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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Sep 13. 2018

강남 토박이, 경기도 교외를 택하다

우리는 '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내가 태어난 곳은 소위 '강남 8 학군'이라 불리는 대치동이다.


많은 학부모의 선망의 대상이라는 '래대팰(래미안 대치동 팰리스)'이 있던 그 자리에는 원래 '청실아파트'가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치동, 대한민국 서울]


대치동은 여러모로 편리한 곳이다. 바로 앞에 지하철 3호선이 있고, 강남과 강북 어디로든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다. 뭔가를 배우고 싶으면 모두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고, 간단한 쇼핑은 청실 상가, 은마상가, 남서울상가 같은 곳에서 모두 해결 가능하다. 밤늦게까지 다녀도 수시로 돌고 있는 순찰차 덕분에 무서운 줄도 몰랐다.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로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동네가 얼마나 될까? 그 시절에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값비싼'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월급 들어오는 대로 짐 빼렴


학업을 마치고 취업에 성공한 첫 달, 출근길에 나서는 내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도 다 큰 성인이고 돈벌이도 하니까 자립해야지? 이제 엄마 아빠한테 기댈 생각 말고 성인답게 살아야지."


멀뚱멀뚱 바라보는 내게 어머니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마지막 쐐기를 박는다.


"월급 들어오는 대로 짐 빼렴."


[광진구의 원룸, 대한민국 서울]


부랴부랴 회사 근처의 원룸 자취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강남에 위치했던 회사는 부모님이 이사하신 청담동 본가에서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인 내가 그 근처에 자리를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단 한 번도 전셋값이나 월세에 관심을 가져본 적 없던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모든 원조를 끊은 부모님을 반쯤은 원망하면서, 하지만 반쯤은 그간 내게 베풀어주신 혜택을 감사해하며 겨우 월세 원룸을 계약할 수 있었다. 걸어서 회사까지 15분 거리인 본가에서 나와 지하철과 도보를 합쳐 45분이 걸리는 원룸으로. 


내 힘으로 처음 장만한 월세집도 제법 번화가에 위치해있었다. 그리고 신혼집도 마찬가지였다. 독립 후 1년이 지났을 무렵, 4년간의 연애 끝에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와이프와 나는 1억이 넘는 대출을 끼고 분당의 1.5룸 오피스텔을 어렵게 얻어 신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분당에서 좋은 가격의 오피스텔 전세를 얻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껏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으면서, 처음으로 도시에 대해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청담대교, 대한민국 서울]


편리한 교통, 잘 갖춰진 생활 인프라. 2세를 생각할 때 고려하게 될 보육시설과 교육시설 등, 도시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점점 더 불편함을 느끼고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나는 그 불편함과 불만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명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불만족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여주에서 살았어요.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글쎄 방 안에 뱀이 기어 다니고 있는 거예요. 거긴 그런 곳이었어요. 학교에서 집까지 논두렁을 따라 걸어야 했고, 길도 잘 닦여있지 않은 그런 동네였어요. 거기서 친구들이랑 개구리도 잡고, 메뚜기도 잡고..."


눈 앞에 황금빛 논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보인다. 시야를 막는 것 없는 넓은 들판에 녹음이 깔리고,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맞춰 새들이 날아오른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은 평화로움이 곳곳에 묻어난다. 


[경기도 광주, 대한민국]


그래. 나는 녹색을 원했다. 눈을 뜨면 창밖으로 건너편 회색 건물이 산성비에 찌든 얼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런 모습에 지쳐버린 것이다.


도시의 편리성이 불편함을 주고 있다


도시의 모든 편리성이 동시에 불편함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편리한 교통은 엄청난 미세먼지와 매연, 그리고 밤공기를 가르는 경적소리를 의미했다. 번화가의 편리한 인프라는 새벽 취객의 고함소리와 거리를 나뒹구는 쓰레기를 뜻했다. 창문을 열면 오히려 더 목이 메고 눈이 따가운 그런 생활이 편리함의 대가로 지불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역세권 황금 전세를 떠나 경기도의 어느 한적한 교외로 자리를 옮겼다. 


[경기도 광주, 대한민국]


경기도에서 조금은 외곽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집에 입주하던 첫날, 이삿짐 정리를 마치자 어느새 사방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아내와 집을 나선 순간,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이 보석처럼 박혀있었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보던 그 별자리가 선명하게 선을 그어놓은 듯 눈앞에 펼쳐졌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대중교통이 거의 없는 곳이기에 아내도 출퇴근을 위해 경차를 하나 마련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의 삶의 질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배달음식이 도시처럼 많지 않기에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해서 함께 요리를 하는 시간이 생겼고, 주말에는 집에서 함께 커피를 내려 마시며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늘었다. 저녁이면 함께 근처 호숫가에서 산책을 하거나 한적한 국도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한다. 여전히 밤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낮에는 녹음 사이로 새의 지저귐과 노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더없이 고요하고, 더없이 평화로운 집에서, 우리 부부는 함께 삶의 순간을 의미 있게 나누고 있다. 


집이란 무엇일까?


집이란 무엇일까? 도시에 살았을 때는 '내 집'의 개념이 거의 없었다. 아파트를 구매한다고 해도 언젠가 집이 낡으면 재건축을 위해 팔아야만 하는 소모품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또 집 자체보다는 입지조건과 인프라, 그리고 지역이 너무도 중요했다. 향후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예측도 빼놓을 수 없는 집의 중요한 가치 척도였다. 


하지만 정말 집이 그런 존재일까? 내 삶은 단 한순간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지친 일상을 마치고 돌아가게 되는 그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중요한 휴식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공간이다. 그런 소중한 존재를 단순히 재산의 개념으로, 또 미래가치로만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미래의 금전적 이득을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현재의 행복에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Auburn의 친척 집, 미국 워싱턴주]


교외로 이사 오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가 결심한 것이 있다. 언젠가 조용한 곳에 땅을 구해 '우리 집'을 짓자는 것. 우리가 평생 함께할, 우리의 삶과 함께 낡아갈 집을 짓자고. 획일적으로 지어진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우리의 취향과 삶의 스타일이 곳곳에 묻어나는 우리만의 맞춤옷 같은 그런 집을 지어, 우리의 삶의 조각을 새겨보자고. 아마도 아직은 먼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그런 집을 갖게 될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분명 사람마다 제각각일 답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 모든 다양한 답이 갖는 공통분모는 분명 당신의 집이 되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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