔다. 러시아 위성에 오류가 있었음을 감추기 위해 러시아는 이 사건 자체를 덮어두었다가, 15년이 지나서야 독일의 한 기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페트로프는 그 후 세계 시민상과 드레스덴상, 그리고 유엔 표창을 수여받았다.


이 이야기를 읽자 또 다른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돌프 아이히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고위 관료로, 그는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주 유능한 '실무자'였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럽에 퍼져있는 유대인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정해진 기간 안에 '멸종'시킬 것인지를 고민했다. 어떻게 수송하고, 어떻게 격리하며, 어떻게 '없앨'것인지, 이에 따른 비용을 계산하고 기간을 설정하며 '효율적인 업무'를 수행했다. 그의 계산은 매우 정확해서 수송 단계에서 자연사할 유대인의 수까지 계산에 포함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계산에 따라 전쟁이 끝나기까지, 나치는 600만 명의 유대인을 효율적으로 제거한다. 그에게 유대인은 실무적으로 처리해야 할 '숫자'였다.

독일이 패전하고 아돌프 아이히만은 전범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받게 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중대한 전범으로 지목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저는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수행한 '실무자'일 뿐이었다고. 


[해운대 앞바다, 대한민국 부산]


페트로프와 아이히만은 사실 굉장히 비슷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실무자들. 결정의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톱니바퀴. 하지만 한 사람은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세계적인 악마가 되었다. 그들은 그저 주어진 일을, 먹고살기 위해,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인데. 자신이 선 곳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영동대교 위, 대한민국 서울]


선배님 때문에 이 회사 지원했어요


신입사원들과 저녁을 먹던 날이었다. 신규 입사자 교육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술자리였다. 빈 소주병이 늘어나면서 신입사원들은 벌게진 얼굴로 호기롭게 수다를 떨었다. 흥이 한창 오르는 중에, 한 신입사원이 내 옆으로 다가와 술잔을 따르며 말한다.


"저, 사실은 선배님 때문에 이 회사 지원했어요."


응? 무슨 소리지? 출신학교도, 거주지도 모두 다른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일까?


"혹시 XX대 채용설명회 오셨던 것 기억나세요?"


아, 맞다. 그 대학은 내가 갔던 곳이다. 이 신입은 그 날 전공수업이 끝나고 지나가다가, 막연한 호기심에 채용설명회에 들어왔다고 했다.


"선배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정말 이 회사를 좋아하시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회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달까? 직원이 이만큼 애정을 가지는 회사라면, 들어가도 좋겠구나 생각했어요."


술기운 때문인지, 원래 수줍음을 많이 타는 건지,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도 덩달아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미안하다 후배님. 실제로 회사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란다 기라바루, 몰디브]


하지만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는 일들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구나.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이 일이 누군가의 취업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소액 대출이 되기도 하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 결과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나사(NASA)의 청소부가 말한다. "나는 우주의 한 구석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루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되물어본다. 나는 아마도 아이히만과 페트로프의 그 어느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아이히만에 가까워지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페트로프를 향해 걸었을 테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시계추처럼 흔들, 흔들거리며 하루를 살아왔다. 


나의 하루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인 것 같다.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하루가 하나의 돌처럼 내 바닥에 쌓여간다. 이 돌무덤은 어디를 향해 솟아오를지, 과연 나는 페트로프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혹시 아이히만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하루를 보내며 쌓아가는 돌 하나. 그 의미를 그려보며, 나는 과연 나사의 청소부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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